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6월 12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아메리카노 뉴스해설에서도 이 판결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Affirmative action.”
“소수인종 우대 정책” 혹은 “차별 제한 규정” 정도로 번역되는 이 단어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특히 주변에 미국에서 대학 입시를 앞둔 친지를 둔 분이라면, 아마 여러 번 들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정책은 “Positive discrimination”, 즉 적극적(긍정적) 차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차별받아 온 소수 집단을 사회가 구조적으로 우대함으로써 배상하는 차원에서 시행하는 모든 정책을 일컫는 말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카스트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신분제의 잔재가 남은 인도에서 차별받던 계급 출신을 공무원 주요 보직에 최소 몇 명씩 채용하도록 한 직접적인 할당제가 적극적인 차별의 좋은 예입니다.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차별받던 유색인종에게 각종 선발 과정에서 가산점을 줍니다. 대학 입시가 대표적입니다. 노예제가 폐지된 지 100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던 인종차별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기 시작한 1960년대에 처음으로 이 단어가 쓰이고 관련 정책이 도입됐습니다. 이후 지난 수십 년간 논란과 부침이 없지 않았지만, 21세기 들어 우대받는 대상에 들지 못하는 인종 출신 학생들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소송이 잦아졌습니다. 많은 부문에서 미국 사회의 ‘최종 심판’ 역할을 하는 대법원의 구도가 6:3 보수 우위로 재편되면서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폐지되는 건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대법원판결 앞둔 소수인종 우대정책
미국 대법원은 실제로 이달 말 끝나는 이번 회기에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관한 판결을 내립니다. 대법원은 두 가지 사건을 병합해 심리를 진행했는데, 사건의 원고는 각각 하버드대학교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가 학생을 뽑는 과정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지원자를 차별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계 미국인 지원자들이 학업 성적은 물론이고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여러 면에서 우수했지만, 자기보다 점수가 낮은 다른 유색인종 지원자에게 밀렸다는 겁니다. 피고인 대학들은 다양한 학생을 선발해 학내 다양성을 보장하는 일이 중요하며, 과거에 교육 기회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집단 출신 학생을 우대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차별금지 정신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보수 우위 대법원이 그동안 내린 판결 중에는 미국인 다수가 생각하는 바와는 거리가 먼 결정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관해서는 미국 여론도 현행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번 주에 퓨리서치 센터에서 따끈따끈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인들에게 대학 입시에서 인종이나 민족을 고려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 아닌지 물었더니, 49%가 불공정하다고 답해 공정하다고 답한 20%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둘 다 아니라고 답한 응답자는 17%,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13%.) 그동안은 겉보기에 공정하지 않은 소지가 있더라도, 또 이른바 ‘역차별’ 논란이 있어도 역사적인 맥락에서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한 유색인종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다는 주장이 우세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진짜 다양한 학생들이 모이는 캠퍼스가 목표라면
현행 소수인종 우대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답한 사람들이 다양한 인종이 모인 캠퍼스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인종뿐 아니라 민족, 출신 배경, 계층, 계급, 잘하는 것, 관심 있는 분야 등 많은 면에서 다양한 학생들이 모이는 건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학생이 대학 교육을 받는 건 중요합니다.
지금의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 취지는 빛이 바랬고, 점점 더 인위적인 할당제의 성격을 띠면서 제도를 향한 불만이 쌓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한 1970년대에는 유색인종(주로 흑인) 가운데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인종에 따른 빈부격차도 훨씬 컸죠. 즉, 그때는 인종을 보면 거의 틀림없이 계층이나 계급을 예측할 수 있었고, 학생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교육 기회를 어느 정도 받았는지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흑인에게 더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동안의 잘못을 시정하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구조적인 경제적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 온 백인 중에도 상대적으로 교육 기회를 받지 못한 학생들이 자꾸 나옵니다. 물론 전체 인종을 기준으로 보면 흑인이나 유색인종에 비해 사정이 낫겠지만, 통계상 평균에서 벗어나는 사례—부잣집에서 자란 흑인 학생 혹은 가난해서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백인 학생—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꾸준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여기에 유색인종도 다양해졌고, 인종에 따라 처한 상황이 다르다 보니, 인종 전체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교육의 힘을 믿습니다. 구색 갖추기가 아닌 진짜 다양성이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습니다. 다만 이제는 바뀐 환경에 맞춰 인종, 성별, 출신 배경 등 여러 가지 다양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더 정교한 방법을 써야 합니다. 매사추세츠주의 한 공립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소피아 람이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은 정확히 그 문제를 짚어냈습니다.
전문번역: 소수자 우대 정책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고등학생의 칼럼
람의 주장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인종보다 더 공정하고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겁니다. 바로 가계 소득과 부, 즉 출신 계층을 기준으로 다양한 학생들을 뽑자는 겁니다. 인종만 보고 계층을 예측하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고, 납세 기록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이 학생이 어떤 환경에서 공부를 해왔는지, 대학 생활에 필요한 지원을 (가족으로부터)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확인하기는 더 쉬워졌습니다.
대법원이 현행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위헌으로 판결하더라도 람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소득 수준을 바탕으로 학생을 뽑는, 더 공정하고 더 나은 입시 제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실제 정책을 바꾸고 제도가 정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적어도 현행 소수인종 우대정책이 폐지된다고 재앙이 오지는 않으리라는 거죠. 실제로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미시건 등 아홉 개 주는 공립대학 입시에서 인종을 기준으로 삼지 못하게 한 뒤에도 그럭저럭 캠퍼스의 다양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더 공정하고 더 나은 제도로 ‘업데이트’하려면
람은 길지 않은 글에 여러 가지 사안을 검토한 종합적인 대책을 제시했습니다. 즉, 소득 수준 등 경제적 계층을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뼈대로 하되, 기존의 기여입학제(legacy admission)나 체육 특기생은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겁니다.
기여입학제는 사실상 미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로, 오늘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학교 동문의 자녀나 교수, 고위 교직원 자녀가 학교에 지원하면 가산점을 주는 제도로, 이유는 간단합니다. 동문이 내는 기부금에 대한 대가 혹은 교수나 교직원의 공로에 대한 간접적인 보답입니다.
미국에선 많은 것이 비싸지만, 교육도 정말 돈이 많이 듭니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교육 분야에도 상당히 많이 적용돼 있죠. 그러다 보니 이른바 주요 명문 대학들은 동문들이 내는 기부금에 상당히 의지합니다. “잘 나가는” 학교는 동문 파워가 센 학교이자, 곧 동문들이 기부금을 많이 모아주는 학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스포츠팀을 운영하는 것도 동문들의 애교심을 고취하고 매년 기부금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스포츠팀을 운영하려면 당연히 체육 특기생이 필요하고요. 그러다 보니 기여입학제나 체육 특기생 제도를 완전히 없애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또 동문이나 기업의 기부에 의지하는 것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미국의 많은 대학의 장학금 제도는 대개 성적 기반이 아니라 가계소득에 비춰 지급되는데, 그 돈이 결국 학교 기금에서 나오기 때문이죠.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변한 시대와 환경에 맞춰 ‘업데이트’가 필요한 시기에 온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이 지금의 정책을 위헌으로 판결한다면, 미국 사회는 소득 수준을 포함해 인종보다 더 정확한, 맞춤형 기준을 찾아내야 합니다.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인 소피아 람은 자신이 입시 제도에 따라 불리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떤 이유로 불리해졌느냐에 따라 반응이 다를 거라고 말합니다. 즉, 순전히 인종 만으로 입시에서 차별받는다면 억울하겠지만, 자신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한 학생에게 기회를 먼저 주는 제도는 공정하게 운영되기만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썼죠. 정의하기도, 평가하기도 쉽지 않은 ‘공정’이란 가치가 미국 대학 입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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