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아메리카노 지난 시즌에서는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Federal Trade Commission)의 리나 칸(Lina Khan) 위원장이 쓴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을 같이 읽었습니다.
리나 칸 위원장이 지적한 플랫폼 기업의 이해관계 충돌에 관해 대표적인 사례를 마크업이 자세히 분석해 쓴 기사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요약, 소개한 글입니다.
칸 위원장은 예일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기 전, 28살에 쓴 논문에서 보여준 통찰을 바탕으로 미국 반독점 규제를 총괄하는 기관장으로 발탁됐습니다. 논문의 핵심은 플랫폼 경제에서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핵심 인프라를 관장하는 엄청난 권력이 집중되므로, 이들이 독점 권력을 이용해 시장의 경쟁을 저해하는지 감독하는 일이 반독점 기구의 주요 업무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1970년대 시카고학파가 주창한 “독점 가격만을 기반으로 한 소비자 후생”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플랫폼 경제에서 독점 기업의 횡포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었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팟캐스트에서 확인해 주세요!
오늘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는 이와 관련한 기사 한 편을 소개합니다. 빅테크의 전횡을 고발하는 매체 마크업(The Markup)이 플랫폼 사업자 아마존이 어떻게 시장의 경쟁 질서를 왜곡하는지 직접 검증한 기사입니다. 시간이 있는 독자분들은 마크업이 검증 과정을 자세히 소개한 후속 기사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온라인 구매의 40%는 아마존에서 일어납니다. 그 뒤를 잇는 월마트의 온라인 구매 시장점유율은 5%가 채 되지 않죠. JP모건의 전망에 따르면, 아마존의 매출은 내년이면 월마트의 온·오프라인 매출의 합을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바꿔 말하면, 각종 제품을 파는 중소기업이나 개인 판매자들은 전자상거래 플랫폼 가운데 압도적인 점유율 1위인 아마존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마존은 마켓플레이스(Marketplace)라는 이름의 온라인 장터 플랫폼을 운영합니다. 그런데 아마존이 장터에 입점한 판매상들에게 수수료만 받는 게 아니라, 아예 자체 브랜드 제품을 출시해 기존 제품들과 경쟁하면 어떻게 될까요? 또 그렇게 내놓은 제품이 아마존의 자체 브랜드 제품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고객들의 눈에 잘 띄는 데 배치하는 식으로 몰래 ‘밀어주기’를 한다면 이는 불공정 경쟁에 해당할까요?
1970년대 이후 미국 정부의 반독점 규제 기조를 따르면, 아마존의 이런 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리나 칸 위원장이 주창한 새로운 기조를 따른다면, 이는 핵심 인프라에 해당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경쟁 질서를 해친 행위로 간주해 규제 대상이 됩니다.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 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에 못지않은 통찰을 담았다는 평을 받는 리나 칸 위원장의 또 다른 논문 “플랫폼과 상업의 분리(The Separation of Platforms and Commerce)”가 정확히 이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크업은 플랫폼 사업자 아마존이 마켓플레이스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확인하고자 아마존의 검색결과를 분석했습니다. 아마존에 로그인한 상태로 검색결과를 보면 개인별 맞춤형 알고리듬이 적용되므로, 로그아웃한 상태에서 검색을 수행하는 아마존 웹사이트의 소스코드를 분석했죠.
결론부터 말하면, 아마존은 일반 업체의 브랜드보다 아마존이 소유한 브랜드 또는 아마존에서만 판매하는 제품을 검색결과에서 우대했습니다. (아마존은 이 두 카테고리를 묶어 “우리 브랜드(our brands)”라고 부릅니다.) 아마존의 일원이 아니라면, 적잖은 광고비를 내고 검색결과 상위권에 있는 ‘스폰서 링크’ 자리를 사거나 검색결과에서 한참 뒤로 밀려나는 걸 감수해야 합니다. 제품 사진을 잘 찍거나 소비자들에게 좋은 후기를 받아도, 심지어 물건을 많이 팔아 베스트셀러가 되더라도 아마존의 “우리 브랜드”를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마크업은 2021년 1월, 아마존에서 인기 있는 상품 3,492가지를 검색해봤습니다. 약 60%의 경우 검색결과 최상위는 광고비를 낸 기업의 제품들이 차지했습니다. 스폰서 링크 자리를 돈 주고 산 제품들입니다. 나머지 40% 가운데 약 절반은 아마존의 자사 브랜드 제품이나 아마존에서만 판매하는 제품, 즉 아마존이 ‘밀어주는’ 제품에 배정됐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아마존 마켓플레이스를 이용하지만, 광고비를 내지 못한 아마존의 경쟁 업체 제품들이 차지했습니다. 그러니까 60%는 광고비를 낸 기업의 제품, 20%는 아마존이 ‘밀어주는’ 제품, 나머지 20%가 일반 제품에 돌아간 셈인데, 실제로 조사한 제품들 가운데 아마존의 “우리 브랜드” 제품 비중은 6%에 불과했습니다. 일반 제품의 비율은 77%였죠. 결국, 아마존은 검색결과 상위의 좋은 자리를 독차지하고 이를 자기 식구들에게 몰아주고 있던 셈입니다.
2019년 아마존은 미국 의회에 아마존의 검색결과를 정하는 알고리듬은 아마존의 자사 브랜드인지 아닌지에 영향을 받지 않게 설계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마존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물건을 파는 판매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실제로 아마존은 “우리 브랜드”를 우대했습니다. 슈퍼마켓에 비유하면, 아마존은 자사 브랜드 제품이나 아마존에서만 살 수 있는 제품을 매장 내에서 손님의 눈에 훨씬 잘 띄는 매대에 배치해두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아마존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대개 이런 사실을 잘 모릅니다.
검색결과 상위에 자리를 잡으면 당연히 매출에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아마존이 밀어주면 곧바로 경쟁자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죠. 아마존 출신의 한 컨설턴트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검색결과 상위에 있는 제품 3개에 이용자들의 클릭 64%가 몰립니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아마존은 심판이자 경기감독관, 선수 에이전트를 겸하면서 자신이 관리하는 선수들을 경기에 내보내 타석에서 부정 배트를 사용하도록 눈을 감아주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마크업이 아마존의 검색 소스코드를 분석했더니, 아마존은 “우리 브랜드” 제품의 87%에 “스폰서” 코드를 집어넣었습니다. ‘밀어주는’ 제품을 판촉 상품으로 분류해 검색결과를 끌어올린 겁니다. 아마존은 “자사 브랜드 추천상품”이라는 표시를 한 뒤 검색결과를 노출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이런 방식이 광고비를 받은 판촉 상품과 일반 검색결과를 명확히 구분하도록 한 연방거래위원회 광고 규정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소비자들이 아마존에서 제품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가 특정 브랜드를 우대하지 않는 중립적인 알고리듬을 따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아마존의 이런 모호한 표기 방식은 불공정 경쟁이나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 부국장과 연방거래위원회 경쟁국장을 지낸 빌 배어는 “시장에서 권력이 있는 행위자가 거래에 접근하는 권한을 제한하거나 웹사이트에 뭐가 보이게 하고 뭐는 가리는 식으로 개입하는 건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존의 경쟁 업체 중에는 아마존이 자신의 제품을 사실상 그대로 베낀 다음 자사 브랜드 제품으로 출시했다고 주장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아마존은 지난 3월 아마존 베이직스(Amazon Basics) 브랜드를 통해 에브리데이 슬링(Everyday Sling)이라는 이름의 카메라 가방을 팔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제품은 픽 디자인(Peak Design)이라는 회사의 제품과 이름은 같고, 디자인도 비슷한데 값만 훨씬 쌉니다. 픽 디자인의 CEO는 격분했습니다.
디자인의 일부가 겹치거나 스타일을 좀 흉내 낸 정도가 아녜요. 그냥 통째로 제품을 베껴 짝퉁을 만들어놓고 헐값에 내놓은 겁니다. – 피터 데링, 픽 디자인 CEO
아마존의 갑질을 풍자한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460만 번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영상이 업로드된 지 몇 시간도 안 돼 아마존은 제품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에 관한 마크업의 질문에 아마존은 디자인의 저작권을 침해한 적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마크업은 아마존이 ‘밀어주는’ 브랜드를 솎아내는 일이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우선 아마존이 자사와 관련 있는 브랜드 목록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습니다. 마크업 편집국의 기자, 데이터 과학자들이 함께 아마존 웹사이트에서 여러 필터를 써보고, 미국 특허청의 기록을 샅샅이 뒤졌으며, 아마존 베스트셀러 목록도 빠짐없이 찾아 비교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놓친 브랜드가 있을 거라고 마크업은 말했습니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전문가들이 품을 들여도 쉽게 알아낼 수 없는 복잡한 관계를 일반 소비자들이 알아차리기는 불가능합니다. 확실한 건 아마존이 ‘밀어주는’ 제품과 브랜드를 명확히 표시하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남아 있는 겁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독자 여러분도 직접 한 번 풀어보시죠. 마크업이 독자들에게 간단한 퀴즈를 냈습니다. 다음 제품 가운데 아마존이 소유한 브랜드 제품이거나 아마존에서만 살 수 있는 제품, 즉 아마존의 “우리 브랜드” 제품이 어떤 건지 맞혀 보세요.
정답은? 9개 전부 다입니다.
아마존 베이직스처럼 아마존의 브랜드라는 게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마존이 자신들이 ‘밀어주는’ 브랜드임을 명확히 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검색결과 상위에 나오는 물건들이 품질이 좋거나 가성비가 뛰어나서, 또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사서 그런 거로 생각하고 구매 버튼을 누릅니다.
대형 마트나 소매점들도 자체 브랜드 제품을 만들어 팝니다. 우리도 이마트나 홈플러스 등 대형 마트에 가면 자체 브랜드 제품들을 볼 수 있죠. 문제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제품을 노출하는 과정에선 플랫폼 사업자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선 소비자가 매대에 진열해놓은 물건을 다 볼 수 있습니다. 눈에 좀 더 잘 띄느냐 구석에 있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소비자의 시야에 여러 제품이 다 들어오죠. 그런데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마음만 먹으면 특정 제품만 전폭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 빌 배어
마크업의 기사를 종합해보면 이렇습니다. 개인사업자나 중소 업체가 아마존 마켓플레이스에서 잘 팔리는 제품을 팔다 보면 반드시 아마존의 레이더에 걸리고, 아마존이 ‘밀어주는’ 브랜드 제품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보통은 한정된 자원으로 엄청난 광고비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광고비를 내지 않으면 검색결과에서 밀려나게 되고, 매출과 영업이익은 계속 줄어듭니다. 수지가 맞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는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아마존이 인수 의사를 밝히면 헐값에라도 아마존에 회사를 매각하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습니다.
리나 칸 위원장은 플랫폼 사업자가 독점 권력을 이렇게 활용하는 건 시장경제의 근간인 경쟁의 씨를 말리는 행위이므로,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미국 하원에서는 집권 민주당의 규제 기조가 반영된 반독점 패키지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했습니다. 이 법안의 내용과 리나 칸 위원장의 관련 발언, 국내의 플랫폼 규제 논의에서 참고해야 할 교훈 등을 정리해 아메리카노 다음 에피소드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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