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gory Mankiw 블로그
* 옮긴이: 이 글은 민주당이 대선 후보를 정하기 전인 작년 10월에 올라온 글입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워렌, 버니 샌더스, 앤드루 양 등은 경선에 나설 후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경선은 지난 3월 코로나19 때문에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조 바이든을 제외한 유력 후보들이 모두 사퇴하면서 오는 8월 17일부터 나흘간 진행되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조 바이든을 대통령 후보로 정식 추대할 예정입니다.
먼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바로, 부자들이 다 똑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불평등이 매우 큰, 그래서 어떤 정치 집단은 부자를 악인으로 묘사하는, 그리고 부의 재분배를 위한 다양한 정책이 제시되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 짧은 에세이에서 나는 우리가 재분배를 얼마나,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이 질문은 훨씬 더 어려운 질문이며, 내가 잘 아는 경제학이 아닌 정치철학의 문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나는 일단 재분배를 지금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면, 여러 방법 중 어떤 방법이 더 나은지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 방법들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부자들이라고 다 똑같지 않다는 가정이 필요합니다.
다음 두 대기업의 CEO를 생각해 봅시다. 두 사람의 연봉은 모두 1천만 달러(약 100억 원)입니다. 연 수입으로 볼 때 이들은 상위 0.01% 정도일 겁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연봉 외에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방탕한 샘이라고 부를 첫 번째 CEO는 버는 돈을 삶을 즐기는 데 아낌없이 씁니다. 비싼 와인을 마시고, 페라리를 몰며, 전용기를 타고 휴가를 갑니다. 그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에 거액을 기부하며, 언젠가 그들이 자신에게 외국 대사 자리 하나쯤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혹은 자신이 직접 대통령에 출마해 상당한 돈을 쓰기도 합니다.
검소한 프랭크라는 다른 CEO는 수입은 샘과 비슷하지만, 돈에 대한 생각은 다릅니다. 그는 수수한 삶을 살며 돈을 모읍니다.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는 데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그는 자신의 돈으로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의 성공적인 스타트업에 투자합니다. 그는 얼마간의 재산을 아이들, 손주들, 친척들에게 남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재산은 자신이 졸업한 학교에 기부해 학비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생각입니다.
자 이제 생각해 봅시다. 누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까요? 방탕한 샘일까요? 아니면 검소한 프랭크일까요?
이 두 사람에게 같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들의 수입이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에 정부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검소한 프랭크보다 방탕한 샘에게 세금을 더 많이 매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구세(Pigouvian Tax)가 이런 논리에서 나온 세금입니다. 검소한 프랭크의 행동은 그의 일가와 장학생들 모두에게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만듭니다. 그리고 사회의 자본을 늘려 노동 생산성과 실질 임금을 높입니다. 재분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러한 금전적 외부효과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검소한 프랭크가 방탕한 샘보다 세금을 더 내게 되는 제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당 경선 후보 엘리자베스 워렌과 버니 샌더스가 주장하는 부유세가 그렇습니다. 두 후보가 주장하는 부유세가 도입되면, 검소한 프랭크는 방탕한 샘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근검절약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부를 재분배하는 더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 또 다른 경선 후보인 기업가 앤드루 양이 주장하는 정책이 그렇습니다. 양은 부가가치세(VAT)를 신설하고 그 재원으로 미국의 모든 성인에게 매달 1천 달러 (약 100만원)의 보편적 기본소득을 주자고 말합니다.
양 후보가 자유 배당(freedom dividend)이라고 부른 정책은 단순합니다. 부가가치세란 기본적으로 판매세(sales tax)이며,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세금을 걷는 방법으로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유배당 또한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기에 매우 쉽게 이행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개념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분명 과감한 주장입니다. 물론 이 주장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비판자들이 몇 가지를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회안전망을 위해 다음의 두 가지 정책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논의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두 정책 모두 예산이 편성되어 있다고 가정합니다.)
A. 정밀한 소득 조사를 통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월 $1,000의 지원금을 주는 것입니다. 다른 수입이 없는 사람은 이 돈을 다 받습니다. 그리고 수입에 따라 받는 금액은 줄어듭니다. 곧, 자신의 다른 수입의 20%만큼 줄어듭니다. 그리고 소득이 6만달러를 초과하는 사람들은 초과분의 20%에 해당하는 누진소득세를 내야 합니다.
B. 모든 사람에게 $1,000의 보편적 기본소득을 주는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20%의 단일 소득세를 매기는 방법입니다.
A, B의 두 가지 사회안전망 중 어느 쪽이 더 나아 보이나요?
내가 이 질문을 하버드 학부생들에게 던지면, 90% 이상의 학생들이 A가 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A는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지원금을 제공한다. 따라서 세금을 많이 걷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소득이 높은 사람들에게만 세금을 걷는다. B는 말도 안 되는 방법이다. 왜 빌 게이츠나 제프 베조스와 같은 사람이 지원금을 받아야 하나? 그들에게 지원금을 주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세금을 더 내게 해야 한다.
얼핏 듣기에 이 주장은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A와 B는 동일한 정책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A와 B 정책하에서 각자가 받는 세금을 뗀 금액을 생각해 봅시다. 수입이 없는 사람은 A 정책하에서건 B 정책하에서건 1년에 $12,000를 받습니다. 연 수입이 $60,000인 사람의 수입은 두 정책하에서 모두 연 $60,000의 소득을 올립니다. 연 소득이 $160,000 인 사람은 두 정책하에서 모두 $20,000 의 세금을 내야 합니다. 곧, 두 정책하에서 모든 사람은 20%라는 실질 한계세율의 세금을 냅니다.
즉, 두 정책하에서 사람들의 후생(welfare)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따라서 정책 A와 정책 B의 차이는 이를 어떤 관점에서 시행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위의 예는 두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첫째, A 정책이 더 그럴듯해 보였지만, 실은 A와 B가 동일한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정책 B 또한 그럴 듯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편적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정책이 동일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단계를 넘지 못합니다. 만약 두 정책이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이해했다면, 정책 B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보편적 기본소득과 단일 소득세는 정밀한 소득조사와 누진세에 비해 행정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두 번째 교훈은 세금과 지원금을 구분할 때 우리는 아주 쉽게 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책 A가 더 낮은 세율에 더 진보적인 세금 제도이며, 더 진보적인 지원금 제도라는 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정책이 동일한 정책이라는 사실이 바뀌나요? 곧, 세금 제도와 지원금은 동시에 고려해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수많은 논문이나 언론의 기사에서 세금 제도를 이야기할 때 지원금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를 한쪽만 보여주면, 이는 불완전하며 또 누군가를 속이게 됩니다. 불완전한 기사는 사람들이 A 정책을 펼치는 사회가 B 정책의 사회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 것처럼 두 정책은 동일하며, 따라서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정책 A와 B가 모두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 출판한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에서 제안한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40년 전 학생 때 이 책을 읽었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1968년, 제임스 토빈, 폴 사무엘슨, 피터 다이아몬드, 마틴 펠드스타인 등의 저명한 경제학자를 포함한 1천 명의 경제학자가 이 정책을 지지했습니다. 앤드루 양의 제안은 소득이 아닌 소비에 세금을 물려, 저축과 투자를 꺼리게 만들지 않기 때문에 프리드먼의 제안보다 더 나은 방식입니다.
경제학자가 1천 명이나 서명했는데, 그 주장이 틀렸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부가가치세, 혹은 탄소세처럼 효율적인 세제를 통한 보편적 기본소득은 충분히 고려할 만한 사회 안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날의 정치적 환경에서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리라 예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얻습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이런 정책이 시행될 날이 올지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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