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배우)이나 에이미 와인하우스(음악가), 크리스토퍼 히친스(작가)와 같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젋은 나이에 약물이나 술과 관련된 질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마다 “정말 술과 마약은 우리의 창의력을 더 키워주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그렇게 타고난 술꾼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는 그런 뛰어난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전설적인 작가가 동시에 전설적인 술꾼이었던 경우는 매우 많습니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케루악, 카포티, 파커, 챈들러, 치버 등 우리는 수많은 작가들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그리고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
그러나 이러한 상관관계처럼 보이는 현상이 곧 약물이 창의력의 근원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창의력의 근원에 대해 데이비드 쉥크는 그의 최신작 “우리 안의 천재: 유전학, 재능, 지능에 대한 새로운 생각(The Genius in All of Us)”에서 우리가 특별한 재능이라고 부르는 능력은 “이른 시작, 특별한 교육, 꾸준한 연습, 가족의 지원, 그리고 아이의 학습의지라는 모든 요소의 조합”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 역시 이 요소들만으로 창조적 성공이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맛있는 수플레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재료들이 적절한 양만큼 적절한 시점에 더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앞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에 대한 설명은 쉘리 카슨의 책 “자유로운 마음: 왜 창의적인 사람들은 괴짜인가(The Unleashed Mind)”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창의력과 괴벽이 같은 근원을 가지며 이는 곧 한 사람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뇌에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자신만의 인지적 거름 장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도로 창의적인 이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진 속박을 무시하며, 이를 통해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격의 “특성(trait)”은 “인지적 탈억제(cognitive disinhibition)”라고 불리며, “현재의 목적이나 생존과는 무관한 정보를 무시하지 못하는 능력”으로 설명됩니다.
한편, 창의적인 이들이 가진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능력은 곧 세상의 규칙 또한 다르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는 곧, 도덕적 해이와도 연결되게 됩니다.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지에 실린 한 보고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규칙은 깨어지기 위해 있는거지’라는 농담에 포함된 감정은 창의적인 행위와 불성실한 행동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이를 통해 부정행위를 하는 이들 중에 창의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이 발견되는 것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불성실한 행동을 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 창의적으로 바뀌며, 이는 다시 이들의 행동을 더 불성실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창의력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창의력이 술이나 약물에서 발생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창의력이 위험한 이유는 사회의 규칙을 어기고 이를 정당화함으로써 자신과 다른 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Psychology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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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정말 한심하군요...^^
그럴 '수' 있다
창의적인 사람의 도덕적 해이를 용인해 주는 사회라면 이런 글이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상에 그런 곳이 있나요? 더군다나 대한민국 사회는 개인에게 '질서의 순응'을 요구해 오다가 얼마 전부터는 '창의적 능력'도 갖춰야 살아남는다고 협박에 가까운 조언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글에 따르면 서로 상반되는 가치라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라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글의 저자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공감이 되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