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1월 13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전쟁은 서로 생각과 의견이 다른 인류가 벌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집단 폭력 행위입니다. 이미 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총칼을 거두는 휴전이나 평화를 논의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대의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겁니다. 문제는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합의는커녕 협상에 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통분모도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은 10월 7일 하마스가 일으킨 동시다발적인 테러 공격을 지목하며, 가자지구를 다시 점령하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중입니다. 하마스 측은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가자지구를 봉쇄한 이스라엘의 부당함, 그리고 이스라엘군의 잇단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사를 요약한 글은 전쟁이 발발한 직후에도 썼지만, 누가 먼저 잘못한 일이냐를 두고도 도무지 의견이 모일 것 같지 않습니다.
전쟁은 전 세계를 반으로 갈라놓은 듯합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에서도 아랍계 미국인, 무슬림 미국인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고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무슬림 학생 단체와 유대인 학생 단체 사이에 날 선 논쟁, 물리적인 폭력까지 벌어지는 대학교 캠퍼스는 미국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내가 올여름 프린스턴대학교 정치학과와 공공정책 대학원 교수로 부임했는데, 공공정책 대학원장인 아마니 자말 교수는 아내의 직장 상사입니다. 늘 히잡을 쓰고 있어서 무슬림인 건 알았지만, 팔레스타인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출신 학자와 이스라엘 출신 학자가 함께 쓴 칼럼이 뉴욕타임스에 실렸길래 읽고 나서 보니, 저자 중 한 명이 바로 자말 교수였습니다.
전문 번역: 혐오 담론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요구되는 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칼럼은 팔레스타인 난민 가정에서 자란 사람과 이스라엘군 정보기관에서 일한 사람이 함께 썼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둘은 실제로 프린스턴대학교에서 10년간 동료로 지내며 학술적으로 교류하고, 신뢰와 우정을 쌓은 사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캠퍼스 곳곳에서, 또 언론과 사회 전반에서 상대방을 향한 거친 비난과 편 가르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공통분모를 찾고자 노력하는 두 학자의 모습은 큰 울림을 줍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공존과 평화는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편을 갈라 상대방을 배척하고 제거하는 편이 더 간단하고, 심지어 옳은 일처럼 느껴지는 세상입니다. 실제로 프린스턴 시내에 하마스의 테러 공격 직후 자말 원장을 비난하는 영상 메시지를 담은 트럭이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후 트럭을 보냈던 단체 대표가 자말 교수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칼럼의 다른 저자인 컬럼비아대학교 국제정책 대학원의 케렌 야르히밀로 원장도 하마스의 테러 공격 직후 대학원 차원에서 성명을 냈고, 이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일어난 유대인 혐오 범죄나 폭력을 규탄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만 그 바쁜 일정 속에 서로 좀 더 이해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길을 찾자는 주장은 할 틈이 없어 보입니다.
“가자지구 사람들 중에 하마스 지지율 높지 않아”
기어이 전쟁은 시작됐고, 전황을 보면 한동안 계속해서 끔찍한 전개가 예상됩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찾을 수 있는 공통분모가 있다면, 상식과 원칙에 기대 적극적으로 평화를 논하며, 극단주의를 배격하는 일일 겁니다.
아마니 자말 교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여론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대표적인 단체 아랍 바로미터 프로젝트(Arab Barometer Project)의 공동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자, 자기 이름을 딴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에즈라 클라인이 자말 교수와 인터뷰했습니다. 마침 아랍 바로미터 프로젝트는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으므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하마스를 뽑아준 가자지구 사람들은 범죄의 공범으로서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한데, 자말 교수는 최근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는 가자지구의 여론을 바로 읽지 못한 주장이라고 말합니다.
우선 팔레스타인(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는 2006년을 마지막으로 더는 선거가 없었습니다. 17년 전 선거에서 요르단강 서안은 파타당이, 가자지구에서는 하마스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죠. 하마스도 과반의 지지를 받은 건 아닙니다. 단순다수결에 따라 44%의 지지만 받고도 가자지구의 집권당이 됐죠. 자말 교수는 이때도 가자지구 사람들이 하마스가 좋아서라기보다 기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부패에 신물이 나서 누구라도 새로운 정치 세력을 밀어주자는 생각으로 표를 줬다고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가자지구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 된 하마스는 이후 파타당과 의견 충돌을 빚더니 파타당을 가자지구에서 내쫓았고, 계속해서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했습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봉쇄 조치로 고통받고 있지만, 동시에 무능하고 부패한 하마스에도 등을 돌렸다고 자말 교수는 말합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67%는 하마스를 전혀 신뢰하지 않거나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가자지구에서 지금 당장 (자유롭고 공정하게) 선거를 치른다면, 하마스가 집권당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물론 하마스보다 좀 더 높은 지지를 받는 정치 세력의 노선도 하마스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하마스, 파타당보다 약간 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사람은 마르완 바르구티라는 인물인데, 이 사람은 이스라엘 시민을 향한 테러 공격을 벌였다가 이스라엘 당국에 체포돼 현재 이스라엘에 수감 중입니다.
이스라엘과 평화와 공존을 주장하는 세력이 팔레스타인에서 인기를 얻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공격적으로 정착촌을 건설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 온 네타냐후 정권을 비롯한 이스라엘 측의 책임도 고려해야 하죠. 그러나 이 문제를 파고들면 또 비난과 책임 공방이 꼬리를 물게 됩니다. 그래서 자말 교수는 어차피 하마스를 지지하지 않는데도 온 세상이 하마스가 벌인 테러 공격의 책임을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묻는 상황에서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애초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상식의 힘은 극단주의를 몰아낼 수 있을까?
결국, 칼럼에서 저자들이 지적한 대로 “테러리즘은 곧 모든 인류를 향한 공격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공통분모를 찾고 넓히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팔레스타인 주민이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10월 7일 하마스가 벌인 공격을 두둔한다면 평화와 공존을 논할 자격이 있는 대상이라고 보기 어려울 겁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도 테러리스트를 박멸하기 위해 민간인 희생은 어쩔 수 없다며 가자지구의 학살을 묵인한다면 대화와 토론의 여지는 많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 전쟁으로 득을 보는 이들을 생각해 보면, 문제가 좀 더 명확해질지 모릅니다. 오슬로 협정 이후 평화와 공존을 바라던 이들이 주창한 ‘두 국가 해법’은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상대방을 지도에서 지워내지 않을 거라면 여전히 기본 원칙으로 삼을 만합니다. 그런데 하마스와 네타냐후는 ‘두 국가 해법’에 회의적이었거나 이를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고사시켜 왔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통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력한 적이 있어야 생명이 연장되는 매파의 전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짜놓은 판에 휘둘리지 않고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결국, 다시 기본과 상식으로 돌아가는 일일 겁니다. 자말 교수가 에즈라 클라인 쇼에서 한 말 중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맺습니다.
제가 사실 이스라엘 여론 전문가는 아닌데요, 물론 제 동료 가운데 이스라엘 여론조사 전문가가 있죠. 그 동료 말을 빌리면, 팔레스타인이든 이스라엘이든 평균적인 시민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중요한 건 팔리스타인 사람이든 이스라엘 사람이든 인간으로서의 존엄, 기본적인 안전, 그리고 존중을 추구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 기본적이면서 소중한 것을 보장해 주는 게 평화잖아요. 만약 우리가 평화를 이런 관점에서 바라봤다면 어땠을까요?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치 세력들이 말하는 평화는 그게 아니잖아요. 평화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30년 전에 평화 협상이 깨진 게 누구 책임이고 누구 때문에 상황이 이 지경이 됐다는 책임 공방에 급급하죠. 그럼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당연히 평화에 관한 담론 자체를 듣기 싫어합니다. 평화가 인기 없는 주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목표에 관한 메시지를 어떻게 구성하고, 정치 지도자들이 이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사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줄곧 지지해 왔습니다. 하마스는 아니었죠. 하마스는 평화적인 접근을 배척하면서 가자지구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반사이익을 누려 왔습니다. 네타냐후 연정에 참여하는 정치 세력 중에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아랍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종청소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세력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담론을 이끌어가게 두면서 과연 상대방을 향한 존중과 합리적인 토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과연 이들이 평화와 공존을 논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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