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중국이 쿡아일랜드에 법원 건물을 지어주었는데, 화장실의 구조가 쿡아일랜드인들의 체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중국이 해외 원조에 적극 나서기 시작하면서, 서구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이 원조 분야의 국제 기준과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서구의 해외 원조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정립된 규범과 질서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원조 단체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조하고, 수혜국의 시민사회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우수 관행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원조 단체들이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준이 있고 이를 따르기 위해 노력하죠. 중국의 해외 원조가 서구의 해외 원조와 다른 모습을 띠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이 서구의 룰을 따를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식민 지배의 역사가 있는 서구 국가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해 남-남(South-South)협력의 개념으로 해외 원조의 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 해외 원조의 속사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합니다. 우선 중국의 해외 원조 프로그램에는 경쟁적인 이해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이미 세워진 규범은커녕 독자적인 규범조차도 일관성있게 적용하기가 힘든 실정입니다. 원칙적으로 해외 원조는 총리와 부총리, 국무위원, 각 부 부장들로 이루어진 국무원에서 결정하고, 이 결정은 상무부로 전달됩니다. 상무부 내 해외 원조를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연간 50억 달러의 예산을 운영하지만 직원은 100명도 안 됩니다. 각 수혜국 단위로 내려가면 중국 대사관의 직원 한 명이 나라 전체의 원조 프로그램을 담당하는데, 그나마도 더 중요한 업무에 밀리기 마련이죠. 또한 대형 은행이나 국영 기업의 입김이 대단합니다. 수혜국에 후한 조건으로 대출을 제공하고 중국 업체와 계약을 맺어 원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식으로, 상업적인 이해가 개입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저렴한 비용으로 프로젝트를 끝 마치는게 목표가 되니, 국제 해외 원조 규범인 지역사회와의 의견 교환이나 사회/환경 영향 평가는 관심 밖이죠. 그 외에도 재정부나 외교부, 교육부, 보건부는 물론이고 지방 정부에서 운영하는 해외 원조 프로그램도 있는데, 영역 다툼이 심한 관료 사회에서는 정보 공유도 잘 되지 않고 따라서 원조 프로그램들이 효율적으로 실행되기가 어렵습니다. 해외 원조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에서 내부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해외 원조가 웬 말이냐는 국내의 여론과도 싸워야 하죠.
이런 배경으로 보아, 중국이 해외 원조의 분야에서 서구의 자리를 밀어낼 것이라는 예측은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실제로 수혜국에서도 중국이 제공하는 원조에 조건이 붙는 것을 경계하는 움직임도 있고, 중국 원조 기관이 날림으로 지어 놓고 간 시설들이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많은 개도국들은 중국의 원조를 서구 원조의 대체재로 생각하기 보다는 보완재로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수혜국들에게는 옵션이 늘어나는 셈이니까 좋은 일일 수도 있겠네요. 분명한 것은 중국이 국제 사회의 규범을 따를 가능성이 낮은 만큼, 중국식의 해외 원조가 새로운 규범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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