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앞둔 바이든, 현실과 이상의 괴리

지난 7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MBS) 사우디 왕세자를 만나고 돌아오기 전에 올라온 기사와 칼럼들을 모아 정리한 글입니다.

 

모든 국가가 외교 무대에서 국익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국제 관계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명분과 실리 사이의 줄타기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압도적인 국력으로 국제 질서를 주도해온 동시에 국제무대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내세워 온 국가입니다. 말과 행동 사이의 괴리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일 것입니다.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방문을 앞두고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입니다. 진보 성향의 민주당 정치인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문제를 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반면,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사우디와의 전략적인 관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실 1970년대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쭉 사우디 지도자들과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바이든은 선거 당시부터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미국 언론에서는 ‘카쇼기’로 발음) 살해 사건과 예멘 참전을 들며 사우디에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을 예고했고, 당선 후 어느 정도 공약과 일치하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이번 방문은 노선 변경으로 여겨집니다.

미국 정부가 국익을 위해서 “손에 피를 묻힌” 정권이나 지도자들과도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텍사스 A&M 대학 국제관계학 교수 F. 그레고리 가우스는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이번 방문 역시 세계 석유 시장을 안정시키고 예멘 내전 정전을 연장하고 이란을 억제하는 등 결과를 가져온다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외교 행위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질서를 위해 명분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된 건 미국뿐 아니라 중동 국가들도 마찬가지라면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이란과 양자 회담을 재개한 점, 터키 정부가 사우디에 대한 비난을 한 수 접고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MBS) 사우디 왕세자를 만난 점을 꼽았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MBS)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이란 대 이스라엘, 시리아 대 터키, 사우디 대 예멘 등 역내 여러 전선에서 충돌 가능성은 여전하지만, 평화를 위한 작은 진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미국도 이런 분위기를 독려하고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이죠. 또한 트럼프가 사우디 왕세자와의 돈독한 관계를 너무 강조한 바람에 미국 내에서 대 사우디 관계가 지나치게 정치화된 부분이 있다면서, 미국-사우디 관계에서도 초당적인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워싱턴포스트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 사우디 정책이 전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습니다. 선거 기간 사우디를 “왕따(pariah)”라는 강한 단어까지 써가며 비난했던 것이 오히려 기조에서 동떨어진 일화라는 것입니다. MBS에 대한 비난과 별개로, 일상적인 외교 업무에서부터 국무부와 백악관 관계자들의 성명, 실질적 정책 수행에 이르기까지 조심스럽게 대 사우디 관계를 조율해왔다는 것이죠. 미국이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권 문제는 사실 중동 외교의 협상 테이블에 주요 의제로 오른 적도 없고, 오히려 이집트 같은 국가에는 시늉만 보이면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을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7월 6일, 자말 카슈끄지의 약혼자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칼럼란에 실었습니다. 약혼자인 하티제 젠기즈는 그 어느 때보다 원칙에 기반한 리더십이 필요한 세계정세 속에서 미국이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수호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 독재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면서, 살인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던 약속을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또한 중동을 방문한다면 MBS를 만나기 전에 부당하게 감금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할 것을 촉구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이번 방문을 취소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바이든 당선 이후 미국 정부는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한 인물이 MBS라고 결론지은 보고서를 공개하기도 했으나, 당사자는 여전히 그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실질적인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MBS는 지난 3월 아틀란틱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카슈끄지의 기사를 읽은 적도 없고, 제거 명단을 만든다면 카슈끄지는 1,000명 안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고 답했죠. 또한, 자신이 오히려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지 못한 인권 탄압의 피해자라면서, 미군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결혼식 폭격, 관타나모 베이의 수용자 고문 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바이든의 “오해”에 대해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미국의 국익을 고려하는 것은 바이든 자신의 몫이라면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악화되면 중국이 기뻐할 것이라고도 말했죠. 뼈가 있고 날이 선 말을 주고받은 MBS와 바이든의 만남이 성사되면 그 자리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가게 될지, 그리고 그 만남이 국제 정세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이번 주 쏟아질 뉴스를 주목해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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