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글은 지난해 11월 8일에 프리미엄 콘텐츠에 썼던 글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넉 달이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언젠가는 올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업무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겠습니다.
“위드 코로나”, 일상으로의 복귀 정책과 함께 일터에서의 삶 역시 점차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재택근무가 “뉴노멀”이 되리라던 예측도 있었지만, 최근 한국의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60%가 이미 재택근무를 종료했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재택근무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긍정적인 견해와 부정적인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지금까지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일터의 관행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된 만큼,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영어권 매체에서는 업무 회의의 가치를 재고하는 글들이 부쩍 눈에 띕니다. 애틀란틱은 지난달 한 칼럼을 통해 “정말로 대면 회의가 필요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필자는 모두가 화상회의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서, 대면 업무 회의의 유용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회의라는 것을 방 전체를 장악하고 스스로 중요한 인물임을 느끼게 해주는 이벤트로 여기던 관리자나 기존의 업무 회의를 그리워하지 않겠냐고 의심하면서, 화상 회의로도 일이 얼마든지 진행된다는 것을 안 이상 대면 회의에 대한 환상이 깨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BBC는 한술 더 떠 “회의 없는 조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회의를 금지하면 노동자들이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11월 2일자 기사는 2019년부터 “회의 없는 회사”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디지털미디어 기업을 소개하면서 “매우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회의가 아니라면 대부분 브레인스토밍은 다른 툴로도 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회의를 없애면 구성원들이 “스스로 시간 계획을 짤 수 있고, 창의적인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CEO의 의견을 실었습니다. 해당 기사에 실린 설문조사 결과처럼 많은 직장인은 잦은 회의가 업무를 방해한다고 느끼고, 특히 재택근무 시대에 줌 회의 피로도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일주일 중 회의 없는 날을 지정하거나, 슬랙처럼 투명하게 서로의 업무 상황을 확인할 수 있지만, 얼굴을 마주 보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는 회사들이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반면, 회의 금지 또는 제한 정책을 시행해보니 어떤 경우에 회의가 가장 효율적인 소통 방식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 기사의 결론은 아직 “회의 없는 회사”라는 개념의 역사가 짧고 체계적인 연구 결과도 없어서 개별 사례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모든 회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쁜 회의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쁜 회의, 반대로 좋은 회의란 무엇일까요? 이코노미스트는 대체로 괜찮은 결정을 도출하면서도 모두가 존중하는 형태로 수백 년간 지속해 온 회의에서 힌트를 얻자고 제안합니다. 그 회의는 바로 재판 배심원 회의입니다.
기사에서 정리한 배심원 회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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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 회의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즉 이 회의의 존재 이유가 뭔지, 어떤 과제가 있는지, 여러 사람이 모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뚜렷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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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 인원의 수가 적절해야 합니다. 12세기 영국에서 유래한 배심원단의 사이즈가 그대로 유지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보다 적으면 집단의 다양성이 결여될 수 있고, 그보다 많으면 목소리는 늘어나지만, 가치가 생겨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업무 회의에 “피자 2판 규칙”을 적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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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가 명확합니다. 모든 회의에는 배심원 회의처럼 하나의 큰 과제, 그리고 몇 개의 제한된 선택지가 있어야 합니다. 배심원 회의에서 사법 제도 전반의 개혁 방안에 관해 브레인스토밍하는 일은 절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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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구성에도 참고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배심원은 넓은 집단에서 무작위로 선발하며, 어떤 사안에 대해 이미 확고한 의견을 가진 사람은 애초에 배심원단을 구성할 때 배제합니다. 기업이 길 가는 행인을 회의에 데려다 앉힐 수는 없지만, 낯설고 다양한 관점을 얻기 위해서는 회의 참석자 구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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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인 안정도 고려할 사항입니다. 사장님이 모두를 노려보는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의견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애초에 회의를 어떻게 세팅하는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배심원 회의라는 것은 원래부터 다양한 의견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여러 사람의 판단을 받게 한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배심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펼칠 수 있죠.
물론 배심원 제도는 완벽하지 않고, 법정에서의 판결과 기업의 업무 결정은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회의가 갖추어야 할 요건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는 것이 기사의 취지입니다.
포스트판데믹의 과도기, 더 나은 업무 회의를 만들어나갈 좋은 기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