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2022 미국 중간선거 관전 포인트: ‘라티노=민주당 텃밭’ 공식에 균열 갈까?

지난 8월 3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쓴 글입니다.

미국 중간선거가 약 3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부터 틈틈이 유용한 관전 포인트가 될 만한 인물, 현상, 칼럼을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글은 라티노(latino) 유권자들의 표심에 관한 글입니다. 가장 주목해볼 만한 인물은 지난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이 10%P 이상의 득표율 차이로 이겼던 텍사스주 34번 선거구를 지난 6월 보궐선거에서 되찾아온 공화당 마이라 플로레스 하원의원입니다.

“공화당 버전의 AOC, 더 나은 AOC”라고 자신을 홍보하며 전국적 주목을 받는 젊은 정치인이 있습니다. 지난 6월, 텍사스 출신으로 연방 하원에 입성한 마이라 플로레스(Mayra Flores)가 그 주인공입니다. 1986년생 정치 신인 플로레스의 당선은 수십 년간 민주당이 장악해 온 지역구에서 공화당의 승리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라티노 유권자 집단을 공략해온 공화당의 전략적 승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마이라 플로레스 하원의원. 사진=Eric Gay/AP

그를 집중 조명한 뉴욕타임스 팟캐스트에 따르면 플로레스는 이민자인 아버지로부터 “라티노는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교육받았지만, ‘민주당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해주는 것이 뭐가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뒤 고민 끝에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꾸었습니다. 또한 국경수비대 소속인 남편을 통해 국경 지대에서 법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혼란과 범죄가 가득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역에서 트럼프 재선 선거 운동을 조직해 상당한 성과를 낸 플로레스는 종교, 가족, 국가라는 “미국적인” 가치를 키워드 삼아 지난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습니다. 의회 첫 연설에서도 국경 통제와 이민 문제를 언급하며 자신의 색을 뚜렷하게 드러냈습니다.

팟캐스트는 플로레스와 같이 강경 보수 색채를 전면에 드러내는 라티노 여성 정치인들이 공화당의 라티노 유권자 전략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공화당은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이민자 출신 유권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반드시 반이민 수사를 접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반이민”, “성차별주의”라는 진보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민자 출신 여성을 내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종교를 바탕으로 한 보수적인 가치관이 실질적인 라티노 주민들의 경험과 가치관을 반영한다는 주장을 앞세우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민자”라는 슬로건을 통해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하던 관행에 균열을 일으키는 전략입니다.

 

미국 내 남미 출신의 이민자들이 많이 늘어나는 것은 한때 공화당에는 위기, 민주당에는 기회라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젊은 라티노 유권자가 많이 늘어난 남부 지역에서 실제로 민주당이 과거에 없던 성과를 내면서 이른바 “보라색 주(purple states)”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죠. 특히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을 범죄자로 매도하고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공약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치명타가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언제나 복잡합니다. 한 사람의 유권자가 “이민자” 이외에 다양한 정체성을 갖기도 하고, 이민자 문제뿐 아니라 다른 여러 사안에서도 계급 배반 투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죠.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입만 열면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공화당이 임금 차별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어떤 여성 유권자들은 “여성 유권자”라는 정체성보다 낙태 금지, 총기 소유에 찬성하는 “보수 유권자”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투표합니다.

이미 “합법적”인 경로로 이민하고 정착에 성공한 이민자들은 오히려 강력한 국경 통제와 배타적이 이민 정책에 찬성하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 너무나도 명백한 성차별적, 반이민적 수사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여전히 해당 유권자들을 공략하고, 또 일부 성공을 거두고 있는 현실은 이를 잘 반영합니다. 라티노 유권자들은 인구에 비해 투표권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낮고, 다른 인종 집단보다 정치적인 조직력과 동원력이 떨어져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앞으로 그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고, 핵심적인 부동층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화당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집단인 것도 사실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또한, 지난해 초 같은 맥락의 현상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분석한 칼럼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1월 6일 의사당 습격 사건의 참여자나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 가운데는 비백인도 있다며, 음모론을 신봉하고 반인권, 반이민 기조에 적극 찬성하는 비백인 유권자의 존재를 “다인종 백인성(multiracial whiteness)”으로 명명한 크리스티나 벨탄 뉴욕대 교수의 글입니다. 

필자는 다인종 백인성이 토지와 부, 권력과 특권의 불평등한 분배, 인종 간의 위계와 차별, 혐오에 초점을 둔 이념으로 여기서 백인이란 단순한 피부색이 아니라 정치적인 색깔이며, “자유와 소속감이 타인에 대한 박해와 비인간화를 통해 얻어질 수 있다고 보는 차별적인 세계관”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인종 백인성의 정치에서는 누구든지 피부색에 상관없이 혐오와 배제, 폭력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죠. 마이라 플로레스 의원의 행보에서도 위험한 줄타기의 흔적이 발견됩니다. 그는 당선 이전인 2021년 소셜미디어에 의사당 습격 사건이 극좌 세력인 이른바 안티파의 소행이라는 음모론과 대선 사기론을 게시하거나 리트윗한 적이 있으며, 후에 자신이 연루됐거나 지지한다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큐아넌(QAnon) 음모론 연관 해시태그를 단 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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