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에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올린 글입니다.
오늘 글을 쓰려고 준비하다가 아파트 현관에 오랫동안 붙어 있던, 그러나 저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서 무심결에 지나쳐 온 광고 전단을 봤습니다.
SAT(Scholastic Aptitude Test)는 우리말로 옮기면 수학능력시험, ACT(American College Test)는 말 그대로 대입 학력고사 정도가 되는데, 대학교 입학 원서를 넣기 위해 미국 고등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대표적인 전국 단위 표준화된 시험(standardized tests)입니다.
그런데 저 과외 교사는 앞으로 캘리포니아에 있는 주립대학교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받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난주 미국 최대 주립대학교 시스템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CSU, The California State University)가 학생 선발 요건에서 SAT와 ACT 등 표준 시험을 제외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입시 요강에서 뺐던 SAT/ACT를 다시 포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대학교라면 누구나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서 가르치고 길러내고 싶을 겁니다. 또 여러 가지 기준에서 다양성을 충족하는 학생에게 대학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분명한 목표일 겁니다. 두 학교가 정반대 행보를 보인 것처럼 교육계와 학계에서도 몇 년 전부터 표준화된 시험이 입시에 도움이 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MIT의 스튜 슈밀(Stu Schmil) 입학처장이 직접 쓴 글과 인터뷰를 보면, MIT는 표준화된 시험이 원하는 학생을 선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MIT가 원하는 학생의 요건 중에는 “다양한 출신 배경”의 학생이 명시돼 있습니다. 여기서 다양성이란 사회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안, 기득권 출신이 아닌 저소득층, 취약계층 출신 학생을 뜻하는데, MIT는 비싼 과외나 부모의 재력, 정보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활동으로부터 배제된 저소득층 학생들이 MIT에 어울리는 학생인지 스스로 증명하는 데 SAT나 ACT 같은 시험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슈밀 처장은 MIT가 물론 시험 점수 외에도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MIT에 어울리는 인재상인지, MIT의 절대 쉽지 않은 교육을 받아낼 준비가 돼 있는지 등을 가늠하려면 SAT나 ACT 만점자만 뽑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학교 측도 잘 알고 있다는 거죠. 그럼에도 MIT가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예해야 했던 SAT/ACT 시험을 다시 요강에 넣기로 한 이유로 슈밀 처장은 다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CSU)는 MIT와 같은 이유로, 같은 목표를 위해 정반대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소득층이나 사회경제적 취약계층 출신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이 학생들 가운데 잠재력이 있는 유능한 학생들을 더 잘 선발하기 위해 SAT/ACT를 요강에서 빼기로 한 겁니다.
CSU는 캘리포니아주 전역에 걸친 23개 대학교로, 등록된 재학생만 47만 7천 명에 이르는 미국 최대 주립대학교 시스템입니다. 우리에게는 연구 중심 종합대학 10개가 모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시스템(UC, University of California)이 좀 더 익숙한데, UC 소속 대학들은 미국 안에서도 명망 있는 박사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UC 버클리나 UCLA, UC 샌디에고 등 잘 알려진 대학교가 많습니다. UC 대학교에 등록된 재학생은 28만 명입니다. UC는 이미 지난해 SAT와 ACT를 입시 요강에서 뺐습니다. 이번에 CSU가 발표한 이유와 같은 이유였습니다.
CSU의 스티브 렐리아 총장은 이번 결정이 “출신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열어줄, 운동장을 평평하게 다지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표준화된 시험이 유색인종이나 저소득층, 취약계층 출신 학생에게 불리한 입시 제도이며, 부잣집 아이들이 누리는 걸 갖추지 못한 학생들은 불공평한 시험을 받는 셈이라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값비싼 쪽집게 과외를 받아 점수를 뻥튀기할 수 있는 재력이 있는 집안의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비교한 비판은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SAT와 ACT를 입시 요강에서 빼야 한다는 소송이 잇따라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UC 버클리의 경제학자 제시 로스슈타인(Jesse Rothstein)은 SAT/ACT가 인종과 소득, 부모의 학력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지는 불공평한 시험이라는 비판을 꾸준히 제기해왔습니다. 로스슈타인 교수는 UC 데이비스의 마이클 쿨랜더, UCLA의 사라 레버 교수와 함께 인종, 소득 등에 따른 편견을 제거하고 학생의 능력을 평가한 종합 내신 평가 지수 ‘Smarter Balanced’로 표준화된 시험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반대로 SAT/ACT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로는 컬럼비아대학교의 미겔 우르키올라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르키올라 교수가 지난해 표준화된 시험을 요강에서 빼기로 한 UC의 결정을 비판하며 올린 트윗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르키올라 교수는 이어진 트윗에서 로스슈타인 교수가 제시한 종합 내신 평가 지수에 관해 “고등학교 내신 인플레만 심해질 수 있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로스슈타인 교수는 해당 트윗의 댓글에서 UC도 SAT/ACT를 다른 표준화된 시험으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지적하며, 인종이나 소득 등 출신 배경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공정한 시험을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에는 우르키올라 교수도 “내신, 학종보다는 표준화된 시험이 학생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데 적합하다”며 동의했습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 입시 요강은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가장 안타까웠던 지점은 새로운 입시 정책을 낼 때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는데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문제여서 이렇게 보완하고 개선하기로 한다”는 설명이 늘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데이터를 모아 분석해보고 문제를 명확히 찾아야 개선할 지점이 보일 텐데, 그러기에는 정책 결정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올해부터 MIT에 원서를 내는 학생들은 다시 SAT/ACT 점수를 내야 합니다. 반대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 가려는 학생들은 ‘수능’에서는 해방됐죠. 이번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관해 이미 많은 경제학자, 교육학자들이 데이터를 모으려고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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