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내륙국가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Asunción)에 있는 중앙은행 건물 1층 로비에는 올해 연 13%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 실적을 자랑스레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도심에서 차로 몇 분만 나가면 끝없이 이어지는 빈민촌에는 쓰레기더미를 헤치고 고물과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남쪽으로 브라질, 북쪽으로 아르헨티나에 둘러쌓인 내륙국가 파라과이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콩과 옥수수 같은 작물들의 기업형 농업에 나라 경제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농작물을 팔아 얻는 수익의 대부분을 땅주인을 비롯한 소수의 부자들이 독식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경작 가능한 땅의 77% 가량을 상위 1% 부자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수도 아순시온에 들어선 온갖 럭셔리 매장들의 고객도, 인근 고급휴양지에서 돈을 흥청망청 써대는 사람들도 소수의 부자들이지 하루 벌어 하루를 살기 급급한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겁니다.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빈곤층인데도 파라과이 정부는 세금조차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체계가 안 잡혀 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소득세를 도입했고 대부분 세율도 10% 정도로 낮지만 워낙 허점이 많다 보니 탈세가 만연해 있고, 재원이 부족하다 보니 사회복지 프로그램이나 사회안전망은 형편 없습니다. 19세기 전쟁에 이어 20세기 오랜 기간 동안 독재정권을 거치며 토지의 분배정의란 아예 사라져버렸고, 이는 최근 들어 국지적인 분쟁과 유혈사태로 이어졌습니다.
2008년 가톨릭 주교 출신으로 민주적인 정권교체에 성공하며 대통령직에 올랐던 페르난도 루고(Fernando Lugo)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았지만, 끝내 지배계급의 벽을 넘지 못하고 지난해 탄핵당했습니다. 그리고 새로 대통령에 뽑힌 오라시오 카르테스(Horacio Cartes)는 파라과이에서 손꼽히는 재벌로 담배농장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실업률이 6%, 인플레이션은 2% 내외인 데다 빈곤층 비율도 2003년 44%에서 2011년 32%까지 줄었다고 강변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경제활동 인구의 규모조차 제대로 집계가 안 되는 상황에서 이런 수치들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꼬집습니다. 카르테스 대통령은 친기업적인 정책을 통한 성장과 이를 통한 낙수효과만을 이야기할 뿐 구체적으로 빈곤층을 구제하고 지원하기 위한 방안이나 정책은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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