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뇌가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당연해 보입니다. 신경 건축학과 공간 심리학에서는 이와 관련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자연과 가까운 환경이 아이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며, 환자의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층고가 높은 공간에서 사람들의 창의력이 더 높아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어떤 공간이 더 좋은 공간인지 알고 있습니다. 한강 뷰에 따라 집의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마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겁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비만 오면 물이 차는 반지하집과 온종일 햇볕이 잘 드는 저택, 그리고 그 저택 안에 있는 비밀 지하실과 같은 극적인 공간의 대비는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어떤 정해진 환경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우리 뇌가 특정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하는 행동에 익숙해지는 현상도 있습니다. 집에서는 되지 않던 일과 공부가 근처 카페나 독서실에만 가면 매우 잘 되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곧 어떤 환경에서 어떤 행동을 반복해서 하게 되면, 뇌가 그 행동을 미리 준비하게 된다는 것이죠.
이는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이 문장을 생각나게 만듭니다. 바로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고, 그 무언가가 다시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죠.
책이 마음의 공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또 마음은 몸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결국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이 다시 인간을 만든다는 말은 이중적으로 진리로 생각됩니다.
이는 또한, 우리가 공간을 다루는 방법의 변화가 바로 우리의 생활과 문화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을 역으로 말해줍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9월 애틀란틱의 조 핀스커가 소개한 최근의 새로운 사무실 인테리어 유행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유행은 바로 주거 공간을 뜻하는 레지던스(residence)와 상업공간을 뜻하는 커머셜(Commercial) 두 단어를 합한 레지머셜(resimercial)입니다. 말 그대로, 사무실을 마치 집처럼 꾸미는 경향을 뜻합니다. 편안한 소파와 열린 장식장이 있고 그림과 거울, 커튼 등으로 벽과 창문을 꾸미며 바닥에는 카펫,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협탁 등을 두고 전체적으로 나무와 천 같은 소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무실을 집처럼 꾸미는 레지머셜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사진=Unsplash
이는 더욱 편안하고 친숙한 공간을 원하는 직장인들의 희망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핀스커가 우려하듯 바로 일과 삶의 구별이 점점 희미해지는 현상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핀스커는 이러한 경향이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회사는 더 매력적이고 편안한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더 뛰어난 인재를 채용할 것이라 기대했죠.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마치 집에서 일하듯이 소파에 앉아서, 아니면 빛이 잘 드는 창가에 가서 일하는 등 자리를 자유롭게 옮겨 가며 일하는 문화도 나타났습니다. 여기에는 노트북과 같이 업무 도구가 가벼워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를 덮쳤습니다. 사람들은 재택근무라는 이름으로 자기 집을 사무 공간처럼 사용해야 했고, 이제 집과 사무 공간을 구별하기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한편, 기업은 그런 환경에 더 익숙해진 직원들을 회사로 출근하게 하려고 사무 공간을 집처럼 꾸며야 할 필요를 더 느꼈을 것이라고 핀스커는 말합니다. 위 기사에서 버클리의 교수인 모징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집보다 사무실이 더 편하면 사람들은 사무실에 더 오래 머물겠지요.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핀스커는 “역효과: 지식경제 시대의 시간 관리(Counterproductive: Time Management in the Knowledge Economy)”의 저자 멜리사 그레그의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일과 삶을 장소를 통해 구별해온 것은 이를 통해 삶의 기준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최근의 변화가 사람들의 일과 삶의 구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레그는 오늘날의 이런 추세가 회사와 직원을 가족이라 표현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곧,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충성을 바치는 것처럼 회사도 그런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암시한다는 것이지요.
회사가 꼭 가족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일과 삶의 구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저도 좀 찔리는 면이 있습니다. 한편, 예전에는 사무실을 벗어나는 순간 더 이상 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던 시절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게 된 지금 이런 일과 삶의 구별이 사라지는 직업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게도 생각됩니다. 곧, 우리를 24시간 세상과 연결되게 만든 IT 기술이 더 근본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핀스커도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정말로 일과 삶, 사무실과 집의 구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음, 갑자기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