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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잠잠하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왜 지금 다시 충돌했나?

(뉴욕타임스, Patrick Kings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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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가자지구가 다시 포성으로 뒤덮였습니다.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이 다시 시작됐죠. 한동안 잠잠한 듯하던 가자지구와 예루살렘에서 왜 지금 무력 충돌이 일어난 건지, 지난 한 달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겠습니다.

분쟁의 발단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난 건 4월 13일이었습니다. 양측이 로켓포를 쏘아 올리기 27일 전이죠. 이날 이스라엘 경찰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알아크사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던 무슬림들을 모두 몰아내고는 사원의 마이크 선을 잘라버립니다. 스피커를 통해 사원 밖으로 방송되던 기도는 그렇게 갑자기 끊겼습니다.

이날은 무슬림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중요한 달 라마단의 첫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같은 날이 현충일이었습니다. 현충일에는 보통 이스라엘 대통령이 유대인들의 성지인 통곡의 벽(Western Wall)에서 연설을 하는데, 알아크사 사원은 통곡의 벽 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알아크사 사원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소리 때문에 대통령의 연설이 잘 들리지 않아 현충일 행사를 망칠까 걱정했던 겁니다.

사원 관계자들은 이스라엘 경찰이 사전에 예고 없이 사원에 들이닥쳐 마이크 선을 잘라버렸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스라엘 경찰 측은 이에 관한 물음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이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스라엘 경찰이 무슬림에게 가장 성스러운 장소인 사원에 라마단 첫날에 사실상 무단 침입해 마이크 선을 잘라버린 건 무력 충돌로 이어진 도화선에 불을 지르기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군 사이의 로켓포 공격이 7년 만에 재개됐습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자 145명(가자지구), 12명(이스라엘) 외에도 이스라엘 곳곳에서 민간인들 사이의 충돌이 빚어졌습니다. 이스라엘 군경이 요르단강 서안 지구(West Bank)에서 팔레스타인 시민 11명을 사살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자, 소요 사태는 이스라엘 전역으로 확산했습니다. 레바논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도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 공격을 감행했고, 이스라엘의 행위에 항의하던 레바논 시위대는 잠깐이지만, 이스라엘 국경을 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 하마스 등 관계된 정치 세력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몇 년째 연정 구성에 애를 먹고 있고, 하마스는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확대하려 하고 있으며, 이런 가운데 새로 등장한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는 좀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도 비교적 자명해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반세기 넘도록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점령하고 있고, 국제사회의 규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실상 가자지구를 봉쇄한 채 고사시키는 중이며, 이스라엘 내에서는 아랍인을 향한 차별이 일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의회의 대변인을 지낸 세계 시온주의자 연합의 아브라함 버그 전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농축 우라늄은 이미 완성돼 있었어요. 도화선에 불만 붙으면 언제든 큰일이 날 상황이었는데, 알아크사 사원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그 계기가 된 겁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전투를 벌인 지 7년 됐고,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인의 봉기를 뜻하는 인티파다가 대규모로 일어난 지는 16년이 지났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이스라엘로 옮기겠다고 덜컥 발표했을 때도 큰 소요 사태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깨고 아랍 4개국이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에 나섰을 때도 팔레스타인의 아바스 자치수반은 이를 맹비난했지만,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지는 않았습니다.

두 달 전만 해도 상황이 지금처럼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리라고 내다본 사람은 이스라엘군 안에 거의 없었을 겁니다. 팔레스타인과는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가자지구에서도 걱정할 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안보에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하던 것은 이란이었고, 그다음이 레바논과의 국경 지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요 사태 정도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은 5월 22일 의회 선거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15년 만에 처음 치르는 선거였습니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지난 1년 반 동안 전 세계가 겪은 것처럼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 싸우는 일이 최우선 순위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봉쇄 탓에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업률은 50%에 육박합니다. 하마스는 일종의 선군정치를 표방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맞서 가자지구를 지키기 위해 무장 투쟁을 불사한다는 기조를 이어왔죠. 그러나 최악의 실업률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전쟁보다도 당장 먹고 사는 일, 즉 경제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알아크사 사원에서 일어난 일을 기점으로 분위기는 다시 급변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알아크사 사원 측에 루벤 리블린 대통령이 통곡의 벽 앞에서 현충일 연설을 하는 동안에만 기도 방송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알아크사 사원 측은 이를 거부합니다. 사원 대변인은 이스라엘 측의 요청이 무슬림들에게 대단히 무례한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스라엘은 경찰을 동원해 사원을 급습, 마이크 선을 잘라 버립니다. 무슬림들은 사원과 라마단 자체를 짓밟으려 한 명백한 도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대통령실 대변인은 정부가 마이크 선을 자르는 작전을 수행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가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사이에 이 정도 충돌은 비교적 잦습니다. 평소 같으면 서로 비난하는 성명으로 끝나거나 아예 큰 주목을 받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몇 가지 요인이 더 겹치면서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알아크사 사원에서 일어난 일 외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5월 초로 예정된 이스라엘 법원의 한 사건 최종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 전역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을 내쫓아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고, 집을 새로 짓지 못하도록 건축 허가도 잘 내주지 않는데, 그 결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 쓰러져가는 위험천만한 집에서 살거나 무허가 건축물을 짓고 살다가 언제든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동예루살렘의 셰이크 자라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 여섯 가족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살던 곳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고,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5월로 예정됐던 겁니다.

법원 판결을 앞두고 4월 내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특히 이 사건을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15년 만의 총선을 앞두고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되면서 시위가 빈발하는 상황은 하마스에 여러모로 호재였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갈수록 세력을 불리고 있는 극우파를 달래는 데 몰두하느라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 쌓여가는 불만을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총리뿐 아니라 이스라엘 정치권 전체가 팔레스타인 민심의 변화를 감지하는 데 완전히 실패합니다. 무엇보다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세를 불려 이제는 주류 세력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극우파가 팔레스타인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힘으로 억눌러 입을 다물게 하는 쪽이 상책이라는 기조를 이스라엘 정치권 전체에 심은 결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경찰은 알아크사 사원의 마이크 선을 자른 데 이어 예루살렘 구도심 중앙 광장의 주요 출입구인 다마스쿠스 문을 예고 없이 폐쇄해버립니다. 광장은 라마단 기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해가 질 때 기도를 마치고 나서 모이던 곳입니다. 이스라엘 경찰의 미키 로젠펠트 대변인은 많은 군중이 한데 모이면 폭력 사태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광장을 폐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무슬림에게 라마단은 금욕을 통해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는 평화의 달이기도 합니다. 이런 라마단 중에 무슬림을 잠재적인 폭력분자로 취급한 거나 다름없는 이스라엘 경찰의 조치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또 한 번 모욕을 느꼈습니다. 여기에 길게 보면 수천 년 동안 써온 공공의 광장에서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몰아내려 한다는 데 생각이 이르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더욱 분노했습니다. 광장을 평화롭게 이용하려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과 이스라엘 경찰 사이에 매일 밤 몸싸움이 벌어졌고, 많은 젊은이가 체포됐습니다.

동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국적이 없습니다. 이곳은 1967년에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일으킨 전쟁에서 이긴 뒤 강제로 병합해 점유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여기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당시 이스라엘 국적을 신청하는 건 전쟁과 예루살렘 점유를 정당하게 인정해주는 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국적이 없어서 투표권이 없습니다.

조금씩, 하지만 뚜렷하게 이스라엘 밖으로 쫓겨나고 내몰리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고 투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마스쿠스 문이 폐쇄된 그 주에 몇몇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유대인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 영상이 틱톡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면서 대중에게도 알려집니다. 그러자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고, 특히 극우파 유대인들에게는 좋은 구실을 제공합니다. 곧바로 유대인의 복수가 시작됩니다.

경찰이 알아크사 사원을 급습한 지 여드레 뒤인 4월 21일, 극우 단체 레하바(Lehava)는 “아랍인에게 죽음을”이라는 섬뜩한 구호를 외치며 예루살렘 중심가를 행진합니다. 그러다 지나가는 행인 가운데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을 무차별 폭행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가서 아무 가정에나 들이닥쳐 집기를 부수고 팔레스타인 운전사를 차에서 끌어내 마구 때리는 영상도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국제 사회가 이스라엘 정부에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당장 다마스쿠스 문부터 다시 여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이때까지도 이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3월 총선 이후 연정 구성 문제로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지난 2년 사이 벌써 네 차례나 총선을 치렀습니다. 누구도 압승을 거두지 못한 탓에 네타냐후 총리가 과반 의석을 확보해 연정을 구성하려면 극우 정치인들의 지지가 꼭 필요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레하바의 변호사로 일했던 이타마르 벤 지브리 의원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충성하지 않는 아랍인들은 전부 다 이스라엘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는 벤 지브리 의원은 자택 거실에 유대인 극단주의자 바루크 골드스타인의 초상화를 걸어놓은 사람입니다. 골드스타인은 1994년 헤브론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을 29명이나 살해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가 벤 지브리 같은 극우 인사들의 지지를 얻는 데 몰두하는 사이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내재한 갈등이 고조되고 격화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천 년간 살던 땅을 빼앗아 건국된 나라입니다. 갈등의 불씨야 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장기 집권하는 동안 이 문제를 너무 외면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요구를 무조건 억누르기만 한 나머지 이제는 한 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전면전으로 치닫게 될 거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이번 일은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건지도 모릅니다.

4월 25일, 이스라엘 정부는 다마스쿠스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악화일로로 치닫습니다. 우선 셰이크 자라의 여섯 가족의 축출에 반대하는 시위의 규모가 계속 커졌습니다. 셰이크 자라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해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경찰 측은 시위대가 먼저 경찰을 공격해 방어 차원에서 시위를 진압했다고 말했지만, 공개된 영상을 보면 경찰이 먼저 폭력을 유도한 경우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셰이크 자라의 가족이 처한 운명에 자신의 처지를 투영했습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끝났지만, 그 순간 팔레스타인 민족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됐습니다. 레바논에 사는 팔레스타인 시인 제한 세이소의 말처럼 “모든 팔레스타인 민족이 디아스포라를 겪는 만큼 (셰이크 자라의 가족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스라엘 법에 따라 모든 유대인은 1948년 전에 유대인이 소유한 적이 있는 동예루살렘의 땅은 그 소유권을 유대인에게 인정해줬습니다. 반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 집이어도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집을 잃고 쫓겨나는 일이 특히 더욱 슬프고 두려운 일입니다.

4월 29일, 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수반이 15년 만에 치를 예정이던 총선을 연기합니다. 여당에 불리하다는 판단 끝에 내린 결정이겠지만, 어쨌든 아바스 수반은 이 결정으로 위신이 더 떨어졌습니다. 반대로 하마스에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자신들이 예루살렘을 지키는 수호자이자 팔레스타인을 이끌 정치 세력임을 입증할 기회가 온 겁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엿새 전인 5월 4일, 하마스의 군 책임자 무하메드 데이프가 무척 이례적으로 공개 성명을 발표합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셰이크 자라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공격을 당장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때가지만 해도 전쟁이 임박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가시 돋친 말이야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양측이니까요. 그러나 이어 도화선에 마지막으로 불을 붙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5월 7일, 이스라엘 경찰이 알아크사 사원을 다시 한번 급습한 겁니다. 밤 8시가 넘고 어둠이 내린 뒤 사원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최루탄과 섬광 수류탄, 고무탄을 쏘는 진압 작전을 폈습니다. 시위대도 돌을 비롯해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고, 수 시간에 걸친 소요 끝에 수백 명이 다쳤습니다.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는지를 두고는 이번에도 양측의 말이 정확히 엇갈렸습니다. 누가 시작했건 간에 이날은 라마단의 마지막 금요일이었습니다. 이런 날 이스라엘 경찰이 섬광 수류탄과 고무탄을 사원의 기도실에서 마구 쏴댄 겁니다. 무슬림에겐 또 한 번 치욕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이어 5월 10일은 셰이크 자라의 여섯 가족에 관한 법원의 마지막 심리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날로 기리는 국경일이었습니다. 바로 1967년 전쟁에서 승리해 동예루살렘을 병합한 걸 축하하는 날이었죠.

유대인 민족주의자들은 이날 보통 예루살렘 구 도심을 비롯해 무슬림이 모여 사는 구역을 행진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또 다른 성지인 성전산(Temple Mount)를 방문하려 하죠.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곳이 성전산입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여러 사건이 한데 얽히고 꼬여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판단을 그제야 합니다. 황급히 긴장을 낮춰보려 몇몇 조치를 취합니다. 셰이크 자라 가족의 법원 심리를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10일 아침에 경찰이 아크사 사원을 또 쳐들어갔습니다. 경찰이나 유대인 극우주의자들의 침입에 대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원 안에 돌을 쌓아뒀는데, 이스라엘 경찰은 물리력을 동원해 돌을 치우려 한 겁니다. 사흘 만에 사원이 또 짓밟혔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막판에 뒤늦은 조치를 하나 더 합니다. 예루살렘의 날 행진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무슬림이 많이 사는 지역은 지나지 못하도록 행진 경로를 바꾼 거죠.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늦어도 너무 늦은 조치였습니다. 이미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근방에 사는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린 뒤였습니다.

10일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 로켓포를 쏘며 7년 만에 다시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ingpp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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