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2월 2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2월 한 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돌아보는 기사와 칼럼, 방송들이 쏟아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세간의 관심은 마침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쏠렸습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찾지 않은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 국가 정상들이 이미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를 찾아 연대를 과시했는데, 정작 우크라이나에 500억 달러 넘는 무기와 물자를 지원한 가장 큰 우방 미국 대통령이 아직 한 번도 우크라이나를 찾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키이우 방문을 통해 일각의 우려와 비판을 단번에 잠재웠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키이우 시내 성 미카엘 성당 앞을 함께 걸을 때 돌연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린 장면은 키이우 방문의 백미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이렌이 울리는데도 차분하게 예정대로 근처 전사자 추모의 벽에 가서 헌화하는 일정을 마쳤습니다. 언론은 “미국 대통령다운” 강인한 모습을 보여줬다며 칭찬 일색이었죠.
지난여름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이 대만을 깜짝 방문했을 때도 떠오릅니다. 중국에 역린과도 같은 ‘하나의 중국’ 기조를 정면으로 무시하면서 강행한 방문이었던 만큼 중국은 거세게 항의했고 일대의 긴장감은 순식간에 최고조로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펠로시 의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일정을 마쳤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굳이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언론은 펠로시 의장을 옹호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마치 ‘미국이 왜 다른 나라 눈치를 봐야 해?’라는 듯한 생각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미국에서 보기 힘든 반전(反戰) 여론
미국 내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미국 언론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이 반대하는 전쟁은 앞에 수식어가 하나씩 붙습니다. “오바마가 일으킨 전쟁”에 반대한다, 또는 “트럼프가 기획한 전쟁”에 반대한다는 식이죠. 당파적인 계산에서 벗어난, “모든 전쟁에 반대한다”는 평화의 메시지는 의외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은 유일한 강대국 반열에 오릅니다. 미국인들의 머릿속에는 “정의의 편에 서는 미국이 하는 전쟁은 늘 옳다”는 생각이 박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화는 힘이 있어야 유지하는 것이라는 현실주의적인 사고가 몸에 뱄을 수도 있죠. 그래서 “미국이 벌이는 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이는 방어전”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전쟁을 정말로 좋아하거나 전쟁이 일어나라고 기도하는 미국인은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상대방이 도발하면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많을 겁니다. 미국에 반대하는 자나 미국에 ‘찍힌’ 이들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악의 축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악을 징벌하는 전쟁을 벌일 때마다 미국 여론은 적어도 개전 시에는 전쟁을 지지해 왔습니다.
그래서 유라시아그룹의 마크 한나 선임연구원이 쓴 칼럼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의외로 찾아보기 어려운 시각이 돋보였죠. 제목부터 “Straight Talk on the Country’s War Addiction”, 우리말로 옮기면 “미국의 전쟁 중독에 대한 솔직한 고찰”입니다.
마크 한나 연구원은 전쟁에 관해 미국인들이 품고 있는 잘못된 통념을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대표적인 것 두 가지만 들자면, 전쟁이 이제는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해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핵무기 때문에 전쟁 억지력의 개념이 20세기와 달라지기도 했지만, 분명 근래에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모든 걸 쏟아붓는 전쟁에 나서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전시 군수산업이 맞는 호황이 국가 경제 전체를 부양하는 일은 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더 결정적인 변화는 많은 병력을 동원한 재래식 전쟁이 사라지면서 모든 국민이 군에 입대해 전쟁터로 가는 일이 없어진 겁니다. 미국이 국민 개병제를 통해 치른 마지막 전쟁이 베트남 전쟁입니다.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군인이 집집이 한 명씩 있으면 온 국민의 관심이 전쟁에 쏠릴 수밖에 없고, 자연히 대단히 호전적인 형태의 애국심이 고취될 겁니다. 그런데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벌인 전쟁만 해도 후반부로 갈수록 미군은 병력을 충원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 군에 입대해 전쟁터로 파병을 다녀오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상대적으로 큰 저소득층 출신 군인이 많아졌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 상당수는 PTSD를 비롯한 정신 질환을 앓지만, 미국 보훈처 예산이 부족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전쟁이 더는 통합의 기제가 아니라 계급 사회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현상이 지금 러시아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인이 아니라서 더 큰 문제
마크 한나 연구원의 칼럼이 반갑기는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인의 시각, 미국 관점에서 전쟁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고 강조한 글입니다. 그럼, 미국인이 아닌 우리는 어떨까요? 미국의 전쟁 중독이 더 두려운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미국인이 아니라서일 겁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적이 되어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미국이 여차하면 벌이는 전쟁에 말려들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전쟁 당사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의 주변 국가들도 늘 긴장한 채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본토 중국 공산당과 사이가 좋지 않은 대만 민진당 정부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방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튼튼한 안보 태세를 홍보했습니다. 그러나 대만 국민들은 두렵지 않았을까요? 저만 해도 대만에서 갈등이 고조되다가 그 불똥이 한반도로 튀면 어쩌나 늘 조마조마합니다. 전문가들이 당장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전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는 게 또 우리의 운명입니다. 미국인이야 전쟁에서 이긴 기억이 대부분이지만, 우리에게 전쟁은 온 나라가 폐허로 변한 기억이 대부분이죠. 대만 사람들도 미국보다는 우리와 처지가 비슷할 테고요.
다원주의 사회에서 평화가 설 자리
마크 한나 연구원은 미국 안에서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고 썼습니다. 사실 전쟁을 배척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시민이 한목소리를 내야 할 일입니다. 현실적으로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나라가 세상에 많지 않다는 문제가 있죠. 칼럼에도 나온 것처럼 지도자의 말이 곧 법이 되며 토론이 허락되지 않는 독재 국가나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원주의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원리를 채택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그래서 권위주의 통치하의 시민들 몫까지 더해 평화를 요구해야 합니다. 세상에 ‘정의로운 전쟁’과 ‘악의 세력이 시작한 전쟁’이 따로 있지 않고, 모든 전쟁은 할 수만 있다면 처음부터 막아야 한다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인식의 전환을 이뤄내야 합니다. 한 손으로 손뼉을 칠 수 없듯이 미국이 뛰어든 모든 ‘정의로운 전쟁’은 결국 미국이 싸울 마음을 먹었기에 일어난 전쟁인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미국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전쟁이나 군비 경쟁을 너무 쉽게 말하곤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인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전쟁과 군사적 긴장, 잠재적인 충돌을 남의 일처럼 여기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한국 사회가 다원주의 사회라면, 정치인의 행동을 바꾸는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유권자가 분명한 선호를 드러내는 겁니다. 전시 사령관에 어울리는 사람보다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을 리더로 뽑겠다는 유권자가 많으면, 그래서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호전적인 언행보다 서로 무기를 내려놓고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는 쪽이 더 인기가 많아지면 정치인은 금방 앞다투어 평화주의자가 될 겁니다.
제가 전쟁을 싫어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둘 중 한 편에 설 것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둘 중 한쪽만 좋고, 다른 쪽은 싫으면 상관없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까요. 이 칼럼을 소개하면서도 ‘그래서 푸틴이랑 바이든이 똑같이 잘못해서 지금 이 사달이 났다는 말이냐고 트집 잡히면 어떡하지’ 걱정 많이 했습니다. 물론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잘못이 훨씬 크죠. 욕심과 오판이 부른 피해에 언젠가는 책임질 날이 올 텐데,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사실상의 유일한 방법이 미국의 힘에 기대는 것이라는 점은 딜레마입니다.
어쨌든 전쟁의 책임이 양쪽에 똑같이 있지 않지만, 한쪽이 100% 잘못한 악마고, 다른 쪽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경우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고, 그러는 사이 전쟁터가 된 땅에 사는 무고한 민간인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기 때문에 전쟁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힘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 칼럼을 쓴 마크 한나와 제 생각이 일치하는 지점일 듯합니다.
편 가르기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에서 그럴수록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아도 되는 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싸우고 대치하는 게 기본값이 아니라,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잘 지내는 길을 함께 찾을 수 있을 때 더 바람직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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