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글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1월 12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보편적인 믿음에 도전하는 주장은 늘 흥미롭습니다. 그 주장에 그럴듯한 근거가 있다면 더욱 그렇죠. 그러나 보편적인 믿음이 보편적으로 된 데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개 새로운 주장은 잠깐 관심을 끌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하지만 때로 그 주장의 과감함 자체가 신선함을 불러일으키고 근거에 나름의 타당성이 있을 때 이 주장은 담론의 자유시장에서 살아남아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합니다.
지난 1일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란에 “육안으로 하는 해부학(Gross Anatomy)”의 저자 마라 알트만이 쓴, 오늘날에는 작은 키가 더 유리하다는 내용의 칼럼은 적어도 이런 조건을 갖췄습니다. 아주 과감하고 어느 정도 그럴듯하지요. 이 주장이 앞으로 어떤 운명을 겪게 될지 궁금한 이유입니다.
그는 먼저 사람들이 왜 큰 키를 좋아하는지 이야기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매우 그럴듯한 진화상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키가 큰 이들이 싸움과 사냥을 더 잘했고, 따라서 생존에 유리했으므로 이성으로, 그리고 동료로 선호되었다는 것입니다. 알트만의 말처럼 오늘날 대부분 사회에서 싸움과 사냥은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생존에 유리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알트만은 몽둥이와 칼로 다른 부족과 전쟁을 하던 시기에 유리하던 큰 체격이 총과 드론으로 싸우게 된 오늘날 조준이 쉬운 더 큰 표적이 되기 때문에 더 불리한 특성이 되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강력한 근거를 덧붙입니다. 바로 키가 작은 이들이 더 오래 살고 암에 덜 걸린다는 연구들입니다. 이들 역시 그럴듯합니다.
키 작으면 지구에도 좋다?
다음 근거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주제인 환경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키가 작은 사람이 음식을 덜 소비하기 때문에 환경에 더 좋다는 것입니다. 흠, 키보다는 체중이 더 밀접한 요소일 듯하고, 덩치가 큰 사람 중에도 소식하는 이들이 있으므로 약간 갸우뚱하게 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있으리라 보이고, 따라서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알트만은 키 작은 이들이 사회에서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유머 감각과 같은 긍정적인 특징을 갖춤으로써 이를 만회하려 한다는 연구를 인용합니다. 이는 일종의 변형된 핸디캡 논리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공작의 화려한 꼬리를 보며 저렇게 불편한 꼬리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능력이 뛰어날 것으로 추정하는 논리 말입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그렇게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알트만의 말대로 언젠가 작은 키가 더 선호된다면, 그리고 이 논리가 맞다면, 그때는 키 큰 사람들이 (지금은 대체로 부족한) 유머 감각과 같은 긍정적인 특징을 개발하겠지요.
사실 이 주장의 중요한 측면 한 가지를 알트만은 글 중간에 농담처럼 살짝 언급합니다. 바로 데이팅 앱에서 상대방의 키 조건을 낮추는 것이 지구를 위하는 행동이라는 것 말입니다. 최근 몇 가지 이유로 데이팅 앱들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상대의 사진과 나이, 키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가장 먼저 보여 준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키를 중요하게 본다는 뜻이겠죠. 실제로 특히 진화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이성의 큰 키를 선호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생존에 유/불리가 전부가 아니다
알트만의 이 칼럼은 우리가 태생적, 본능적으로 가진 선호를 논리적으로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 바꿀 수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곧, ‘그래 네가 키가 큰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이러이러한 이유들이 있으니, 실은 키가 작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너의 삶에 더 좋을 거야.’라는 논리입니다. 물론 저는 이런 주장을 아주 좋아합니다. 적어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자신의 취향 따위는 합리적 판단으로 가볍게 누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알트만의 또 다른 희망, 곧 위에서 말한 여러 이유로 사람들이 실제로 더 작은 키를 선호하게 되리라는 생각에는 그리 동의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오늘날 큰 키가 선호되는 이유가 그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이었던 리처드 프럼의 “아름다움의 진화”는 한때 버려졌던 다윈의 성선택을 새롭게 재조명한 책입니다.
자연선택이 생존에 유리한 특성이 보존되고 살아남는 것이라면, 성선택은 이성, 특히 암컷의 선호가 어떤 특성을 살아남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연히 어떤 특성이 선호되면, 이제 그 특성은 선호된다는 바로 그 이유로 더 강한 선호의 대상이 됩니다. 키로 설명하자면, 키가 큰 후손이 시장에서 선호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키가 큰 이성을 찾게 되는 것이죠. 인간이 그렇게 단순하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답은 모두 알고 있고요. 제가 키가 곧 아름다움이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생존에 불리하다고 해서 사람들의 선호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조금 다른 이유로 키가 컸으면 합니다. 요즘 저희 세대의 청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슬램덩크”가 다시 영화로 상영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대학생 때 무수히 많은 시간을 농구장에서 보냈습니다. 농구는 단 몇 센티미터의 키가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운동입니다. 그때도 거인의 눈으로 본다면 그저 2~3% 차이밖에 나지 않는 이들이 왜 이렇게 키에 민감한지 웃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덩크슛은 지금도 정말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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