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가장 큰 속임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든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악마의 이 계획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2007년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0%는 악마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악의 의인화”는 실제 우리의 판단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악(Evil)이란 무고한 타인에게 고의적인 해를 입힘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감정으로 정의됩니다. 2차대전 이래, 악은 사회심리학자들을 매혹시켜온 연구주제입니다. 커트 레빈, 스탠리 밀그램, 솔로몬 애쉬와 같은 선구적인 학자들은 인간이 어떤 때에 악을 행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악인이란 타고나는 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이들 과학자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악이란 보다 “평범성(banal)”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밀그램의 복종실험과 짐바르도의 감옥실험에서 드러났듯이, 심리학자들은 악한 행동의 근원에는 매우 평범한 심리학적 요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순수한 악”이라는 개념이 그저 신화에 불과할 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실제 “순수한 악”의 존재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순수한 악에 대한 믿음은 곧 그 자체로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며, 최근 연구자들은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순수한 악에 대한 믿음 (BPE, belief in pure evil)’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BPE를 가진 사람들은 악인의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이들이 바뀌지 않는다고, 곧 악인은 악인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동시에 다음 두 가지를 주장합니다. 그것은 악인을 교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악을 근절하기위해서는 악인을 근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BPE와 도덕적 판단의 관계를 실제로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BPE를 가진 사람들이 ‘범죄에 대한 과도한 처벌’, ‘사형제도’, ‘범죄인 교화제도에 대한 반대’역시 지지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후속 연구는 BPE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더 위험하고 악한 곳으로 인식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선제적 공격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목적을 위해 고문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만약, 수십년간의 사회심리학 연구가 옳다면, 즉 적어도 어떤 폭력이나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 중 일부라도, 이들이 ‘순수한 악인’이 아닌, 다른 환경에서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위의 결과들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순수한 악’에 대한 믿음은 이들로 하여금 세상을 더 위험하고 악한 곳으로 여기게 만들며, 이는 다시 이들이 타인을 경계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게 함으로써 이 세상을 더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아마 악마의 가장 큰 속임수일지 모릅니다. (Scientific Amer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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