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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패스트패션을 이끄는 LA의 한국계 이민자들 이야기

지금 전 세계에서는 2주에 한 번씩 매장 디스플레이가 바뀌는 이른바 ‘패스트패션’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파리 패션쇼에서 히트친 옷이 한 달만 지나면 저렴한 가격에 팔려나가죠. 그렇다면 패스트패션은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스페인 기업 ‘자라’의 프로세스 혁신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지만 의류산업은 인터넷산업처럼 하루 아침의 혁신으로 탄생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닙니다. 디자인, 제조, 유통 등 수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죠. 제가 찾은 대답은 이 곳, “또감사 교회”입니다.

또감사 교회는 L.A에 있는 대형 한인 교회로, 포에버 21을 창업한 장도원, 장진숙 부부가 신앙생활을 꾸려가는 곳입니다. 포에버 21은 2012년 37억 달러 수익을 내는 대형 패스트패션 기업으로 전세계에 3만 5천 명 임직원을 고용하고 있죠. 그러나 제가 논하려는 건 포에버 21가 아니라, 이 기업이 탄생한 LA 다운타운의 자바 시장(Jobber Market)입니다. 패스트패션의 중심 자바시장에는 색색의 트렌디한 옷들이 가득 들어찬 쇼룸이 즐비하고, 거리는 옷박스를 나르는 사람들과 쇼핑하는 행인들로 분주합니다. 미국의 거의 모든 의류를 디자인, 생산, 유통하는 이곳은 한국인과 멕시칸이 장악한 지 오래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멕시칸 부부는 유통, 판매, 재고 관리를 담당하죠. 현재 이 곳의 한국 의류제조협회에 3천여 업체가 등록되어있는데, 실제로 영업을 하는 업체는 6천 개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구멍가게부터 포에버 21처럼 큰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까지 서로가 경쟁하며 이 작은 동네에서 자라납니다. 또감사 교회는 이 작은 한국인 이민자 사회의 커뮤니티로 누가 잘 나가고 누가 어렵다더라, 어디 창고는 좋다더라 같은 소문이 순식간에 파져나가는 진앙지이기도 합니다.

LA에 사는 한국계 사업자들은 이제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의류를 생산해 포에버21, 어반아웃피터스, T.J.맥스, 안트로폴로지, 노드스트롬 등 대형 의류매장에 납품합니다. 제가 애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제가 가르치는 뉴욕의 디자인 명문 파슨스에서 LA 에서 온 한국계 학생들이 수업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들은 졸업 후 가업으로 돌아가 디자인을 개선하고 사업을 확장할 꿈에 부풀어있죠. 지금 미국의 패스트패션은 이곳 LA 이민자 사회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의 의류 산업은 50년 역사를 거슬러올라갑니다. 노동집약적인 섬유산업은 노동력이 싼 1960~70년대 한국의 의류제조공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관련 뉴스페퍼민트 기사: 닉슨과 김치) 그러나 그 때만 해도 높은 실업률과 군부 정권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은 가난한 조국을 떠나 미국, 브라질, 그리고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언어도 모르고 자본도 없는 낯선 땅, 열악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건 결국 고향에서 하던 의류산업이었죠. 곧 한국계 이민자들은 상파울로, 부에노스아이레스, 광저우, LA, 그리고 뉴욕의 의류산업을 장악했습니다. “제 한국계 친구들은 결국 다 의류 사업으로 돌아왔어요. 대학졸업자들까지도요. 의류업계의 한국인 파워가 크다보니 자리잡기가 가장 쉬웠죠.” 그리고 1980~90년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경제가 무너지자 이들 남미로 갔던 이민자들도 LA로 넘어옵니다.

한국인 커뮤니티는 원단부터 샘플 제조, 제봉, 유통업자에 이르기까지 브라질, 중국, 베트남의 협력업체를 꿰고 있습니다. 딱 하나 부족한 게 있다면, 세련된 서구식 패션감각이었죠. 2000년대 사업이 주춤할 즈음 이민 2세대가 사업에 합류합니다. 부모의 옷가게에서 자란 2세대들은 파슨스 같은 명문 디자인 대학이나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사업에 합류합니다. 파리, 런던, 밀라노, 뉴욕 등 전 세계로 퍼져 패션을 공부한 이들이 LA로 돌아와 브랜드 재정립, 세련된 쇼룸 단장, 이커머스 도입에 박차를 가했지요. 그리고 내부의 경쟁은 더 창의적인 디자인과 속도, 사업의 번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거의 매일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는 포에버 21의 사업 모델은 이곳 자바 시장의 의류 클러스터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했습니다. (Pacific Stan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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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sangju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열린 인터넷이 인류의 진보를 도우리라 믿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테크 낙천주의자 너드입니다. 주로 테크/미디어/경영/경제 글을 올립니다만 제3세계, 문화생활, 식음료 관련 글을 쓸 때 더 신나하곤 합니다. 트위터 @heesangju에서 쓸데없는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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