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1월 3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미국에 처음 와서 영어를 익혀가며 뉴스페퍼민트를 막 시작했을 무렵의 일입니다. 유학생이든 이민자든 처음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특히 어려운 점 중 하나가 대화의 뉘앙스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법을 체득하는 일일 겁니다. 저보다 5년 먼저 미국에 온 아내가 저를 많이 도와줬는데, 여러 번 설명을 들어도 몸에 익히고 입에 붙이기 어려웠던 표현이 있습니다.
“How are you?”라고 누군가 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가 문제였습니다. 내 상태가 좋으면, “응, 나는 좋아. 너는 어떠니?(I’m fine, and how are you?)”라고 말하면 되지만, 만약 내 상태가 도저히 좋다고 말하기 어려울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내는 그럴 때도 “좋다(I’m good)”고 답하라고 일러줬습니다. 특히 모르는 사람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이 의례적으로 건네는 인사라면 반드시 교과서처럼 “좋아! 너는 어때?”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어젯밤에 악몽을 꾸느라, 옆집 사람들이 밤새 시끄럽게 파티를 벌이는 통에 잠을 한숨도 못 자서 머리가 멍한 상태라면? 한참 전에 걸린 감기가 도무지 떨어지지 않아서 계속 아픈데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좋다고 답하는 게 정답입니다. 그러지 않고 거기서 구구절절 내가 왜 좋지 않은지 설명하기 시작하면 상대방이 무척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 아내는 귀띔했습니다. (실제로 아내의 경고를 깜빡 잊고 실수를 했다가 그런 표정을 몇 번 보기도 했습니다.)
실전에서 뉘앙스를 체감한 뒤 “How are you?”를 번역할 때는 -그럴 일이 잘 없지만- 그래서 “안녕하세요”라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활기차게 말을 걸 때는 “안녕하세요!” 정도가 되겠죠. 매 순간이 “선택의 예술”인 번역에 정답과 오답이 명백히 나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저는 “How are you?”를 진짜 의미 있는 답변을 기대하는 질문으로 “잘 지내시죠? 요즘 어떠세요?”와 같이 옮기는 건 많은 경우 맥락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물론 친한 사람끼리 하는 대화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어떤지 물을 때도 있고, 내가 얼마나 속상한 일 (혹은 뛸 듯이 기쁜 일)을 겪었는지 오랫동안 이야기해도 괜찮은 상대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되죠. 우리말을 생각해 보면, ‘안녕하지 못할 때’ 굳이 “안녕하세요”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빈소에 가서 상주와 유족들에게 안녕하신지 물어보는 건 너무 이상하죠. 혹은 친한 사람끼리는 “안녕하세요!”라는 말에 “안녕하지 못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뒤에 ‘내 하소연을 좀 들어달라’는 암묵적인 전제가 따라붙겠죠.
영어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주문할 때 점원이 건네는 아침 인사 “How are you?”에는 “I’m good. How are you?”라고 답하고 커피를 주문하면 되지만, 커피숍에서 만나 수다를 떨기로 한 친한 친구가 건넨 “How are you?”라는 인사에는 “사실 요즘 엉망진창이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친구는 제가 한국에 가서 가족을 보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차 적응이 안 돼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고, 한국의 정치 상황을 뉴스에서 보고 같이 걱정해 주려고 -혹은 그 핑계로 수다를 떨려고- 저를 만난 거니까요.
미국 영어 속 ‘가식’
나라 숫자로 따지면, 전 세계에 아마도 영어를 첫 번째 언어로 쓰는 나라가 가장 많을 겁니다. 이 많은 영어권 국가 중에 미국에서만 살아본 저라서 “영어 쓰는 나라 문화가 다 이렇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미국 영어에는 일종의 쓸모 있는 가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How are you?”가 진짜 답변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필요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인사치레라는 점도 그렇습니다.
여기서 ‘가식’은 굳이 친하지 않은 사람끼리 선을 넘지 않음으로써 서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게 되는, 꽤 괜찮은 장치로 작동합니다. 정말로 궁금하지 않아도 세상 친절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억지로 듣게 될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하지도 않은 사람한테 갑자기 “제가 실은 괜찮지 않은데요, 왜 그러냐면…” 하고 TMI를 방출하면 큰 실례가 됩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파멜라 폴이 이런 영어의 ‘가식’이 남기는 일종의 공허함에 관해 칼럼을 썼습니다. 실제로는 괜찮지 않은데도 그저 “좋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영혼 없는 긍정주의”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묘한 스트레스를 고백한 글입니다.
전문 번역: “다 좋아. 너는 완벽하다고!”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지만…
저는 좀 다른 맥락에서 글에 공감했습니다. 세상이 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늘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는 이유가 실제로는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좋을 때는 물론 좋다고 말해야 합니다.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표현할 어휘와 표현의 창고는 넘쳐날수록 좋을 겁니다. 게다가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다 잘될 거라고 주문을 외우며 긍정적으로, 희망을 품고 사는 것도 물론 권장할 만한 태도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영어에 있는 ‘가식’이 반갑습니다. 찌뿌둥하고 우울한 날에도 “I’m good”이라고 서너 번 말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늘 모든 게 좋아야만 한다는 원칙이 도가 지나쳐 세상에 실재하는 그늘을 억지로 지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좋지 않을 때 이를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어휘의 창고도 좋은 일에 관한 창고만큼 풍부해야 합니다. 언어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원천입니다. 언어를 잃은 인간은 경험에 제약을 받습니다. 경험이 제한되고, 이를 표현하지 못하면 자연히 감정도 잃게 되죠. 우리의 삶도 그만큼 단순해지고 좁아집니다. 가능한 한 밝은 자세를 유지하는 건 좋지만, 온 사회가 밝은 것만 강조하고 심지어 강요해서 어두운 마음과 감정을 털어놓을 데가 아무 데도 없다면 그 또한 끔찍한 일이 될 겁니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챗봇들이 내놓는 답변이 사실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말하는 뉘앙스와 톤마저 너무 비슷해서 감정의 획일화를 진지하게 걱정한 적이 있습니다. 챗봇의 말투야 나 혼자서 바꾸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내 감정에 충실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 보이고 싶은 감정을 내 언어로 드러낼 수 있는 창구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설 연휴가 지났습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를 만난 분도 있을 테고, 가까이 지내면서도 막상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이 많지 않던 친지와 함께 꽤 긴 시간을 보낸 분도 있을 겁니다. 다 좋다는, 아무런 문제 없다는 ‘가식’의 언어가 오래 가지 못할 어색한 시간이 찾아왔을 수 있습니다. 파멜라 폴이 말한 “중립적인 맹탕” 대화 말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명절을 보내셨는지요.
처음엔 불편하고, 어색해서 ‘아, 괜히 말 꺼냈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불편함을 억지로 덮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쌓아두는 것보다는 오히려 왜 불편한지, 뭐가 잘못됐고 왜 싫은지 같이 이야기하며 짚어보는 게 결국엔 서로 더 건강하게 사는 길이란 생각도 듭니다. 물론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 이미 ‘마주치지 않는 게 서로 더 나은 사이’가 된 만큼 관계가 틀어졌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솔직한 언어로 나누는 대화에는 분명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상대를 찾을 수 있다면 이번 명절을 누구보다 잘 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안녕하신지 묻던’ 질문이 거북했지만, 적응하고 나니 분명한 장점이 있습니다. 영어의 인사치레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오지랖을 부리며 상대방의 일에 무례한 논평을 하지 않고, 반대로 상대방이 얘기를 꺼내면 그땐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들어주고 도와줄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들이 적어도 제가 만난 사람 중엔 대부분이었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는 한 나의 처지는 남에게 “내 알 바 아니지만”, 반대로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오히려 더 열심히 공감해 주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명절, 우리도 이런 소소한 존중과 사소한 친절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가족, 친지와의 만남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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