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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이스털리 기고] 독재자 숭배

– 역자 주: 이 글은 뉴욕대(NYU) 경제학자이자 개발 경제학의 권위자인 윌리엄 이스털리(William Easterly) 교수가 프로스펙트(Prospect) 잡지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스털리 교수는 1985년부터 2001년까지 세계은행의 리서치 경제학자로 일했습니다. 그는 “White Man’s Burden: Why the West’s Efforts to Aid the Rest Have Done So Much Ill and So Little Good (2006)”이라는 책을 통해서 비효율적인 국제 원조 프로그램을 비판했습니다. 최근 그는 신작 “The Tyranny of Experts: Economists, Dictators, and the Forgotten Rights of the Poor (2014)”을 발표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는 그 동안 빈곤 문제를 전문가들이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로 접근한 방식을 비판하면서 소위 전문가들이 빈곤 문제가 발생한 체계적, 정치적 요인들을 무시해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러한 접근이 “자애로운 독재자”라는 개념과 결탁하면서 독재자에게 더 큰 권력을 가져다 주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요구해야 할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에 관한 최근 경제학자들의 논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뉴스페퍼민트가 2014년 3월 24일 소개한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을 가져옵니다”라는 기사를 참고하세요.

2012년에 세계은행의 김용(Jim Young Kim) 총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중국의 경제 성장은 놀라운 수준이며 중국이 빈곤을 줄이는 데 활용한 실용적인 지식들을 전 세계 다른 개발도상국에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연설을 했습니다. 최근 세계은행이 발행한 “2030년 중국”이라는 보고서는 중국 리더들의 지혜와 힘, 그리고 결단력이 현재의 눈분신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로 끝이 납니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 역시 권위주의가 문제점이 있지만 중국과 같이 계몽주의적 관점을 가진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국가인 경우 장점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러한 사례들은 경제 개발에 있어서 가장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신화(myth)입니다. 즉 권위주의적 정부가 경제 성장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민주주의가 가져오는 제약에서 자유로운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경제 개발에 헌신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가져온다는 주장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화에 불과하며 이러한 주장을 믿는 사람들은 세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 개발을 기술적이고 구조적이며 위에서 부터 아래로 진행되는 조정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권위주의 정부의 성장 기적에 관한 주장들은 언뜻 보기에는 설득력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중국의 덩샤오핑, 싱가포르의 리콴유, 한국의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발생한 놀라운 경제 성장을 보세요.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경제 성장이 권위주의 정부의 지도자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최근에 권위주의 정부가 경제 성장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신화는 중국을 넘어 아프리카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에디오피아나 르완다와 같이 권위주의 정권이 지배하고 있지만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들은 국제 기구나 다른 선진국들의 칭찬을 받으며 많은 국제 원조를 획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권위주의 정권이 경제 성장에 더 유리하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첫 번째 근거는 바로 가장 나쁜 경제 성장을 보인 국가들 역시 권위주의 정권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짐바브웨이의 무가베(Mugabe), 북한의 김일성과 그 후손들, 필리핀의 마르코스(Marcos) 등 그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프린스턴대학 고등 연구원의 대니 로드릭(Dani Rodrik)과 같은 경제학자는 이를 두고서 권위주의 정권은 경제 성장에 있어서 위험이 따르는 선택, 즉 어떤 경우에는 매우 높은 경제 성장을 보이지만 다른 경우에는 매우 낮은 경제 성장을 보이는, 편차가 큰 결과를 가져오는 정치 제도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조차도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할 때 권위주의 정권의 지도자로 있었던 사람들에게 너무 후한 점수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권위주의 국가들이 이룬 높은 경제 성장이 그 지도자들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들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이론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경제 성장에서 잘 알려진 사실 가운데 하나는 가난한 나라들이 부유한 나라들에 비해서 극단적인 결과들을 가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들 사이에서의 가장 높은 경제 성장율은 부유한 국가들 중에서의 가장 높은 경제 성장율보다 크지만 가난한 나라들 사이에서의 가장 낮은 경제 성장율은 부유한 국가들 중에서의 가장 낮은 경제 성장율보다 작습니다. 이는 선진국의 기술을 후진국이 따라 잡아가는 과정에서의 보상과 위험을 잘 보여줍니다. 가난한 국가들의 경우 기술적으로 뒤쳐져 있기 때문에 이를 따라잡는 과정에서 잠재적 경제 성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국가가 부유한 국가들에서 발명된 새로운 기술들을 모방하고 도입하는 데 실패한다면 가난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대부분의 가난한 국가들은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권위주의적 지도자는 그 나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때나 기술적으로 뒤쳐질 때 모두 지도자로 군림해 왔습니다. 이러한 독재자들은 빈곤한 나라가 선진국을 기술적으로 따라잡는 과정에서 우연히 지도자로 있었거나 아니면 이러한 과정과 전혀 무관합니다.

얼마나 많은 기술이 발명되고 도입되는가는 새로운 생각과 기술을 채택하면서 개인들이 사회적 통념을 얼마나 깨트릴 수 있는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8세기 서구에서 발생한 과학적, 그리고 기술적 계몽 운동은 정치적 계몽 운동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의 핵심 개념은 바로 개인의 자유였습니다. 투자할 곳을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와 이로 인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일수록 개인들이 기술이나 기계, 교육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는 개인들로 하여금 정부가 사회 기반시설이나 교육, 공공 보건 등을 제공하도록 요구함으로써 민간 투자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합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은 정부가 이러한 공공재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할 때 그 지도자를 선거를 통해 권력에서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한 개인이 누리는 경제적, 정치적 자유는 한 사회의 기술적 발전 수준이나 1인당 소득 수준과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개인이 누리는 자유와 국가의 번영이 오랫동안 양의 상관관계가 유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권위주의가 번영의 원천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가난한 나라들이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가지지 못한 사실이 그 나라들이 계속 가난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약 개인들의 가진 자유의 수준이 한 국가의 번영의 수준을 이끄는 것이라면 개인들이 가지는 자유가 변하는 것과 번영의 수준은 상관관계를 보여야 합니다. 급격하게 개인의 자유가 증가하는 것(혹은 권위주의가 붕괴하는 것)은 급격한 경제 성장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권위주의의 성장 기적에 대해 잘못된 질문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성장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묻지 말고 성장 기적이 권위주의가 덜 권위주의적으로 변하는 시기에 발생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입니다. 권위주의 성장 기적을 말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중국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중국은 마오쩌둥의 죽음 이후 개인들이 누리는 정치적, 경제적 자유에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중국 지도자들의 역할이 아니라 중국의 성장 신화를 설명하는 다른 설명은 바로 경제 주체인 개인들이 누리는 자유가 늘어났기 때문에 경제가 급격히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발생한 경제 기적을 설명하는 두 가지 상반된 설명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권위주의 정부가 기술적으로 선진국을 따라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권위주의적 요소가 감소하면서 개인의 자유가 증가하고 이것이 경제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주장이 실제 근거들과 더 부합할까요? 국가들의 경제 성장 사이클과 독재자가 권력을 차지했던 시기를 비교해봅시다. 만약 경제 성장의 가장 큰 변화가 독재자가 변할 때 발생했다면, 이는 특정한 개인, 즉 권위주의 지도자의 역할이 경제 성장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의 증거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 성장에서의 변화가 지도자의 변화 없이 이루어졌다면, 이것은 경제 성장에 있어서 권위주의 지도자 자체의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이는 경제 성장에 있어 국가 자체가 가진 가능성의 역할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구분하는 데 유용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만약 한 국가의 특정 시기에 권력을 잡았던 모든 지도자들이 높은 경제 성장율을 보였다면 이는 지도자보다는 그 국가 자체의 잠재력이 경제 성장에 더 중요했다는 말이 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 가장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한 시기에는 세 명의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독재자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변환을 목격한 노태우입니다. 이 세 명의 지도자가 군림했던 시기의 경제 성장이 한국이 지금까지 이룩한 경제 성장의 많은 부분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는 한국이라는 국가에 내재했던 잠재력이 그 시대의 지도자가 누구였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 지역 효과도 있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제 성장 기적이 동아시아에 몰려있다는 것을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높은 경제 성장이 특정 지역에 몰려 있었다는 사실은 지역별로 변천하는 힘이 있었으며 이는 각 국가의 권위주의 지도자의 역할을 더욱 더 작게 만듭니다. 후진국이 선진국의 기술을 따라 잡는 현상은 종종 이미 그 기술을 수용한 이웃 국가로부터 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일까요? 저와 저의 공저자인 스티븐 페닝스(Steven Pennings)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경제 성장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도자가 경제 성장에서 하는 역할이 거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경제 성장이 급격히 일어나는 시기는 지도자가 바뀌는 시기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경제 성장의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존재하는 것이 왜 우리가 권위주의 지도자에게 경제 발전과 관련해 그 역할이 거의 없거나 미미한데도 그들에게 큰 공을 돌리는지를 설명합니다. 몇몇 권위주의 지도자들은 운 좋게도 그들의 권력에 있을 때 경제 호황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종종, 호황은 이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전부터 시작되었고 그들이 권력에서 물러난 뒤 호황이 끝났기 때문에 경제 호황이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권위주의 지도자가 중요했다는 것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있을 때 호황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운 좋은 지도자들은 자신이 집권하는 동안 평균 경제 성장율을 부풀릴 수 있었고 권위주의 지도자들은 그럴싸하게 높은 경제 성장에 대한 자신의 공을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이죠.

경제 성장을 권위주의 지도자의 공으로 돌리는 만연한 신화는 경제 개발과 관련된 정책들이 집행되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디오피아 정부는 오랫동안 인권을 유리한 기록이 있음에도 최근 독재자 하에서 높은 경제 성장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세계은행으로부터 많은 차관을 받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2012년 사이에 세계은행 총재였던 로버트 졸릭(Robert Zoellick)은 2011년 4월 6일에 있었던 연설에서 ‘아랍의 봄’에 대해 말하면서 “민주적(democratic)”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가 세계은행 총재로 있었던 5년간 그가 한 연설문을 분석해보면 그는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세계은행과 국제 개발과 관련된 많은 권위 있는 기관들이 권위주의에 억압받는 사람들보다는 권위주의를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국제개발 전문가들의 권위주의에 대한 환상은 제가 앞서 언급한 근거들을 잘못 해석한 결과입니다. 이는 독재자가 서구의 개발 전문가들에게 이들이 원하는대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많은 권한을 준 것(민주주의에서 불가능한 것)과 관련해 세계은행과 같은 기관에서 일하는 서구 전문가들의 시각이 반영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Pro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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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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