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든은 유전자가 인간의 여러 특성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곧, 그의 연구는 사회의 역할이 유전보다 거의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우파들과 더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든은 이 세상을 더 공평하고 공정하게 만들고자 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입니다. 따라서 그는 이 책을 통해 실제로 존재하는 유전자의 영향을 좌파들에게 설득하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사회적 개입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우파들에게 설득하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간단한 예로, 근시는 유전의 영향을 많이 받고 시력은 인간의 능력에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근시가 되는 이들은 이 세상에서 불리한 싸움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안경이라는 기술은 그러한 유전적 차이를 거의 없앴습니다. (라식 수술도 포함을 해야겠지요.)
먼저 그녀는 아주 많은 이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를 통해 사람이 가진 특성과 여러 유전자의 연관성을 찾는 최신 기술인 “전장 유전체 연관 분석(GWAS)” 기술이 밝혀낸 유전자의 영향을 자세히 기술합니다. 그녀는 키의 80%, 혈압의 40%, IQ의 50%, 신경증의 40%가 유전자의 영향이라고 말합니다. (하든은 이 수치가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라는 점을 명시했습니다.)
물론 사회가 사람들의 키나 IQ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개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든이 주목하는 한 가지는 교육성취도입니다. 하든에 따르면 교육성취도의 12%는 유전자의 영향이며, 따라서 학교에서는 교육에 불리한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분야로는 의료 영역이 있습니다. 당뇨나 고혈압, 심장병과 같이 유전의 영향이 큰 질병에 대해 유전적 위험도가 높은 이들을 국가가 일찍부터 관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든의 제안은 어느 정도 그럴듯합니다. 물론 하든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우파와 좌파의 태도가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엇이 평등인지에 관한 관점과 의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념이나 사상과 무관하게 당장 눈앞의 딸기 케이크를 나누는 일에도 좀처럼 합의를 이뤄내기 어렵습니다. 정확히 반으로 가르는 것이 정답일까요? 누군가는 저녁을 못 먹었다든지, 아니면 누군가는 딸기를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면 어떨까요? 지난 주에 케이크를 어떻게 나누었는지가 지금 케이크를 나누는 방식에 영향을 주어야 할까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이 있지요. 바로 어떤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 곧,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 위치가 될지 알기 전에 –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규칙을 미리 만들어놓자는 것입니다. 정치철학자 존 롤즈의 ‘무지의 베일’이 바로 이 개념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을 제외하면 발생할 수 있는 사태의 종류가 너무나 많고, 그래서 그런 사태에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원칙을 만들어 놓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즉,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생각하고 그 결과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어 버립니다. 심지어 자신은 자기의 이익과 무관하게 원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자신을 속이기까지 하지요. 인간의 이런 특성을 보여주는 많은 실험결과들이 있고, 인간이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곧 그런 식으로 살았던 조상들이 자손을 더 많이 남길 수 있었으리라는 그럴듯한 가설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공감과 배려라는 다소 뻔한 답으로 그 간극을 메꾸는 수밖에 없을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