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과학자들이 달걀이 부화하기 전에 병아리의 성별을 확인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을 적용해 생산한 달걀이 처음으로 베를린에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알을 낳을 수 없는 수컷 병아리는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대개 도살됐는데, 이렇게 죽는 병아리가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십억 마리에 달합니다. 새로 개발된 기술 덕분에 이른바 ‘병아리 잔혹사’가 끝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허까지 받은 셀렉트(Seleggt)라는 기술은 암탉이 알을 낳은 지 9일이 지난 뒤에 병아리의 성별을 판별할 수 있습니다. 수컷 병아리가 든 알은 곧바로 동물 사료로 쓰고, 암컷 병아리가 든 달걀만 21일의 부화 과정을 거쳐 깨어나게 됩니다.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 성별을 가려낼 수 있다면, 갓 부화한 병아리들을 몰살시키는 잔혹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셀렉트의 루드거 브렐로 박사가 한 말입니다. 브렐로 박사는 독일 슈퍼마켓 체인 레베(Rewe) 그룹과 함께 지난 4년간 연구를 이끌며 ‘도살 없는 달걀(no-kill egg)’을 개발하는 데 앞장서 왔습니다. 브렐로 박사는 전 세계적으로 병아리를 몰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경쟁이 치열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누가 지고 누가 이기는 종류의 경쟁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자체로 다들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경쟁”이라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부화하자마자 도살되는 수컷 병아리는 40~60억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컷 병아리를 죽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알을 낳지 못하니 경제적인 가치가 별로 없어서입니다. 병아리들은 가스실에서 질식사하거나 산 채로 다른 동물의 먹이로 던져지기도 하고, 분쇄기에 갈아 파충류의 사료를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수많은 가축을 태어나자마자 살처분하는 건 오늘날 가금류 축산업 전반에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무척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사람이 닭을 기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닭고기를 얻거나 달걀을 얻기 위해서인데, 달걀을 낳지도 못하고 고기로 먹을 만큼 키우려면 (자라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 사료값 등이 더 드는 수탉들은 쓸모없는 개체로 인식돼 버려지는 겁니다.
병아리를 대대적으로 살처분하는 관행은 최근 들어 특히 여러 차례 문제가 됐는데, 지난 2015년에 이스라엘의 한 동물보호단체 운동가가 갓 알을 깨고 나온 수탉 병아리들을 갈아 넣는 분쇄기 가동을 강제로 멈추고 분쇄기를 다시 켜려고 동원된 경찰과 공권력에 맞서 부당함을 호소한 동영상은 많은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소비자들은 좀 더 인간적인 사육과 축산업을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브렐로 박사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알무스 아인스파니어 교수를 만나 이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냈습니다. 아인스파니어 교수는 사람이 임신 테스트를 할 때와 비슷하게 암컷 병아리에게서만 나오는 호르몬의 양을 달걀에서 측정해 성별을 화학적으로 구분, 표시하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부화 후 아흐레가 지난 뒤 달걀에서 나오는 물을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시험지에 적셔보면 수컷 병아리가 든 달걀은 파란색으로, 암컷 병아리가 든 달걀은 하얀색으로 변했습니다. 실험의 정확도는 98.5%로 매우 높았습니다.
브렐로 박사는 이어 실제 양계장에서 매일 활용할 수 있도록 이 실험을 정확하면서도 쉽게 진행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해치테크(HatchTech)라는 회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아인스파니어 교수의 기술을 알아서 실험한 뒤 결과를 알려주는 기계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계는 사용하기 쉽고 위생적이어야 하며 유연하면서도 검사 결과의 정확도가 높아야 합니다. 특히 달걀이 부화기 밖에 두 시간 이상 나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빨리 검사를 진행해 수컷 병아리가 든 달걀만 추려낼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하면 빨리 달걀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검사에 쓸 물을 받아내느냐였습니다. 바늘을 쓸 수 있지만, 달걀이 부서질 수 있고 위생적으로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브렐로 박사는 레이저를 쏘아 달걀 껍데기에 0.3mm 정도 구멍을 냅니다. 그럼 자연히 공기의 압력이 가해져 달걀의 물이 한 방울 그 구멍으로 떨어집니다. 아주 적은 양이긴 하지만 검사에 쓰기에는 충분하고, 무엇보다 달걀을 건드리지도 않으면서 몇 초 안에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거의 실패나 오류가 없는 방법입니다. 이제 독일에서는 병아리의 성별을 미리 알 수 있어 갓 태어난 (수컷) 병아리를 도살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셀렉트는 성별 검사를 진행해 수컷 병아리를 도살하지 않고 달걀 단계에서 분류해낸 뒤 생산한 달걀을 지난달 베를린의 슈퍼마켓에 처음으로 납품했습니다. 해당 달걀에는 닭을 존중한다는 뜻을 담아 리스펙트(respeggt)라는 상표를 붙였습니다.
레베 그룹은 내년에 독일 전역의 가게에 이 달걀을 유통할 계획이고, 셀렉트는 오는 2020년부터 원하는 양계장에 달걀 성별 검사 기술을 보급할 수 있도록 검사 과정을 표준화할 계획입니다. 셀렉트는 리스펙트 달걀을 판매하는 슈퍼마켓에 한 판 당 몇십 원 정도를 추가 비용으로 받아 개발비와 검사비를 충당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체로 셀렉트 검사 기술을 보급할 계획입니다.
셀렉트 프로젝트를 후원하기도 한 독일 식품 농업부의 율리아 클로크너 장관은 “적어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독일이 선구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술이 양계장의 달걀 부화 과정에 접목되고 나면 이제는 병아리를 잔혹하게 도살할 이유가 없어질 겁니다. 그때는 관행처럼 병아리를 도살하는 행위를 본격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할 겁니다.”
(가디언, Josie Le Bl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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