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10월 29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11월 5일 미국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우편 투표와 부재자 투표가 시작된 주도 많고, 직접 투표소에 가서 할 수 있는 사전 투표를 시작한 주도 있습니다. 미국은 선거일이 공휴일이 아닌 만큼 전체 50개 주 가운데 43개 주와 수도 워싱턴 D.C.가 사전에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기간을 일주일 이상 법으로 보장해 놓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뉴저지주도 지난 토요일(26일)부터 사전 투표가 시작됐는데, 첫날에만 13만 명 이상이 투표했고, 우편으로 투표한 유권자들도 60만 명이 넘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선거 관련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단연 선거 결과입니다. 자신의 대표자를 뽑는 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느냐, 공화당과 민주당 중에 어느 당이 여당이 되느냐에 따라 전 세계가 사뭇 다른 영향을 받기 때문에 모두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기사가 길면 어김없이 ‘그래서 누가 이긴다는 건데?’ 같은 질문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정말 누가 이길지 예측하기 어려운 박빙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언론사가 판세를 정확히 읽고자 쉼 없이 여론조사를 하지만, 나오는 조사 결과마다 확실한 승자를 예측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 대선은 전체 득표에 따라 승패가 나뉘는 게 아니라서 예측이 더 어렵습니다. 과반의 선거인단, 즉 전체 538명 중 270명 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해야 이기는데, 주별로 한 표라도 더 많이 받은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 방식이라서 그렇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누가 이길지 예단하기 어려운 경합주(swing states)가 7개입니다. 경합주를 빼면 해리스도, 트럼프도 확보할 수 있는 선거인단이 270명에 못 미칩니다. 경합주를 어떻게 나눠 갖느냐에 따라 내년 1월 20일에 취임할 대통령이 달라질 수 있고, 그래서 예측이 어렵습니다.
경합주 민심이 누구를 선택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박빙 양상이므로, 7개 경합주 투표 결과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한 후보가 살짝 더 앞서는 것처럼 보이는 주도 있지만, 7개 경합주 모두 예상 득표율이 오차 범위 안에서 엎치락뒤치락합니다. 그러니까 동전 던지기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게 전혀 과장이 아닌 겁니다. 선거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이런 만큼, 앞으로 일주일 사이에 아주 극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이번 선거는 정말 “투표함을 까봐야” 알 수 있는 선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종종 “그래도 어느 한쪽이 조금이라도 우세하지 않느냐?”, “그러지 말고 근소한 차이라도 앞서 있는 후보를 짚어달라”, “동전 던지기나 다름없다는 소리는 무책임한 발언 아닌가?”라는 핀잔 섞인 반응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것처럼 이번 대통령 선거는 여론조사를 보면 볼수록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팽팽한 양상이 이어져 누가 이긴다고 단정하는 게 사실을 바로 보지 않고 뒤트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해설: 이번 대선은 50:50? “트럼프도, 해리스도 아닌 뜻밖의 변수는…”
여론조사와 통계 전문가 네이트 실버도 같은 생각입니다. 실버는 자신의 블로그에 선거 관련한 여론조사 분석을 주로 올리고 있는데, 거기에 23일 뉴욕타임스에 위의 칼럼을 올린 뒤에도 비슷한 글을 계속 썼습니다.
그러나 원문에 제목으로 쓴 “선거 결과에 관해 그 누구의 직감도 믿지 말라”는 당부는 본문 내용에 잠깐 언급한 한 문장 때문에 묻혔습니다. 바로 “OK, I’ll tell you. My gut says Donald Trump” 이 문장, “좋다, 내 촉은 트럼프의 승리를 가리킨다”라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실버로선 만약 선거에서 해리스가 승리한 뒤에 사람들이 자신의 예측이 틀렸다고 비판한다면, “그러게 내가 누구의 직감도 믿지 말랬지? 내 직감도 포함해서…”라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겁니다. 그러나 소위 ‘제목으로 뽑기 좋은’ 미끼를 던져놓고, 예상대로 언론이 그 미끼를 물자 (국내 언론이든 미국 언론이든 마찬가지) “핵심은 50 대 50일 거라는 말”이었다고 발뺌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실버는 발표된 여론조사 여러 개를 자신의 모델에 넣고 분석해 결과를 예측하는데, 여기서는 최근 트럼프가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할 확률이 꾸준히 50%를 웃돌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델을 활용한 예측의 기반이 되는 여론조사가 오차 범위 안에서 움직이더라도 결과가 뒤바뀔 수 있기에 실버도 트럼프가 이긴다고 장담하지 못하는 겁니다. (오차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건 표본을 추출해 질문하고 응답을 모아 분석하는 여론조사에서 당연한 겁니다. 심지어 오차 범위를 벗어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여론조사가 틀렸다,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 가지 시나리오
결국, 이번 선거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모든 이들의 상황은 9회 말 동점 상황을 지켜보는 야구 기자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쪽의 승리가 확실한 상황이라면 경기가 끝나기 전에 미리 기사를 어느 정도 써놓을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 이겨도 승리를 이끈 결정적 장면부터 원동력까지 다 찾을 수 있습니다.
“해리스가 이겨도, 트럼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선거”라는 말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두 가지 시나리오를 다 써보겠습니다. 지난 여론조사들이 빗나갔던 원인 여러 가지 가운데 투표율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점이 눈에 띄고, 트럼프도 해리스도 아닌 제3의 후보가 미칠 영향이 주목되는 만큼 두 가지를 위주로 시나리오를 써보겠습니다.
1. 트럼프 승리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에게 깜짝 승리를 안겨준 원동력도, 2020년 선거를 ‘졌잘싸 선거’로 만들어준 것도 경합주 유권자들,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남성 유권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투표율이 (다른 유권자보다) 높게 나오면 이번에도 트럼프는 승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실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론조사 결과를 뛰어넘을 수(beat the polls)” 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개 기성 언론이나 여론조사 기관을 신뢰하지 않아서 여론조사에 응하는 비율이 낮습니다. 그래서 전체 응답을 단순히 더해 지지율을 계산하면 안 되고, 이들의 목소리에 가중치를 더 줘야 합니다. 여론조사에는 잡히지 않지만, 의견이 같은 사람이 더 많은 셈이니까요. 2016년과 2020년에는 결과적으로 이 작업을 잘 못했습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기관들은 물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겠지만, 경험이 많지 않아서 또 같은 실수를 해도 놀랍지 않습니다. (실버가 지적한 대로 직감이나 촉을 진지하게 믿어보려면 프로 포커 선수처럼 관련 경험이 적어도 수천 번은 쌓여야 합니다. 4년에 한 번 있는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건 길게 잡아도 50년이 안 됩니다. 열 번 남짓한 경험에서 쌓인 촉은 믿지 않는 편이 현명해 보입니다.)
해리스의 표를 깎아 먹는 효과가 있으므로, 트럼프에게 도움이 되는 제3당 후보는 녹색당의 질 스타인 후보입니다. 스타인 후보는 네바다를 제외한 6개 경합주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렸는데, ‘트럼프는 절대로 안 찍지만, 그렇다고 해리스도 도무지 미덥지 않은 유권자들’이 표를 줄 겁니다. 스타인 후보의 지지율은 1% 정도에 불과하지만, 만약 트럼프가 어떤 주에서 해리스를 아슬아슬하게 이겼는데, 스타인이 받은 표를 해리스에게 더하면 트럼프를 앞지를 수 있는 결과가 나온다면 트럼프는 스타인에게 정말 고마워할 겁니다.
2. 해리스 승리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7,422만 표를 받았습니다. 2016년까지 그 어떤 대선 후보가 받은 표보다도 훨씬 더 많은 표였습니다. 트럼프 본인은 아직 인정하지 않지만, 그런 트럼프가 2020년 선거에서 진 건 “뛰는 트럼프 위에 나는 바이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이든은 트럼프보다 700만 표 이상 많은 8,128만 표를 받았습니다. 물론 전체 득표가 곧바로 선거인단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선거인단 대결에서 306:232로 압승을 거둘 수 있던 원동력은 결국 ‘트럼프에게 4년을 더 맡길 수 없다’는 유권자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여론조사에 잘 잡히지 않는 지지층은 트럼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대선은 아니지만, 2022년 중간선거 때 여론조사는 해리스 캠프가 내심 재현되길 기대하는 시나리오일 겁니다. 이때 공화당이 많은 의석을 늘릴 것이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데는, 이른바 “투표용지 효과(down ballot effect)”가 적잖은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2022년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 3명 때문에 절대적인 보수 우위 구도로 변한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며, 임신 중절권을 보호하지 않기로 한 데 분노한 젊은 세대, 여성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높았습니다.
또 1월 6일 의사당 테러가 난 지 (당시 기준으로) 2년이 지나도록 선거 결과에 승복하기는커녕 부정선거 음모론을 부추기던 트럼프가 손수 뽑은 후보들은 대체로 고전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답했거나 투표할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유권자 중에는 투표장에 간다면 결국 해리스에게 표를 던질 이들이 꽤 있을 겁니다. 해리스가 어떻게든 이들의 마음을 돌린다면 경합주에서 아슬아슬하지만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트럼프가 속으로 응원할 제3당 후보가 질 스타인이라면, 반대로 해리스에겐 자유지상주의당(Libertarian Party)의 체이스 올리버 후보와 이미 사퇴하고 트럼프 캠프에 합류했지만, 그 시점이 늦는 바람에 미시간과 위스콘신주 투표용지에는 이름을 올리게 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후보가 희망입니다. 이들이 트럼프의 표를 많이 빼앗아 갈수록 해리스의 당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3. 여론조사가 ‘틀릴’ 가능성
마지막으로 여론조사가 아예 ‘틀렸다’라고 하려면 어떤 상황이 벌어져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계속해서 “50 대 50″이란 말만 되풀이하는 여론조사 기관이나 저를 포함해 “이번 선거는 정말 뚜껑 열어봐야 안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위한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2억 명이 넘는 전체 유권자의 마음을 일일이 조사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하면 염두에 둬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텍사스주는 보수 성향이 강한 주(red state)로 분류합니다. 그럼, 현재 텍사스주의 대선 여론조사를 한 번 볼까요? 텍사스 주립대학교가 지난 18일 발표한 투표할 가능성이 큰 유권자(LV, Likely Voters) 1,09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가 51%, 해리스가 46%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 여론조사의 오차 범위는 ±3%입니다. 이 말은 곧 해리스의 예상 득표율은 43~49%, 트럼프의 예상 득표율은 48~54%라는 말입니다. 즉, 해리스가 49%, 트럼프가 48%를 받아 해리스가 이길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텍사스는 선거인단이 40명이나 되므로, 만약 해리스가 텍사스를 이기면 나머지는 볼 것도 없이 게임은 끝입니다. 그런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이 여론조사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여론조사가 틀렸다고 하려면 더 확실한 주, 즉 장담할 수 있다고 여긴 주에서 이변이 일어나야 합니다. 뉴욕주를 예로 들겠습니다. 시에나 대학교가 지난 22일 발표한 투표할 가능성이 큰 유권자(LV, Likely Voters) 87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해리스가 58%, 트럼프가 39% 득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여론조사의 오차 범위는 ±4.1%입니다. 해리스는 아무리 못 받아도 52.9%는 득표할 것이고, 트럼프는 아무리 잘 받아도 43.1%에 그칠 테니, 뉴욕에 배정된 선거인단 28명은 해리스에게는 떼어 놓은 당상입니다. 뉴욕에서 만약 트럼프가 이긴다면 여론조사 기관은 실수를 분석하고 다음번엔 더 잘하는 수준으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문을 닫아야 합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은 지난 13일 “여론조사 무시하세요”라는, 어쩌면 다소 선정적인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너무 박빙인 선거인 만큼, 또 선거인단 집계 방식 때문에 경합주에서 벌어지는 아주 작은 오차로도 결과가 요동칠 수 있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클라인은 글을 읽을 대다수 미국인 유권자를 향해 “여론조사 결과에 휘둘려 감정 기복을 겪을 바엔 그 시간에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하시라. 경합주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후원금을 내거나 그 후보 캠프에 참여해 동료 시민들에게 지지를 독려하는 전화를 돌리는 자원봉사를 하는 것도 좋다. 주위에 아직 마음을 못 정했거나 투표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설득해 보는 것도 좋다”라고 썼습니다.
후원금이나 자원봉사 이야기가 해당하지 않는, 일종의 참관인으로서 제게는 시시각각 변하는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조언이 와닿습니다. 어쨌든 일주일만 있으면 올해 여론조사들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판정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겁니다. 여론조사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그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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