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오늘은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났던 날입니다. 펜실베니아주 쓰리마일섬(Three Mile Island)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2호기의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노심용융(meltdown) 현상이 일어났죠. 원자로의 열을 식혀줄 냉각수가 제때 공급되지 않아 일어난 사고는 기계 결함, 장비 노후화에 사람의 실수가 겹쳐져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쓰리마일섬 사고로 미국 전역에서 원자력발전과 핵연료에 대한 반대 여론이 급등했고, 원자력 발전의 지위는 미국 내에서 줄곧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당시 사고가 났던 2호기는 계속 폐쇄된 가운데, 사고 후 다시 가동을 재개했던 1호기마저 오는 9월 채산성 악화로 가동을 중단할 예정입니다.
재생에너지, 태양에너지를 비롯한 청정 에너지원의 등장에 셰일가스 등 발전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새로운 발전 방법이 가능해지면서 원자력 발전이 그대로 사양 산업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가 되면서 원자력발전소를 당분간 더 가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습니다. 환경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에 운영 비용도 만만치 않아 애물단지 취급을 받다가 반대로 큰 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고 운영비도 여전히 상용화까지 갈 길이 먼 청정에너지보다 싸다는 장점이 부각된 겁니다.
1979년 3월 28일 수요일 새벽 4시경에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폭발 같은 사고가 일어난 것이 아닌 만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기까지 몇 일이 걸렸습니다. 펜실베니아주 정부도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죠. 사고가 나고 이틀이 지나서야 딕 손버그 주지사가 임산부와 어린이들은 발전소에서 멀리 피신하는 게 좋겠다고 권고했을 정도니, 내부적으로도 사고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입니다.
주지사의 발언 이후 주말 동안 많은 사람이 부랴부랴 몸을 피했습니다. 학교와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급히 몸을 피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현금을 인출해가는 탓에 은행 금고에는 돈이 바닥났습니다.
다행히 위험한 수준의 방사능이 유출되는 대형 사고는 아닌 것으로 판명됐고, 1985년 쓰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는 다시 운전을 시작합니다. 물론 사고가 났던 2호기의 손상된 원자로는 계속 안전하게 폐쇄해둔 채였습니다. 사고가 났을 때 신분증과 귀중품만 챙겨서 급히 몸을 피했다가 열흘 뒤에 집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같은 곳에 살고 있는 조이스 코라디 씨는 아직도 가능한 한 원자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길을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웃에 무시무시한 거인과 함께 사는 느낌이랄까요? 그 거인은 어디 가지 않고 늘 저기 있으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사는 거죠. 원래 인생이 불편한 것과도 필요하면 타협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요.
무시무시한 거인을 쓰러트린 건 다른 에너지원, 발전 방식과의 경쟁이었습니다. 값싼 천연가스의 등장에 친환경 에너지원까지 개발되면서 원자력 발전의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았죠.
현재 쓰리마일 섬의 발전소 1호기를 운영하는 회사 엑셀론(Exelon)은 지난 몇 년간 발전소 운영으로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며 올가을 1호기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상태입니다. 아직 발전소 운영권이 만료되기까지 15년이나 남았지만, 채산성 문제를 타개하지 못하는 한 이윤을 내야 하는 기업에 발전소 운영을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엑셀론 측은 주 정부가 적당한 선에서 개입해 발전소를 계속 운영할 수 있게 지원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것이 전 지구적인 관심사인 상황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 발전을 대안 없이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손쉬운 기후변화 대책은 전국의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가동하는 것입니다.”
엑셀론의 규제 담당 부사장 데이비드 페인의 말입니다.
현재 미국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입니다. 하지만 미국 전역의 원자력발전소 가운데 1/3은 적자를 면치 못하거나 채산성 문제로 가동을 중단할 예정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새로 건설 중인 원자력발전소는 조지아주에 있는 발전소 한 기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이 발전소도 완공 예정 기한을 훌쩍 넘기며 건설 비용이 수십억 달러나 더 드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릭 페리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주 건설 현장을 방문해 정부가 37억 달러를 긴급 대출해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하며 우려를 잠재워야 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생산하는 탄소 배출 없는 전력 가운데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다섯 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93%에 달합니다. 천연자원 보호위원회의 선임변호사 마크 지비스트는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성급하게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했다가는 온실가스 배출만 급증할 뿐이라고 경고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무턱대고 원자력발전소를 닫는다면 현실적으로 이를 천연가스 발전으로 대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화석연료보다 깨끗한 청정 에너지원을 이용한 발전은 상용화까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가동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습니다. 로비도 활발해졌죠. 뉴욕, 일리노이, 뉴저지, 코네티컷을 비롯한 많은 주 정부가 원자력발전소에 보조금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며 가동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 운영을 지지하는 이들은 원자력발전소는 한 번 문을 닫으면 돌이킬 수 없다며, 탄소 배출 없는 발전 방식이 정착될 때까지는 원자력발전소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쓰리마일 섬 외에 피츠버그 근교에 있는 비버밸리 원자력발전소도 채산성 때문에 오는 2021년 가동을 중단할 예정인데, 펜실베니아 주의회의 토마스 메하피 의원(공화당)은 현재 주 정부 차원에서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입니다.
메하피 의원은 “지금 시점에서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는 것은 그동안 풍력에너지, 태양에너지에 투자해온 시간과 돈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메하피 의원의 법안에 반대하는 세력도 물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운영을 중단하면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천연가스 업계와 주 정부의 보조금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은퇴한 연금생활자들을 대변하는 AARP 같은 단체가 대표적입니다.
펜실베니아주 의회 내 초당적 의원모임인 원자력에너지 코커스는 보고서를 내고 탄소 배출권에 적당한 가격을 책정해 돈을 거둔 뒤 이를 원자력발전소에 지원하는 것이 장기적인 해법이 될 거라고 제안했습니다.
쓰리마일 섬 근처에 사는 코라디 씨를 비롯한 주민들은 물론 원자력발전소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우선 반갑습니다. 하지만 발전 후 나오는 핵폐기물을 어떻게 안전하게 처리할 것인지에 관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두지 않은 상태라서 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해도 폐기물은 계속 발전소 안에 보관될 예정입니다. 코라디 씨도 그 문제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뿐이라고 말합니다.
“40년째 근심거리가 해결되지 않은 거죠. 가동을 멈춰 더 이상 전력을 생산하지 않는다고 해도 핵폐기물은 그대로 있는데, 뾰족한 해법은 없는 상태라니 안타깝습니다.”
(NPR, Marie Cus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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