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첫발을 딛는 이들이 하는 대표적인 고민이 바로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입니다. 보통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지 아니면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을 해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짧게 줄이면, 열정을 추구할 것이냐 안정을 택할 것이냐가 되겠지요.
물론 지금 세상에서는 열정을 따르라는 조언이 더 우세한 의견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할 때 더 열심히 할 수 있고, 그래야 그 분야에서 인정받고 전문가가 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안정성은 따라올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그 일을 통해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 것입니다.
하지만 당연히 반론도 존재합니다. 우선 그 열정이라는 것이 해당 직업의 참모습보다는 본인이 우연히 가지게 된 피상적인 이해에서 나왔을 수 있습니다. 목표로 하던 것을 이루었지만 그 곳이 자신이 생각하던 모습과 달라 고민하는 모습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보게 됩니다. 그리고 모두가 예술가나 연예인, 아니면 인플루언서가 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있습니다. 스포츠 스타나 의사, 변호사처럼 열정 외에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애틀란틱에 실린 “당신의 직업을 사랑하라는 말은 자본주의의 획책이다”라는 기사는 이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열정을 부정합니다. 이 기사는 에린 A. 첵의 신작인 “열정의 한계(The Trouble With Passion)”를 바탕으로 직업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가진 위험을 이야기합니다. 첵의 다음과 같은 말은 분명 통쾌한 면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사무직 근로자는 자아실현이 가능한 직종이 아니다. 당신은 주주를 만족시키기 위해 채용된 사람일 뿐이다. 자신의 직업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사람은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익에 눈이 먼 고용주와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에 맡기는 셈이다.
꿈을 좇으라는 조언이 생활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 확보된 상류층에게만 유효한 조언일 뿐이라는 첵의 말도 아프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제가 첫 문단에서 말한 열정이냐 안정이냐라는 고민도 적어도 취업에 앞서 여러 가지 선택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배부른 고민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첵은 또 회사와 고용주가 열정이 있는 직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일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열정을 가지라는 그 수많은 충고가 모두다 자본주의의 농간은 아닐겁니다. 어차피 해야할 일이라면, 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재미를 찾는 것이 충분히 합리적인 자세라 생각됩니다.
첵이 제시하는 대안은 단순합니다. 바로 일을 자기 삶에서 너무 높은 순위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곧 ‘어떻게 해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커리어 패스를 만들까’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해야 일을 마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첵의 조언을 들으니 워라벨이라는 단어가 바로 떠오르네요.
이렇게 보니 일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태도의 원인이 보다 선명하게 보입니다. 한쪽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일에서 찾으려는 이들이고, 다른 이들은 일을 생활의 수단으로만 택하는 이들이지요. 얼마전 SNS를 뜨겁게 달군 주당 52시간 노동을 둘러싼 논쟁도 같은 맥락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첵의 입장 보다는 그 반대편에 더 가깝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미하이 칙센트마이어의 명저 “몰입”의 서두에 나오는 한 나이 든 엔지니어가 보여준 것처럼,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몰입하고 이를 통해 남들보다 더 깊은 이해와 숙련, 성취, 그리고 만족을 얻는 것이 많은 경우 가능하리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곧 직업윤리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한 인간이 드러내는 취향과 선호는 그 인간의 근본적 특성과는 거리가 먼, 대체로 극히 우연적이고 피상적인 것이며, 따라서 그런 취향과 선호 때문에 어떤 일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일이 한 개인의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대부분의 일이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어느새 사측의 편에 더 자주 서게 된 저는 젊은 직원들과 이야기할 때 이 두 가지 측면을 다 이야기합니다. 전자의 관점, 곧 일을 개인의 정체성으로 보는 관점에서 저는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발전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을 서로 꾸준히 노력하며 찾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후자의 관점, 곧 일이 네 삶의 수단이라는 관점에서는 개인과 회사는 업무 능력의 질과 보상의 수준이 시장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계약 관계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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