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은 종종 2차대전의 전주곡 정도로 묘사되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50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끔찍한 전쟁이었습니다. 대놓고 권위주의를 앞세웠던 프랑코파도 프랑코파지만, 공화파 역시 도덕적으로 고결하고 민주적인 집단이라 보기 어려웠습니다. 공화파와 프랑코파의 열혈 지지자들은 소수였지만 온 국민이 선택을 강요당해 전쟁에 휘말렸고, 엄청난 혼란과 분열이 뒤따랐죠. 스페인의 기억 속에 그 상흔은 생생합니다. 지난 75년 동안 내전에 대한 수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이 스페인 사회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있다 해도 친공화파적 시각에서 프랑코 시대를 문화적 암흑기로 파악한 연구가 대부분이죠.
그렇기에 반사적인 친공화주의에 반기를 든 영국의 문학 평론가 제레미 트레글론(Jeremy Treglown)의 신간 <프랑코의 지하실: 1936년 이후 스페인의 문화와 기억(Franco’s Crypt: Spanish Culture and Memory Since 1936)>은 아주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작가가 프랑코파의 편을 들거나 변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철저히 배제한 채 당대의 문화를 바라보죠. 트레글론은 프랑코 집권기의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프랑코 정권의 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서구의 비위를 맞추려던 기회주의적 정권이 이미 풍요를 경험한 스페인 국민들을 대상으로 제한된 다원주의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현재 스페인의 정치인들이나 프랑코 정권이나, 전쟁의 기억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바가 없습니다. 프랑코는 집권 직후 마드리드 외곽에 “망자의 계곡”이는 추모 구역을 설정하고 카톨릭 성당을 지었습니다. 프랑코파는 내전 당시에도 스스로를 십자군과 동일시했고, 교회와의 유대를 이용해 정당성을 획득하려 했습니다. 이 전략은 정권 초기에 유효했으나, 유럽에서 기독민주주의가 부상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신학적인 변화가 일어나자 카톨릭교도 공화파 국민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1950, 60년대에는 학생, 지식인, 노조, 언론 등 각계 각층에서 반 프랑코 전선이 형성되었고, 유학생과 관광객을 중심으로 스페인과 다른 유럽 국가들 사이에 문화, 사회적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트레글론은 이 시기 사회적 변화와 발 맞추어 일어난 문화, 예술 분야의 발전에 주목합니다. 프랑코 정권은 스페인 민주주의의 재건으로 이어진 사회적 변화를 철저하게 억압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예술가들의 전위적인 움직임도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도 끊임없이 미학적, 도덕적, 정서적 복합성을 띤 작품을 쏟아냈습니다. 이들은 동족상잔의 편가르기에 휘말리는 대신, 전쟁과 전쟁 이후 시기를 살아내고 견뎌낸 보통 사람들의 품위와 인내, 재치에 주목했죠. 프랑코 정권이 앞세우던 민족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의 민족주의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정치를 넘어선 작품을 남긴 작가로 트레글론은 프랑코파로 참전했지만 후에 정권 감시자의 역할을 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카밀로 호세 셀라(Camilo José Cela)와 공화파로 참전했던 라몬 센데르(Ramón Sender)를 소개합니다.
스페인의 민주화는 정치, 사회, 경제 부문의 엘리트들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술을 통해 화합의 분위기를 마련한 예술가들에게도 큰 빚을 지고 있죠. 그런 분위기가 있었기에 프랑코주의자들의 자녀 세대가 권위주의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었던 겁니다. 1950, 60년대 유럽을 휩쓴 학생 운동의 주역이었던 이 세대는 프랑코 정권을 지지하거나, 차악이라고 생각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나쁜 점들을 가려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시 학계와 행정부, 경제계 등의 실무자로 자리를 잡고 문화와 예술이 피어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습니다. 그리하여 스페인 사회는 억압적인 정치와 수 많은 문화 비평가, 정치적 반골들이 공존하는 모호한 성격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실제로 프랑코 정권 종식 후 첫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사람들 중에는 프랑코 치하에서 감옥살이를 한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예외였던 단 한 사람, 미구엘 보이에르(Miguel Boyer) 재무장관은 오히려 동료 사회주의자들을 설득해 전통적인 의미의 좌파적 경제 정책 대신 중도 정책을 펼쳤던 인물이죠. 이렇게 체제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면서도 정권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은 스페인의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는 이상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좌우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타협도 해가며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죠.
오늘날 스페인은 장기 경제 위기와 분리주의의 부상,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분열이 극단으로 치닫는 사태는 없습니다. 이는 스페인 사회에 통합적이고 중도적인 실용주의적 전통이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트레글론이 짚어낸대로, 그 전통은 가장 지독한 시기에도 스페인을 하나로 유지시킨 힘이니까요.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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