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너졌던 경제가 회복하는 양상은 국가별로, 지역별로, 또 산업이나 분야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재빨리 백신을 보급, 접종한 덕분에 경제도 덩달아 빠르게 정상 궤도에 진입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백신 접종률이 좀처럼 오르지 않아 고생인 나라도 많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또 팬데믹 이후 수요가 몰리는 분야도 있고, 반대로 수요가 뚝 끊겨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업종도 있습니다. 그동안 잘 눈에 띄지 않았던 또 한 가지 차이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경제 지표들이 회복세로 돌아선 가운데, 주요 도시들에서는 여전히 회복의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겁니다.
벌써 오래전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사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만 해도 도시의 앞날은 더없이 밝아 보였습니다. 면적만 놓고 보면 얼마 되지 않는 도시라는 좁은 공간에 인류의 경제적, 문화적 자본이 온통 집중되고 있었죠. 2000년에 런던 도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런던 교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보다 급여를 두 배 정도 더 받았습니다. 2019년이 되면 이 차이는 세 배로 벌어집니다. 같은 기간 시드니 도심에선 도심 바깥 지역보다 일자리가 40%나 더 많이 생겨났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는 2011년에 도시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세상을 그린 책을 썼습니다. 책 제목은 “도시의 승리(Triumph of the City)”였습니다.
글레이저는 최근 데이비드 커틀러(David Cutler)와 함께 쓴 책을 새로 펴냈습니다. 그런데 제목부터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도시는 살아남을까(Survival of the City)”입니다. 팬데믹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도시를 등지고 떠났습니다. 다른 사람과 접촉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도시는 전염병이 돌 때 머물 만한 곳이 아니었죠. 처음에는 바이러스가 잦아들면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 같았지만, 점점 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아예 정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자연스러운 귀결일까요? 아니면 우려할 만한 일일까요?
도시의 활기는 유동인구를 실시간으로 확인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사람들이 가게나 상점, 대중교통, 회사 사무실 등을 방문한 구글 데이터를 모아 “도시 탈출 지수(exodus index)”를 만들었습니다. 대도시의 유동인구를 시골 등 다른 지역과 비교해본 겁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에선 도시의 유동 인구가 각국의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활동이 많지 않다는 뜻이죠. 식당 예약 서비스인 오픈테이블(OpenTable)에 따르면, 도시의 식당이 다른 데보다 자리가 많아 예약하기가 쉽습니다. 캐나다의 식당 예약률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8% 높아졌지만, 토론토만 놓고 보면 9% 낮아졌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20%만 차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곳곳은 테크의 중심지라기보다 마치 러스트벨트의 쇠락한 도시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도시를 빠져나간 사람들이 먼 시골로 간 건 아닙니다. 올해 초만 해도 늘 한적하던 미국의 시골 곳곳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대부분 일시적인 경향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시골 지역의 유동인구가 늘어났다가 다시 줄지 않은 일본은 예외입니다.)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보면, 인구 이동의 경로가 보입니다. 달군 프라이팬에 계란을 깨서 터뜨리면 노른자가 있는 가운데부터 서서히 퍼지면서 익듯이 도시에 살면서 도심에서 경제 활동, 문화 활동을 하던 사람들은 도심이 아닌, 그러나 도시에서 아주 멀지는 않은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여러 도시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파리 도심은 프랑스의 수도권이라 할 수 있는 일드프랑스 지역 전체에 비하면 유동인구가 적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우편번호 300곳의 집값은 팬데믹 이후 5% 낮아졌습니다. (월세 기준) 그러나 그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301~600번째 우편번호 지역의 집값은 팬데믹 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대기업의 매출이나 실적을 봐도 비슷한 경향이 발견됩니다.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피터 노드스트롬 회장은 실적 발표 때 “교외나 도시 바깥의 매장들에서 도심 매장보다 장사가 잘 됐다”고 말했습니다. 스타벅스도 “붐비는 도심에서 교외로 손님이 몰리는 추세가 나타났고, 매장 내 매출은 줄고 드라이브스루 매출이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경제 활동이 도시를 벗어나 분산되는 데 대한 의견은 다양합니다. 도심에 매장이 있거나 부동산 주인이라면 매출이 줄어든 상황이 물론 달갑지 않을 겁니다.
경제학자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려하는 점은 따로 있습니다. 우선 고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프린스턴대학의 루카스 알토프는 빈 사무실이 늘어나고, 관광객도 없는 썰렁한 도시는 곧 커피숍 점원이나 택시 기사 등 도시 서민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생산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도시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삽니다. 이들이 생각을 주고받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합니다. 글레이저와 커틀러는 새 책에서 온라인 재택근무가 보편화돼 도시가 활력을 잃게 되면, 도시가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요람 역할도 더는 못 하게 될 거라고 우려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걱정할 일일까요? 우선 고용과 관련해서는 상황을 낙관하는 반론이 있습니다. 알토프가 지적한 것처럼 재택근무가 늘어나 도시의 유동인구가 줄면 서민들의 일자리도 실제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기준으로 미국의 주요 도시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40%가 이른바 저숙련 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2020년 들어 급감한 전체 노동시간의 60%는 이들의 일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도시에서 일자리가 줄어든 대신 수요가 높아진 곳에서는 금방 또 일자리가 생겨났습니다. 햄버거 브랜드 셱섁은 당분간 “교외 지역 매장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런던 이코노미스트 사무실 바로 옆에 있던 샌드위치·샐러드 체인 프레따망제 가게는 팬데믹 때 문을 닫았지만, 도심에서 몇 km 떨어진 교외 지역의 지하철역 근처에 새 매장이 열립니다. 영국의 전체 고용률은 줄었지만, 교외 지역 고용은 1년 전보다 2% 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도시보다 교외에서 사람을 구하는 매장, 기업들이 많습니다.
도시의 유동인구가 줄어든다고 전반적인 생산성이 감소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팬데믹 때문에 집안에 갇혀서 지내다 보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생각을 교류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 도시의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 시간의 30%만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하는데, 그렇다고 혁신이 딱히 방해받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무직 노동자들은 온라인 업무 툴을 이용해 얼마든지 일을 처리하고, 직접 만나서 처리해야 할 일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서 무리 없이 해내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 후무가 코로나19 팬데믹 전에 대기업의 콜센터 노동자들을 조사한 결과,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재택근무를 하면 생산성이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지난 불황이나 경기 침체 때와 달리 미국의 생산성은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도시는 어떻게 될까요? 다시 관광객이 찾고, 사람들도 전처럼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면서 유동인구가 많은 복잡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도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시장들은 도시를 살리기 위해 예전처럼 기업을 유치하는 대신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민이 늘어나면 재산세, 소비세를 거둘 수 있고, 삶의 질도 높아질 겁니다. 에딘버러의 조지 스트리트나 런던의 옥스포트 서커스는 곧 차없는 거리로 지정됩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코로나19로 늘어난 식당의 야외 테이블을 영원히 정착시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코로나19로 빈 가게들을 주택으로 개조해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도시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분명 변할 겁니다. 그러나 도시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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