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 쯤은 특정 소매점들이 무리지어 한곳에 상권을 형성하는 경우(클러스터링: clustering)를 목격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용산에 가면 전자소매상들이 있고, 경동시장에 가면 한약재상들이 있으며, 종로는 귀금속, 명동에는 옷가게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특정 소매점들이 무리를 지어 상권을 형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얼핏 생각하기에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상점들이 떨어져 있는 것이 서로의 상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더 이익일 것 같은데 말이죠.
중심지 이론(Central Place Theory)는 이러한 클러스터링 현상이 저차 상품(lower ordered goods: 우유, 달걀과 같이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제품)보다는 고차 상품(higher ordered goods: 자동차와 같이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구매하지 않는 물품)을 다루는 소매상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구매를 위해 주기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저차상품과는 달리, 일상적으로 구매할 필요가 없는 물건의 경우 더 먼거리라 할지라도 소비자들은 기꺼이 이동을 감수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테헤란로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 일상적인 점심을 해결하려 명동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역삼동 주민은 충분히 명동까지 옷을 사러 이동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차상품을 취급하는 상점은 자연스럽게 특정 상권의 중심지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상점을 들르기 위해 원거리에서 찾아오는 잠재고객들을 쟁탈하려는 목적으로 다른 상점들이 그 상점 주위로 속속 모여 들면서, 우리가 클러스터라고 부르는 고차 중심지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경제학자 해롤드 호텔링(Harold Hotelling)은 클러스터링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좀더 동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해변에, 두 개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래 그림 1 에서처럼, 파란 가게는 왼쪽 끝에, 녹색가게는 오른쪽 끝에 위치한다고 가정합니다. 소비자들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선택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이스크림 가게까지의 거리”라고 가정한다면, 이 상황에서 파란 가게와 녹색 가게는 똑같은 시장 점유율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파란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 욕심을 내어 중앙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하면(그림 2), 파란 가게의 시장점유율이 녹색 가게를 앞지르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이 이동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파란 가게에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시장 점유율을 뺏긴 녹색 가게 주인 역시 중앙으로 가게를 이동하여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파란 가게와 녹색 가게의 시장 점유율은 다시 한 번 같아 지게 되고 말죠(그림3). 이러한 일련의 이동 과정을 몇 번 거치고 나면, 결국 파란 가게와 녹색 가게는 그림 4와 같이 중앙에 한데 모여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호텔링은 이처럼 손님을 두고 벌어지는 두 아이스크림 가게의 점유 경쟁 과정이, 특정 소매점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Planetiz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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