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9월 1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스브스프리미엄 앱에서도 저희가 쓴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며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개념 중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선과 악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구분하며,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관록이 쌓이고 삶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경험할수록 우리는 선과 악의 구별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그럼에도 판단이 가능한 많은 때도 있으며, 그 기준은 보통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바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과 반대로 타인의 희생을 발판 삼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입니다. 이는 이타적, 이기적이라는 말로도 불리며, 우리는 그러한 행위와 또 그런 행위를 하는 인간을 흔히 선과 악으로 구별합니다.
행위와 사람의 구분은 또 다른 성숙한 사회의 특징으로 여겨집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그런 생각을 대표합니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이는 사실 우리의 경험과 충돌합니다. 그래서 영화 “넘버3”에서 검사로 분한 최민식은 “죄가 무슨 죄가 있냐 죄짓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지.”라는 대사를 일갈하기도 했죠.
행위와 사람의 구분에 대한 의견은 정치적 성향과도 직결됩니다. 곧, 어떤 이들은 사회에 책임을 돌리며, 어떤 이들은 개인에 책임을 묻습니다.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처럼 사회와 개인의 책임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문명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개인에게 책임을 물으며,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 사회와 분리하거나 사회에 복귀하려면 교육과 교정을 거치도록 장치를 마련해 둡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우리가 특정한 사람이 이기적 혹은 이타적 성향을 띤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우리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한지 악한지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덕책에서 배웠던 성선설과 성악설이 그에 대한 철학자들의 답일 겁니다.
성선설/성악설을 바라보는 과학의 관점
21세기 철학의 자리를 대체해 가고 있는 과학에서도 이 질문은 중요합니다. 오늘날 인간의 행동을 촉발하는 심리의 기원에 관한 한 가지 중요한 이론인 진화심리학은 이 질문을 매우 진지하게 다룹니다. 진화심리학은 우리의 심리적 특징을 우리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쪽으로 적응한 결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이자 오해를 사기 좋은 제목인 ‘이기적 유전자’가 준 이미지와 함께 인간은 본래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만 신경 쓰는 이기적 존재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집단을 이루어 개인뿐 아니라 집단 전체의 생존 확률을 높였고, 또 언어와 문화를 통해 평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이타적인 본성을 가지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즉, 과학이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하나의 편을 들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논의는 여전히 인간의 성향이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반면, 지난 8월 31일, 뉴욕타임스의 대표적인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선하다’는 제목으로, 사람들을 지금보다 더 선하게 만들 수 있는, 논의의 다른 측면을 강조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는 칼럼에서 사람들이 우리의 통념보다 실제로 더 선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여러 심리학 실험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말하며 아주 중요한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자기실현적 예언’입니다. 곧, 많은 사상가들이 사람들은 본래 이기적이라고 말함으로써, 실제로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가 더 쉽게 이기적이 되는 것은 매우 당연해 보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남의 시선을 덜 신경 쓰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고, 또 우리가 타인의 의도를 추측할 때 편향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를 보인 실험들도 여럿 있으며, 그중에는 경제학과 학생들에게 일정한 돈을 상대방과 나눠 가지는 최후통첩 게임을 하게 한 실험이 있습니다. 곧, 사람은 본래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배운 이들이 이 게임에서도 더 이기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이죠.
칼럼 중에 오늘날 사회는 선물과 거래를 너무 엄격하게 구분해서 문제라는 브룩스의 지적에는 사실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과거 인류가 속했던 집단은 서로서로 잘 아는 관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평판이 물질보다 중요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선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거래의 연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 생활은 익명성을 전제로 하며, 자연히 대부분 거래는 일회성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의미에서는 최근 뭇매를 맞고 있는 소셜미디어가 인간관계의 지속성을 높여줄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순기능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어쨌건 그의 마지막 문장에는 울림이 있습니다. 곧 오늘날 사회가 물질적 인센티브에 집중하는 바람에 사회적 인센티브를 무색하게 만드는 비인간적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은 스스로 비참해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데이비드 브룩스는 이 칼럼을 통해 또 다른 자기실현적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생각보다 선하니, 우리도 타인을 선하게 대하면 이를 통해 우리 모두 지금보다 더 선한 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간의 속임수 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사실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흔쾌히 속고 싶어지며, 다른 사람도 그랬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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