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2022년 미국 중간선거는 무엇이 걸린 선거일까?

지난 9월 28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올린 글입니다. 중간선거 결과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조금 전에 아메리카노 팟캐스트에 새 에피소드를 올렸습니다.

 

2년에 한 번씩 모든 의석을 새로 뽑는 하원은 이변이 없는 한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되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50:50인 상원은 치열한 접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2년 뒤 대선에 과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출마할지도 이번 선거 결과에 달렸습니다. 트럼프가 전직 대통령은 선거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관행을 깨고 적극적으로 당내 경선에 개입해 지지한 후보들이 본선에서도 승리한다면, 트럼프는 정말로 다시 대권에 도전할 명분과 동력을 얻게 될 겁니다.

이런 분석들은 비교적 쉽게,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이죠. 이밖에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유명을 달리할 것들이 또 있을까요?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에서 제외한 대법원의 돕스(Dobbs) 판결 이후 치르는 중간선거인 만큼 연방 의회 못지않게 주 의회, 주 정부에서 일할 사람이 어느 정당의 누가 될지도 중요할 겁니다. 이밖에 기후 정책, 이민 정책, 의료보험, 교육, 경제 정책을 비롯해 수많은 이슈들이 당연히 선거 결과의 영향을 받겠죠.

이달 초 바이든 대통령의 이례적인 연설을 소개하면서도 짚어봤지만, 정치적 양극화는 이제 미국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그럼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까요? 이와 관련한 관전 포인트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하다 뉴욕타임스가 제작한 영상 칼럼을 봤습니다. 이번 선거는 단지 민주당, 공화당이 표를 얼마나 많이 받고 의석을 몇 석 차지하느냐 이상의 중대한 문제가 걸린 선거라는 꽤 진중하고도 비장한 분석이었습니다. 23일에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실이 아예 같은 내용의 사설을 썼습니다.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가장 근본적인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사설의 영어 제목은 “This Threat to Democracy Is Hiding in Plain Sight”. 우리말로는 “민주주의를 향한 위협, 등잔 밑이 어둡지 않은지 살펴야” 정도로 옮길 수 있겠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지적한 문제를 요약, 정리했습니다.

사진=Unsplash

2020년 대선이 끝나고 백악관을 떠나기 전까지 두 달 남짓한 기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단 하나의 목표에 모든 걸 걸고 달려들었습니다. 그 목표는 모두가 받아들이고 인정한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뒤집는 일이었습니다. 공식 석상에서는 이번 선거가 온갖 조작이 난무한 부정선거였다고 비방하면서 뒤로는 자신이 아깝게 패한 주의 선관위 관계자에게 모자란 표를 찾아내라고 닦달했죠.

조지아주의 선거를 총괄하는 주무장관 브래드 라핀스퍼거(Brad Raffensperger)에게 전화해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11,780표를 찾아오라.”며 노골적으로 협박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자체로 미국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협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줬습니다. 그 위협이란 바로 자신이 졌다고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제도 자체를 뒤흔드는 일입니다.

트럼프는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선거 결과를 정식으로 추인하고 당선자를 확정하는 날(1월 6일) 일어난 테러 공격을 방조하고 부추긴 혐의로 하원에서 탄핵당했죠. 실제로 백악관에서 쫓겨나는 건 상원의 2/3가 탄핵안을 가결해야 한다는 규정 덕분에 1월 20일까지 임기는 마쳤지만, 끝내 선거 결과는 인정하지 않았고, 후임자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은 채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자기 집으로 헬기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트럼프가 선거 결과를 뒤집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가 주장한 조작이나 부정선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찾아내 증거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죠.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공화당이 관장하는 주 정부가 트럼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방제 국가 미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없습니다. 대신 각 주의 주무장관(secretary of the state)이 주별로 선거 관리 업무를 총괄합니다. 연방정부의 국무장관과 영어 직함은 같지만, 주무장관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선거 관리 업무입니다. 미국은 주무장관도 당적이 있는 후보를 선거로 뽑는데, 공화당 주무장관들이 트럼프의 요구를 잇달아 거절하며, 선거의 중립성을 지킨 겁니다. 위에서 예로 든 라핀스퍼거 주무장관도 바로 그런 예입니다. 통화 녹취록에서 라핀스퍼거는 트럼프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주의 개표 결과는 여러 번 검토, 확인을 거친 최종 결과이며, 대통령께서 말하는 사라진 표는 없습니다.”

트럼프의 억지 요구에 굴하지 않은 주무장관들과 투표소 참관, 검표, 집계에 나선 많은 시민은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지만,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보루가 된 셈입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1965년 제정된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은 대단히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노예제 철폐를 이끈 남북전쟁이 끝난 지 꼭 100년 만에 드디어 피부색에 따라 투표할 권리가 제약되는 건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명시했으니까요. 그러나 투표권을 제약하려는 시도는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가 지적하는 더 근본적인 위협은 따로 있습니다. 유권자의 투표권을 제약하는 것도 물론 문제지만, 만약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이 검표, 개표, 결과 승인에 이르는 선거 관리 업무를 장악하게 되면 그거야말로 최악의 사태가 되겠죠.

2년 전엔 증거를 대지 못해서, 또 선거관리 업무를 하는 주 정부 안에서 우군을 찾지 못해 선거 결과를 뒤집지 못했던 트럼프와 그의 추종 세력은 주 정부 곳곳에 포진하며 다음 선거를 준비해 왔습니다. 주무장관이나 선거관리 공무원을 협박도 해보고 어르고 달래도 봤지만, 모두 통하지 않자, 아예 자신들이 직접 선거관리 업무를 맡기로 한 겁니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경기에 지고 나서 밑도 끝도 없이 승부조작 의혹을 제기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외려 자신들이 직접 심판을 매수하고 골대를 자기편에 유리한 쪽으로 몰래 옮기는 셈입니다. 1월 6일 의사당을 점거한 폭도들의 행위는 눈에 너무 잘 띄어서 모두의 비판을 받았고, 주동자들은 처벌을 피해 갈 수 없었지만, 우리 편 사람들로 선거 관리 업무 인력을 채우는 물밑 작업은 눈에 잘 띄지도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인물들의 면면과 이들이 한 일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모든 거짓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인들은 지금껏 다른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렇듯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지지 정당이 달라서 선거 때마다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선거 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흔드는 일은 금기시됐죠. 트럼프는 정확히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채 마라라고 저택으로 ‘퇴각’한 트럼프는 공화당을 장악하며 대통령 행세를 하고 다닙니다. 중간선거를 앞둔 경선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자신을 지지하는 후보를 잇따라 공화당 후보로 만들었습니다. 트럼프의 지지를 받기 위해선 공개적으로 “지난 대선은 바이든이 찬탈해 간 부정 선거!”라는 생각을 밝혀야만 합니다. 그런 사람들로 주 정부 요직과 핵심 의석을 채우는 게 트럼프의 목표입니다. 계획이 모두 트럼프 뜻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라핀스퍼거는 트럼프가 내세운 후보를 공화당 경선에서 가볍게 꺾고 조지아주 주무장관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섭니다. 그러나 트럼프 덕분에 무명 인사가 갑자기 공화당 후보가 된 사례도 아주 많습니다.

네바다주 주무장관 선거에 나서는 공화당 후보 짐 마천트(Jim Marchant)는 만약 2020년에 자신이 주무장관이었다면 바이든 후보의 ‘거짓 승리’를 승인하지 않았을 거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닙니다. 그는 2년 전 네바다주 하원 선거에 나와서 패했는데, 부패한 선거 제도 탓에 자기가 진 거라며, 이 선거 제도를 뜯어고칠 적임자가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트럼프와 똑같은 순환 논리의 오류에 빠진 사람이죠. “내가 질 리 없는 선거에서 내가 졌으니, 이건 100% 제도 탓이다, 내가 승리하는 선거만이 민심을 정확히 반영한 공정한 선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만 선거 관리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식입니다. 예년 같다면 공화당 안에서 이런 억지 주장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공화당은 미국의 모든 시스템이 다 썩어빠졌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철석같이 믿는 이들로 가득한 곳이 돼 버렸습니다.

미시건주 주무장관 선거에 나서는 공화당 후보 크리스티나 카라모(Kristina Karamo)도 마찬가지로 2020년 선거에서 투표가 조작됐다는 근거 없는 주장과 잇단 음모론을 쏟아내며 주목받았고, 트럼프의 공개 지지를 받아 후보가 됐습니다. 그는 1월 6일 테러가 극렬 좌파 테러리스트 안티파(antifa)가 트럼프 지지자들로 분장해 일으킨 자작극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우려되는 이력이 가장 화려한 사람은 애리조나주 주무장관 후보 마크 핀쳄(Mark Finchem)일 겁니다. 현재 애리조나주 하원의원이기도 한 핀쳄은 극우 민병대 조직에 몸담았던 인물로 지난해에는 극우 음모론인 큐아넌(QAnon) 연례 회의에서 연설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1월 6일 테러에 가담했던 의혹을 받고 있는데, 본인은 그날 의사당 건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만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주에서 일어난 선거 결과를 최종 승인하는 주무장관은 선거 과정을 장악하려는 트럼프와 그 추종 세력에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보다 중요성은 덜할지 몰라도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만 있다면 판세를 유리하게 짤 수 있는 자리도 있습니다. 주 정부보다 훨씬 더 아래 단위에서 선거 관리 업무에 투입되는 많은 자리입니다. 카운티나 선거구 단위의 검표 요원은 물론이고 투표소 참관인에 이르기까지 ‘부패하지 않은 우리가 직접 그 자리를 채우자’는 캠페인이 지난해부터 대대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캠페인을 주도한 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참모이자 백악관 수석 보좌관을 지낸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입니다. 극우 언론 브레이트바트 사장 출신이기도 한 배넌은 자신의 팟캐스트 전쟁사령부(War Room)에서 “우리 애국자들이 부패한 선거를 똑똑히 감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쉼 없이 내보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수천, 수만 명이 선거 관리 업무에 자원했습니다. (균형을 이뤄야 할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 전역의 투표소마다, 선거구마다 투입될 이 참관원, 검표 요원, 선거관리위원들은 배넌을 비롯한 트럼프 지지 세력이 만든 단체로부터 투표를 지켜보다 조작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투ㆍ개표 과정을 멈추거나 지연시키고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지 교육받았습니다. 2020년에 선거 부정을 주장하던 트럼프의 가장 큰 약점은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었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연방제 국가 미국의 수많은 권한은 연방 정부나 중앙보다도 주 정부와 지방에 분산돼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선거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자유롭고 평등하며, 공정한 선거 제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던 것은 엄격한 헌법 조문 덕분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미국처럼 큰 나라가 4년에 한 번씩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선출직을 뽑는 선거를 원활히 치를 수 있던 가장 큰 비결은 선거에서 진 사람이 패배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거 제도와 그 제도를 굴리는 동료 시민을 향한 신뢰가 밑바탕이 됐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바로 이 신뢰를 내팽개치고, 자기가 선거에서 패배하자 제도 자체를 적폐로 몰아세웠습니다. 여러모로 준비가 덜 된 그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트럼프는 쫓겨나듯 백악관을 떠났지만, 이번에는 2년 전보다 준비가 잘 돼 있을 테고, 2년 뒤 대선에는 아마도 더 많은 전략을 세워놓고 나올 겁니다.

앞으로 한동안 미국 선거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경쟁인 동시에 기존의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하려는 쪽과 제도를 갈아엎고 다시 쓰려는 쪽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의 인물인 만큼 트럼프와 트럼프 현상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미국 언론도 늘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휴재 전 마지막으로 올리는 정치 분야 글로 어쩌면 다분히 편향적인 주장을 담은 사설을 고른 데는 ABC뉴스 메인 앵커 조지 스테파노폴로스의 한 인터뷰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론 스테파노폴로스도 민주당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정치색이 뚜렷한 인물이긴 합니다.)

스테파노폴로스는 트레버 노아와의 길지 않은 인터뷰에서 오늘 살펴본 뉴욕타임스 사설과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미국 역사상 국민의 40%가 2년 전 대선 결과를 믿지 않은 채로 치르는 중간선거는 이번이 처음일 거예요. 정치인의 말, 주장 가운데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건 언론의 역할 중 하나잖아요. 그런데 언론이 할 일을 다 해서 거짓을 가려내봤자 국민의 40%는 되려 언론에 가짜뉴스 딱지를 붙이고 적대시하는 상황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진행하는 뉴스에서 제가 정한 원칙은 하나입니다. 지난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제 뉴스에 절대로 출연할 수 없습니다.”

ABC와 훌루(hulu)는 선거를 취재하는 ABC 뉴스 소속 젊은 기자들의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Power Trip”을 방영합니다.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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