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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버려야 할 과학적 아이디어 V – 과학이 과학자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Edge.org 재단의 질문인 ‘어떤 과학적 아이디어를 버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일리노이 대학의 인류학자 케이트 클랜시는 우리가 과학을 연구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해 나는 과학자들의 현장연구 경험을 조사하는 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60% 이상의 응답자가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20%는 성추행의 경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응답에서 성적인 측면은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응답자들은 예고 없는 야근과 화장실 이용의 금지, 언어적 폭력과 따돌림, 심지어 급식의 금지와 같은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말했습니다. 이러한 행위의 주동자들은 고참 과학자였고 희생자는 대부분 여성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이 연구를 수행하며 내가 놀란 사실은, 이런 현실에 대한 어떠한 선행연구나 자료도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의 진보가 주는 보상은 막대합니다. 안정된 정교수 자리가 주어지며, 수백만달러의 연구비를 받을 수 있고 때로 뉴욕타임즈의 표지에 오르거나 운이 좋다면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보상들은 과학의 진보를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이든 감수해야 할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나는 이 아이디어, 곧 “과학이 과학자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우리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이 과학자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과학계를 너무나 이상적으로 여기는데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과학계가 철저하게 학문적 성과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이를 수행하는 학자가 누구인지, 그가 어디 출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득수준과 직업, 학위자의 비율은 인종, 성, 그리고 인간의 여러 다양성에 크게 의존하며 과학계의 구성원들 역시 이들 요소들에 의해 정해집니다. 과학계를 최대한의 선의를 가지고 바라본다 하여도, 과학계를 이끄는 것은 사람들이며 이들은 무의식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를 다룬 연구들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연구가 의미하는 바를 모든 과학자들이 이해하고 있는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회가 가진 무의식적 편견이 과학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의 의미는 곧 과학계 내부에서도 약자와 소수자들을 과로와 괴롭힘과 같은 방법으로 착취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일반인들이 과학자들을 일벌레로 인식하고 있는 점도 문제가 됩니다. 과학자들의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논의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논의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시간과 우선순위를 조절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이런 논의가 이미 과학계에 편안하게 자리잡은 자들의 사치로만 생각됩니다. 실험실의 막내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논의는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과로와 착취에 기반한 연구가 인간적이고 평등한 연구환경에서의 연구보다 더 효율적인 것도 아닙니다. 최근 한 사회관계연구는 여성이 실험실의 주변인이 아니라 동등한 협력관계가 될 때 더 많은 논문을 발표한다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또한, 실험실 내에 지켜야 할 것들을 분명히 하고 부당한 행위를 누구나 지적할 수 있게 만들었을 때 직업환경이 개선되고 보다 생산적이 되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는 과학 자체를 위해서도 과학자의 삶이 과학의 진보보다 우선순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물론 많은 고참 과학자들 역시 여러가지 위협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쫓겨날 수 있다는 걱정과 정교수가 되지 못할지 모른다는 걱정, 연구를 위한 지원금이 끊어질 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공포가 미래의 과학자들을 쫓아내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학문적 성공의 기준은 생존력이나 부당한 처우를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학문 자체에 대한 기여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대학원생들을 위한 노조가 설립되어야 하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참 과학자들 역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작업환경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적 진보를 위한 조건입니다. (Scientific Amer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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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t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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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원 진학을 앞둔 여성 이공계인으로서 씁쓰름한 현실에 댓글 하나 달고 갑니다. 랩에서의 보조자에 지나지 않는 여성 과학자의 위치가 속히 바뀌는 것이 과학의 진보에도 이바지하는 일이겠죠

  • 글쎄요.이건 "여성 이공계인"이 보조자에 지나지 않는게 아니라, 대학원생이 보조자
    취급을 받는 이상한 문화 때문인 걸로 보이네요.
    대학원생은 남녀 불문하고,그리고 랩에 들어온 순서에 의해 결정되곤 하는 희한한
    서열에 따라 아래 사람 취급을 받는 괴상한 문화가 있는데 이건 주로 한국에서 심한 거고요.
    학생이나 박사급 연구원이 연구 책임자의 실적을 위해 이용되는 도구 정도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리고 자극적으로 제목을 달았는데, 실제 내용은 과학과 과학자의 관계라고 보기는 좀 어렵군요.
    이런 문제는 대학원생이 조합 만들어서 피켓 들고 임금 인상 시위하는 미국처럼, 연구실 책임자가 왕처럼 행동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연구실 내 약자들의 조직을 만들어서 해결할 문제로 보입니다.
    그리고 연구실 내 약자가 연구에 주도권을 쥔다고 해서 인생의 다른 부분보다 연구를
    우선시하는게 꼭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단지 연구가 자신이 원하는 주제나 방식에 따라
    결정되도록 하는 변화가 있겠지요.
    연구가 좋아서 연구하러 온 사람들에게는 이게 훨씬 중요한 문제거든요.
    책임자하고는 충분히 큰 갈등을 만들 수 있는 문제고.

    • 대학원생이 보조자 취급을 받는 문화나 아랫사람들이 실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는 과정의 토대에는 결국 "과학자는 라면만 먹어도 된다"거나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대표되는 "과학이 과학자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연구가 좋아서 연구를 하러 온 사람들 중에도 연구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어느 만큼 희생시킬 수 있느냐는 사람에 따라서 모두 다를 겁니다. 이때,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오늘날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도덕이 과학분야에서도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본 글의 첫번째 함의이며, 궁극적으로 각자의 기준이 보다 인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본글의 핵심적인 내용이라 생각해 본글의 제목을 그렇게 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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