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세계

여론 vs 정의, 진퇴양난의 우루과이

19세기 건국 이래 180년 간 우루과이는 대체로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처럼 군부 독재를 겪었고, 민간이 정치권력을 되찾은 뒤에는 독재시절 군부와 군부에 저항했던 게릴라 세력들이 저지른 범죄를 양쪽 모두에게 묻지 않겠다는 사면법을 제정해 타협을 이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미주인권재판소(Inter-American Court of Human Rights, IACHR)는 우루과이의 사면법이 미주인권협약에 위배되므로 법적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고, 게릴라 출신으로 군부에 잡혀 14년간 옥살이를 했던 호세 무히까(José Mujica) 우루과이 대통령은 사면법을 무효화하는 대통령령을 공포합니다. 격론 끝에 의회도 사면법을 철회하고 군부가 독재 하에 벌인 만행은 공소시효 없이 추적해 처벌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고, 형사재판소의 모타 판사는 50건의 살인, 고문 등 군부의 범죄 혐의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우루과이 대법원은 무히까 대통령의 법안이 과거의 죄를 소급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모타 판사도 민사 재판부로 발령이 나는 등 반동의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우루과이 국민들은 1989년과 2009년 두 차례 국민투표를 통해 사면법을 근소한 차이로나마 지지한다는 뜻을 드러냈습니다. 사면법을 철폐해야 한다는 국민은 42%에서 48%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과반수의 국민이 사면법을 지지한다고 답했습니다. 무히까 대통령과 달리 같은 당 출신의 바스케스 전 대통령은 사면법 철폐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팽팽한 여론과 어두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과거사 청산의 딜레마 사이에서 우루과이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Economist)

원문보기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Recent Posts

[뉴페@스프] “응원하는 야구팀보다 강한” 지지정당 대물림… 근데 ‘대전환’ 올 수 있다고?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2 일 ago

[뉴페@스프] ‘이건 내 목소리?’ 나도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속였는데… 역설적으로 따라온 부작용

* 비상 계엄령 선포와 내란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동안 쉬었던 스브스프리미엄에 쓴 해설 시차발행을…

4 일 ago

살해범 옹호가 “정의 구현”? ‘피 묻은 돈’을 진정 해결하려면…

우리나라 뉴스가 반헌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해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뉴스로 도배되는 사이 미국에서…

5 일 ago

미국도 네 번뿐이었는데 우리는? 잦은 탄핵이 좋은 건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투표가 오늘 진행됩니다. 첫 번째 투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으로 투표에…

1 주 ago

“부정 선거” 우기던 트럼프가 계엄령이라는 카드는 내쳤던 이유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미국 언론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태에 큰 관심을 보이고…

2 주 ago

트럼프, 대놓고 겨냥하는데… “오히려 기회, 중국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중”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안보…

3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