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대통령 시절, 도널드 트럼프는 “비판적 인종 이론(CRT, critical race theory)”을 두고 “미국을 파괴할 유독성의 프로파간다”라고 맹비난한 바 있습니다. 최근 몇 달간,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연방의회와 주의회에서 CRT를 공립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있습니다. CRT가 무엇인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다수가 CRT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CRT란 도대체 무엇이고, 왜 미국 문화전쟁의 전장으로 떠오른 것일까요?
CRT 학파는 1970년대 대학에서 민권운동 시대의 진보가 답보 상황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데릭 벨, 킴벌레 크렌쇼, 패트리샤 윌리엄스 등 일군의 흑인 법학자들은 미국에서 인종에 대한 학계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인종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됩니다. 인종주의는 개인적인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에 구조적으로 단단히 얽혀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인종주의를 뿌리 뽑기 위한 진정한 노력은 제도가 기능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을 포함해야 하며, 단순히 분리를 철폐한다거나 명백히 차별적인 정책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주장이었죠.
이후, CRT는 법학 이론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CRT는 하나의 고정된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사회에서 인종과 인종주의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탐구하는 이론이죠. 학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이견이 존재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추려볼 수는 있습니다. CRT 학파 밖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논지는 “인종”이라는 개념이 과학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대개는 냉소적으로) 사람들에 의해 정의된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데릭 벨이 내세운 주장으로, 인종 평등으로 가는 길은 그것이 권력을 가진 자들(주로 백인)의 이해관계와 부합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죠. 킴벌레 크렌쇼는 ”교차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다수의, 교차하는 집단에 속해있기 때문에 단일 집단의 구성원으로만 파악할 경우에는 사람들 간의 중요한 차이를 놓칠 위험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를테면, 흑인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은 백인 여성이 경험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주장들조차도 CRT 이론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러한 유동성과 더불어, CRT가 특정 강령을 가진 운동이 아니라 사회를 분석하고 파악하기 위한 틀이라는 사실은 오해와 단순화를 부추깁니다. CRT의 영향을 받은 논란의 베스트셀러 서적들(ex. 로빈 디안젤로의 “백인의 허약함 : 백인은 왜 인종차별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가”)이 인기를 끌고 소셜미디어상에서 논쟁이 격화되면서, CRT의 인지도도 높아졌고 좋은 표적이 되었습니다. 일부 정치인과 활동가들은 미국의 제도가 다른 인종의 희생을 발판 삼아 백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CRT의 주장을 “백인들은 본질적으로 인종차별주의자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테드 크루즈(공화, 텍사스) 상원의원은 CRT가 “흰 시트를 둘러쓴 KKK만큼이나 인종차별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죠. 지난 7개월간 우파 성향 케이블 채널인 폭스뉴스가 CRT라는 단어를 언급한 횟수는 진보 성향 경쟁사인 CNN이나 MSMBC의 언급 횟수를 합친 것의 2.5배에 달했습니다.
비판적 인종 이론가들이 단순화와 과장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경향이 있을 수 있고, 집단 간 역학 관계에 집중하는 CRT가 개개인의 행동이라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를 간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박한 인기를 자랑하는 학술 이론이 한 국가를 망가뜨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특정 시각을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해버리겠다는 본능이 국가에는 훨씬 더 큰 위협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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