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여객기 MH370 이 사라진지 13일째 되었던 날, 미국의 텔레비전 생존전문가 EJ “스컬크러셔” 스나이더는 CNN에 나와 우리는 절대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가 그에게 왜 가족들이 희망을 가져야 하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 우리는 절대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스나이더의 직업은 맨손으로 거친 자연과의 사투를 벌이는 것입니다. 그를 도와주는 것은 자신의 지혜와 디스커버리 채널의 제작진밖에 없습니다. 그는 승객들이 살아있을지 모른다고 말하며, “희망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누구도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비행기가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 착륙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그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만약 당신의 가족이나 아는 사람이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면, 당신은 그 가능성에 의지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스나이더가 너무나 진부한 “무슨 일이 있어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라는 논리를 꺼냈을 때, 그는 곧 자신의 말이 그저 말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준 셈입니다.
희망에 대적하는 것은 아기 판다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희망이야말로 우리를 폭정에 항거할 수 있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견뎌낼 힘을 주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 스나이더가 (그리고 제작진이) 희망을 버렸다면 그들은 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지난달 이코노믹 저널(the Economic Journal)에는 희망이 사람들의 기분을 실제로 나쁘게 만들 수 있음을 알려주는 연구가 실렸습니다. 연구진은 오랜 기간 실직 상태에 놓여 있다 은퇴할 나이에 이른 이들에게 일어난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25년간 모은 독일의 자료를 통해 이들은 실직 상태로 은퇴를 맞이한 이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크게 올라갔음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분석한 결과, 이는 복지의 증가 같은 혜택들 때문도 아니며, 다른 이들이 더 이상 그들을 무직자로 바라보지 않게 되기 때문도 아님을 밝혔습니다. 이들이 불행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실직 상태에 있을 동안 가졌던, 언제나 취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끊임 없는 압력을 느꼈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이 실직 상태에 있을때 이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은 희망이었고, 이 희망이 사라지자마자 이들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은퇴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이들은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이 다소 이상해보이는 주장은 또 다른 이상한, 그러나 실험 결과로 뒷받침되는 한 현상을 설명해 줍니다.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배우자를 잃는 것은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른 후 배우자를 잃은 이들은 직장을 잃은 이들보다 더 많이 회복됩니다. 이것이 새로운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배우자를 잃은 그들에게는 현실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것이 그들에게 회복할 힘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희망에 집착하는 오늘날의 문화에 우리는 작은 흠집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희망을 버리는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줍니다. 미국의 작가 존 프타첵(John Ptacek)은 부인이 말기암 진단을 받은 이후, 희망이 사라진 상태에서 의미를 찾는 일에 대해 썼습니다. “행복한 날이 오기를 바라며 보냈던 시간은 곧 삶을 외면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환경운동가 데릭 젠슨(Derrick Jensen)은 희망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대신 다른 이들에게 이를 기대하게 만듦으로써 사회 운동을 덜 효율적으로 이끈다고 믿습니다. “희망을 버리는 순간, 당신은 애초부터 당신이 희망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당신은 이를 통해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불교의 여승 페마 초드론(Pema Chödrön)은 냉장고에 “희망을 버리자”는 자석을 붙여 놓을 것을 주문합니다. 이는 잔인한 농담처럼 들립니다. 희망이 사라졌을 때 무엇이 남을까요? 아마 그녀는 우리에게 ‘현실’이 남는다고 말할 겁니다. 이는, 우리가 여전히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Guardian)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 비상 계엄령 선포와 내란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동안 쉬었던 스브스프리미엄에 쓴 해설 시차발행을…
우리나라 뉴스가 반헌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해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뉴스로 도배되는 사이 미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투표가 오늘 진행됩니다. 첫 번째 투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으로 투표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미국 언론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태에 큰 관심을 보이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안보…
View Comments
어장관리대상이라던가 스포츠팬이라면 모두들 '희망고문' 이라는 말을 알고 계실겁니다. 이 기사를 통해 희망을 버리고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 ㅜ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기사군요. 저는 희망을 품는 것이 창문 너머로 펼쳐진 언덕을 내다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노력해서 그 곳에 더 가까워질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것이고 창문 안쪽의 내가 있는 세상에서의 고통을 잠시 잊으며 위로가 될 수도, 그 세상 자체에 대해 망각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상황에 따라, 혹은 본인이 어떤 방식으로 품고 가는지에 따라 희망은 우리에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일에 희망을 갖는 일은 근거 없는 기대일 수도 있을 것이고 현재의 삶을 부정하면서까지 희망을 찾는 것이 허무한 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지혜로운 방식으로 희망이라는 감정을 '이용'할 수 있다면 삶의 추동력을 얻고 좀 더 발전된 상태로 나아가는 데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
좋은 댓글 잘 읽었습니다. 아침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 읽은 이 기사가 이번 침몰 사고와 겹쳐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희망인지 현실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