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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정의 구현” 대 “마녀사냥”, 프레임 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5월 2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지난 13일 뉴욕타임스가 시에나대학교와 올해 미국 대선의 승패를 가를 경합주 6곳에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의 전체 득표를 집계하지 않고, 주별로 할당된 선거인단의 표를 더해 당락을 가르죠. 그래서 어차피 민주당 후보가 이길 게 뻔한 주(blue state)나 공화당 후보가 이길 게 뻔한 주(red state)를 제외하고 누가 이길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합주(그네처럼 왔다 갔다 한다는 뜻에서 swing state)의 표심을 살펴야 선거의 향방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처럼 전체 득표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투표함을 열어볼 것도 없이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겁니다.)

경합주는 인구 구성이 바뀌는 양상에 따라, 또 후보와 정책의 변화에 따라 선거 때마다 조금씩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경합주가 아니던 주가 서서히 경합주로 분류되기도 하고, 지금은 경합주지만 다음 선거에선 한쪽 정당이 넉넉하게 이길 수도 있죠.

올해 미국 대선에서 눈여겨봐야 할 6개 경합주는 위스콘신(WI), 미시건(MI), 펜실배니아(PA), 조지아(GA), 네바다(NV), 그리고 애리조나(AZ)입니다. 6개 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2016년엔 트럼프가 (클린턴을 상대로) 이겼는데, 2020년 선거에서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승리한 곳입니다. 다시 말해 이번엔 다시 트럼프로 돌아설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경합주인 셈입니다.

뉴욕타임스 여론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실망스럽고,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는 고무적입니다. 바이든은 6개 주 가운데 위스콘신주에서만 오차 범위 안에서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을 뿐 나머지 주에서는 모두 트럼프가 앞섰습니다. 심지어 네바다와 조지아에서는 지지율 격차가 워낙 커서 오차 범위보다 한참 밖에 있을 정도였습니다. 여기가 정말 경합주가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지난해 11월, 그러니까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 뉴욕타임스가 이번과 마찬가지로 경합주 6곳의 여론을 조사했습니다. 그때도 트럼프가 대체로 바이든에 앞서고 있었지만, 바이든이 조금씩이나마 트럼프를 따라잡는 추세가 감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과 바이든 캠프 안에서는 2024년 2분기쯤 되면 인플레이션도 잦아들고, 경제 지표는 좋아지는 반면, 트럼프는 경선 때문에 주목받던 후광 효과가 사라지고 사법리스크도 발목을 잡아 바이든이 앞서나가기 시작할 거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 조심스레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결과를 보면 바이든 캠프에서 기대하던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 가운데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오히려 트럼프에게 결과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스 더우댓이 이 점을 분석한 칼럼을 썼습니다.

전문 번역: 야당 대통령 후보 향한 이런 식의 법정 공세, 정치 과잉의 부조리 아닌가: 이것은 미국 이야기

 

더우댓의 주장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른바 “입막음용 뒷돈”에 관한 트럼프의 혐의가 유권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검찰의 기소 내용을 다 이해하고 나서 보면 과연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느냐 마느냐를 두고 다툴 만큼 중대한 범죄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라 젊은 세대는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탄핵 위기까지 몰아갔던 “르윈스키 스캔들”을 떠올려 보면, 그때는 별것 아니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중대한 범죄인 양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위선을 유권자들이 곱게 보지 않는다.

르윈스키 스캔들과 이번 “입막음용 뒷돈” 사건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 정당한가를 두고는 밤새 토론을 벌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어느 쪽 주장이 논리적으로 더 타당하냐가 아닙니다. 많은 유권자가 ‘이거나 그거나 다 마찬가지 아냐?’라고 생각하면 그만입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막음용 뒷돈” 재판을 얼마나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지 묻는 문항도 있었습니다. 응답자 가운데 “아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29%에 불과했습니다. 대선의 승패를 가를 경합주 유권자 4명 중 3명은 이번 재판에 별 관심이 없거나 아예 관심이 없다고 답한 셈입니다. 배심원이 트럼프가 유죄라고 만장일치 평결을 내릴지, 그래서 유죄 판결이 나온다면 실제로 트럼프의 죄가 형사 처벌을 받을 만큼 중대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답변도 비슷하게 저조하거나 뜨뜻미지근했습니다.

연방제 국가 미국은 검찰도 한국처럼 중앙집권적인 조직이 아닙니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성립할 수가 없죠. 지방검사장도 시민들이 선거로 뽑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트럼프를 기소한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방검사장도 선거로 뽑혔습니다. 브래그 검사장은 혐의가 너무 불분명한 거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를 무릅쓰고 트럼프를 기어이 기소했습니다.

트럼프를 법정에 세우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만큼 공약을 이행하는 건 좋은데, 다른 혐의로 기소된 재판의 진행 상황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사실상 대선 전에 재판이 진행되는 유일한 사건이 돼버린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실제로는 철저히 이번 사건의 범죄 사실 여부만 가지고 재판이 진행되겠지만, 이번 재판을 트럼프의 행실 전반에 대한 심판으로 받아들이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하필 혐의를 설명하기가 매우 복잡하고, 아무리 봐도 중대한 범죄로 보기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2020년 대선 이후 조지아주 주무장관(우리나라 선관위원장에 해당)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바이든보다 고작 11,780표가 모자란데, 선거 지게 생겼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표를 찾아내라.”고 협박했던 건 녹취록까지 있습니다. 선거에 부당하게 개입하려 한 혐의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심각한 범죄인데, 이 사건은 좀처럼 진전이 없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죠.

 

“마녀사냥” 프레임이 먹히다

혐의를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보니, 트럼프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괴롭힘 당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적극적으로 바이든과 민주당을 비롯한 기득권이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박해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은 마녀사냥의 피해자라는 트럼프의 호소가 ‘복잡하기만 하고, 막상 알고 보면 시시한’ 이번 사건의 혐의보다 훨씬 더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트럼프는 법정 안팎에서 줄기차게 판사, 검사는 물론 배심원단을 비방하고 협박했습니다. 판사가 함구령(gag order)을 내렸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함구령을 어깁니다. 그러자 가중 처벌이 적용돼 죄가 불어났고, 끝내 함구령을 더 무시하면 구치소에 가둘 수밖에 없다는 경고까지 나옵니다. 트럼프는 마지못해 입을 닫았는데, 이 모습마저 법을 보란 듯이 무시하고 짓밟는 트럼프가 부각되기보다 잘못한 것도 없이 억울하게 재판받고 고생하는 트럼프가 딱하다는 동정 여론을 낳기도 했습니다.

한쪽에선 수많은 잘못을 저지른 트럼프를 어떻게든 법정에 세우는 건 “정의 구현”의 첫걸음이라며 박수를 보내지만, 다른 쪽에선 정의는커녕 멀쩡한 사람을 마녀사냥한다는 아우성이 들립니다. 얼핏 보면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렸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편을 갈라 싸울 때 우리 편의 논리가 타당하고, 상대방의 논리는 억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똑같이 싸워도 늘 억울한 피해를 보는 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공격이라도 우리 편이 하면 남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일로 미화하지만, 상대방의 공격에는 그런 아량을 조금도 베풀지 않습니다.

입막음용 뒷돈 재판이 한 달 넘게 진행되는 가운데 나온 여론조사 결과는 적어도 트럼프를 법정에 세우는 일이 한쪽에서나 정의 구현일 뿐 오히려 역효과가 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조급해진 바이든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전당대회 전에 트럼프 전 대통령과 일대일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TV 토론을 통해 트럼프와 자신을 대비해 반전의 계기를 만들겠다는 거죠. 트럼프 측이 이를 받아들여 두 후보는 오는 6월 27일 CNN, 9월 10일 ABC에서 두 차례 토론을 벌이게 됐습니다. 보통은 양당 전당대회가 끝나고 9월과 10월에 세 차례 토론(+ 부통령 후보 토론 한 차례)을 벌이는 게 관행이었지만, 이번에는 토론을 두 번만 합니다.

이제 5개월가량 남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어떻게 작용할지 지켜보는 것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의 잘못을 부각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것보다 자신에게서 마음이 돌아선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 얻는 법을 적극적으로 찾아 시행해야 합니다. 이번 뉴욕타임스 조사에서 2020년에 누구를 찍었는지, 이번에는 누구를 찍을 건지 물었더니, 4년 전 트럼프를 찍은 유권자들은 95%가 이번에도 트럼프를 찍겠다고 말했지만, 4년 전 바이든을 찍은 유권자 중에 이번에도 바이든을 찍겠다고 답한 사람은 87%에 그쳤습니다.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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