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 주: 지난 주 Aeon 에 올라온 이 글은 많은 화제를 낳았습니다. 내일은 이 글에 대한 리처드 도킨스의 답변을 올리겠습니다.
수 년 전, 약 3만5천명이 참석했던 신경과학 학회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두 메뚜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평상시의 메뚜기와 메뚜기 떼(locust) 속의 메뚜기입니다. 평상시의 메뚜기는 긴다리와 긴 날개를 가진 멋있는 곤충이며 여유롭게 먹이를 먹고 느리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메뚜기 떼가 형성되면, 이들은 짧고 굽은 다리를 가지고 바쁘게 날아다니면서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사나운 곤충이 됩니다. 놀라운 점은 이들이 같은 유전자를 가진 같은 곤충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먹이가 부족할 낌새가 보이면 몇 일, 또는 몇시간만에 사나운 메뚜기 떼로 변신합니다.
이들의 변신은 세로토닌 수치의 증가와 함께 시작합니다. 이는 표현형의 변화를 가져오며 다리와 날개를 짧게 만들고 색깔을 변화시킵니다. 이들의 뇌는 새로운 복잡한 행동양식을 익히기 위해 커집니다. 미처 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메뚜기들은 광폭해진 자신의 동료들에게 먹혀버리고 맙니다.
이 현상의 핵심은 이들의 유전자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유전자를 해석하는 방식, 곧 유전자의 발현(expression)이 바뀝니다. 지킬박사가 하이드로 변하듯이, 유전자를 해석하는 방식의 변화는 완전히 다른 생명체를 만듭니다.
이렇게 유전자의 발현은 생명체의 차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촌충과 절반의 유전자를 공유하며, 소와는 80%를, 침팬지와는 99%를 공유합니다. 유전자의 차이는 각 생물의 실제 차이에 비해 극히 적으며, 이는 곧 생물체의 차이는 유전자의 발현에 더욱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유전자를 읽는 방식만을 바꿈으로써 생물체를 이렇게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면 왜 우리는 진화를 위해 유전자를 굳이 바꾸어야 할까요? 과연 유전자의 차이가 생물체의 차이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 것일까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있어 우리는 진정 유전자의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진화의 주인으로서의 유전자의 역할을 너무 과장한 것이 아닐까요?
위의 질문들은 지난 20년간 유전학자와 진화론 학자들 사이의 주요 이슈였습니다. 코스타리카의 스미소니언 열대연구소 소속의 매리 제인 웨스트-에버하트는 발현의 차이에 의해 생물체의 특성이 바뀌는 현상은 거의 모든 생물에게서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듀크대학의 생물학자 그레고리 레이는 유전자 해석의 유연성이 적응의 유연성을 쉽게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즉, 환경에 따라 발현을 바꿈으로써 생물은 적응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 세계의 학생들은 유전자 중심적 진화론을 배우고 있습니다. 멘델이 완두콩을 관찰한 1860년 이래, 특히 지난 50년간 유전자는 생물체의 주인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군의 생물학자들은 유전자를 모든것을 지휘하는 건축가가 아닌, 건축물을 관리하는 여러 관리인 중의 한명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생각은 지도자들이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역사의 하수인이라는 톨스토이의 역사관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 역사관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위대한 통찰로 인해 러시아 혁명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인내가 극에 달했을 때 마르크스와 레닌이 그 상황에 빠르게 올라탄 결과가 러시아 혁명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아이젠하워의 뛰어난 계획보다는 미국과 영국의 수많은 병사들의 기지에 의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레이와 웨스트-에버하트가 유전자를 변화를 이끄는 요인이 아니라 변화를 따라가는 요소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의 역사관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오늘날 유전자의 역할이 이렇게 강조된데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30년대 피셔, 할데인, 라이트 등이 수학적으로 유전자의 작동원리를 밝혔고 60년대 해밀턴과 윌리암스가 유전자는 개체를 탈것으로 이용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유전자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도킨스는 자신의 놀라운 글쓰기 능력을 이용해 묘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아이디어를 오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쉽게 풀어냈습니다. 이 책은 아름다움과 단순함, 그리고 경이로운 주장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레이와 웨스트-에버하트, 그리고 다른 생물학자들은 그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들이 도킨스의 주장을 완전히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UC버클리의 마이클 아이젠은 유전자 중심주의는 역사의 유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유전자 중심주의는 진화를 설명하는 매우 쉽고 간편한 방법이었으나 정확한 묘사는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유전자의 변화에 의해 생물체가 변하는 것은 진화가 일어나는 여러 방법들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진화가 일어나는 다른 방법에는 웨스트-에버하트가 주장하는 “유전적 순응(genetic accomodation)”이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웨스트-에버하트는 1979년부터 말벌을 연구해왔습니다. 일벌과 병정 벌, 여왕벌은 모두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이들은 자신의 발현을 바꿉니다. 그녀는 리처드 도킨스에 대항해, 꾸준히, 유전자는 진화를 이끄는 존재가 아니라 진화를 따라가는 존재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유전적 순응은 다음의 세단계를 거쳐 이루어 집니다. 먼저, 생물체, 또는 집단은 발현을 바꿈으로써 자신의 표현형(기능 및 형태)를 바꿉니다. 그리고 이 표현형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유전자들이 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유전자가 집단내로 퍼져갑니다.
예를 들어, 숲속의 포식자 무리가 있었다고 가정합시다. 이들은 나무사이에 숨었다가 먹이가 지나갈 때 그들을 덮칩니다. 이들은 지속적인 스피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단지 잘 숨는 능력과 순간적인 재빠름을 필요로 합니다. 어느날, 화재로 인해 숲이 타버렸습니다. 이제 이들은 들판에서 사냥을 해야 합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근육을 사용하여 빨리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가진 특정 유전자가 발현을 통해 빨리 달리기를 도와줍니다. 이들은 이미 발현에 의해 다른 동물이 되었습니다. 이제 스피드는 번식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점점 강한 근육을 갖게 되고 더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개체가 더 강하고 빠른 근섬유를 만드는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제 이 개체의 유전자는 곧 집단내로 퍼져갑니다.
위와 같은 시나리오는 더 이상 유전자 중심적이지 않습니다. 이제 유전자는 이미 발현된 기능에 올라타는 역할만을 가지게 됩니다. 일리노이 대학의 진 로빈슨은 아프리카 말벌이 이런 유전적 순응에 의해 오늘날 다른 일벌들과 다른 유전자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최초에 아프리카로 진출한 일벌은 자신들의 포식자에 대항하기 위해 더 큰 공격성을 가져야 했고 더 많은 병정벌로 발현했습니다. 어느날 더 강한 공격성을 주는 유전자가 등장했고, 이 유전자는 곧 집단내로 퍼졌을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표현형 유연성을 공부한 이후 리처드 도킨스에게 이에대한 생각을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정말 유전자는 진화를 이끄는 존재가 아니라 따라가는 존재인지 물었습니다. 그는 교묘하게 유전적 순응은 새로운 생각이 아니며, 이 변화를 고정시키는 것은 결국 유전자이고, 모든 것은 유전자로 돌아온다고 말했습니다.
웨스트-에버하트는 그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오랫동안 적응을 결정짓는 특성에 특정한 유전자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녀는 도킨스와 다른 많은 생물학자들이 발현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유전자 중심적 설명을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진화는 유전자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유전자가 진화에 관여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가진 모든 유전자들(genome)만이 아니라, 다른 개체의 유전자들도 관여하며, 무엇보다도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제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이 아니라 ‘사회적 유전체(social genome)’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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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인데... 마지막 번역이 잘렸네요. 아쉽...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본문을 읽으면, 결국 도킨스의 말처럼 유전자가 키인거 같내요.
어떠한 큰 변화의 계기는 결국 유전자니깐요.
시대적 흐름의 변화 (숲이 불타서 근육이 필요한건), 말그대로 시대적 요구사항일뿐,
그것 자체가 생물 변화 그 자체는 아니라고 봅니다.
'진화'가 어떠한 생물체, 혹은 집단의 유전자가 변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결국 유전자가 '키'가 되는 것은 맞습니다.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는 분명 다르니까요. 하지만 잘 알려진대로 도킨슨 류의 주장에선 이러한 진화의 과정을 유전자가 이끈다고 설명하지요. 말 그대로 선도한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표현형(phenotype)이 차지할 자리는 별로 없습니다. 반면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유전자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느냐, 즉 '표현형'입니다. "숲이 불에 탔다 -> 스피드가 중요해진다 -> 스피드가 강한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살아남고 번식한다 -> 스피드에 도움을 주는 유전자가 퍼진다" - 라고 설명을 한다면 도킨슨 류의 주장에 가깝죠. 하지만 에버하트 류의 주장에 따르면 숲이 불에 탄 이후에, 이미 표현형이 변하기 시작하지요. 이것은 중대한 차이입니다. 유전자의 생존 및 번영이 결정되기 이전에, '이미' 표현형이 변했고, 이것이 유전자의 생존 및 번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니까요. 다시 말해 어떤 표현형이 발현되느냐에 따라, 진화의 방향성이 바뀔수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도킨슨 류의 주장에서도 환경은 진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소위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환경의 위치는 절대적이니까요. 하지만 이 맥락에선 절대적 환경과 절대적 유전자만이 존재 할 뿐입니다. 주어진 환경이 각 개체의 생존과 번영을 결정하고 이는 유전자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환경-유정자형(genotype) 만이 제 역할을 하는 겁니다. 표현형이 들어갈 자리가 없죠. 이 맥락에 대한 반대급부로 '사회적 유전체(social genome)'라는 개념이 등장한 겁니다.
이런 개념과 도킨슨 류의 주장에는 아주 미묘하고 별 다를 게 없어보이는 차이만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무척 중대한 시사점이 있기도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유전자로 돌아온다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돌아오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덥칩니다.->덮칩니다.
오랬동안->오랫동안.
항상 감사합니다.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결국 유전자가 중요하단 이야기쟎아요. 도킨스의 책은 유전자가 무슨 생각이 있어서 변화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아닐텐데요.
번역이 아니라 요약이군요.
네, Hong 님. 저희는 외신을 요약번역하고 있습니다.
원문은 5300단어이며 이 글은 900단어 입니다.
도킨스의 주장은 유전자가 진화를 선도한다는게 아닙니다 유전자자체가 진화하는 대상이라는거죠
좋은 번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