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지에 실린 Ira Stoll의 칼럼입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사망 50주기가 다음 달로 다가오면서 그 이름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시점에, 저는 널리 알려진 오해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바로 케네디가 진보주의자였다는 오해입니다. 통상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케네디는 당시의 기준으로나 지금의 기준으로나 정치적 보수주의자에 가깝습니다. 국방 예산을 늘이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연방 정부 지출은 엄격하게 관리했고, 경제 성장 정책에 있어서는 정부 부채보다 세금 인하와 그에 따른 자연스런 세입 증가를 강조했습니다. 자유무역을 강조하며 관세를 인하했고, 국내외에서 공산주의에는 강경한 태도를 취한 인물이었죠.
그를 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보좌관으로부터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케네디의 핵심 참모였던 시어도어 소렌슨(Theodore Sorenson)은 “케네디가 재정적 보수주의자였고, 역사가들이나 언론, 주변인들이 그를 이런 저런 이유로 진보주의자로 대했으나 그는 스스로 자신을 훨씬 더 보수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진보주의자인 케네디가 외교 정책에 있어 상대를 협상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용어(악, 적, 공산주의자 등)를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닙니다. 그가 냉전을 선악 구도로 표현하거나, 공산주의를 적으로 규정한 사례는 여러 연설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리처드 닉슨 역시 “케네디가 TV 토론회를 통해 6000만 시청자들에게 나보다 카스트로 정권에 훨씬 강경하다는 인상을 남겼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쿠바 미사일 사태 때도 비둘기파 참모들의 자문을 물리친 바 있죠. 영리한 정치인들은 이와 같은 케네디의 진짜 모습을 잘 활용했습니다. 빌 클린턴은 1992년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케네디 도서관에서 밀어붙였고,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부시 역시 감세를 추진하면서 케네디의 이름을 거론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케네디 당시에는 세율이 더 높았기 때문에, 그때의 감세 정책과 부시, 레이건의 감세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싶어하지만, 당시 그에게 감세가 아닌 정부 지출을 권유한 참모들의 주장은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의 주장과 매우 흡사합니다. 케네디는 이들의 조언을 물리치고 감세를 추진했죠. 케네디 정부의 상징이 된 평화봉사단이나 달 탐사 프로젝트 역시 개도국과 우주에서 소련을 압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NASA 예산 관련 회의에서 케네디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소련보다 먼저 사람을 달에 보내는 것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큰) 돈을 여기에 쏟아부을 이유가 없죠. 난 우주에 별 관심이 없어서…”라고 말한 것이 녹음 테이프에 남아있기도 합니다.
케네디가 보수주의자였다는 것은 오늘날 진보, 보수 모두에게 불편한 진실입니다. 진보 측에서는 카멜롯의 후광을 보수주의자들에게 둘러주는 느낌일 것이고, 케네디 일가를 맹렬히 비난해 온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겠죠. 그러나 오늘날 그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흐려져 가는 가운데, 불편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 모습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인식하는 것이 그를 제대로 기리는 방법일 것입니다.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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