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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살츠 특집 4] 시대가 변하면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가르는 기준도 바뀔까요?

시대가 바뀌면 형편없던 예술품이 걸작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형편없는 예술은 언제 봐도 형편없다. 뒤늦게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예술품은 원래 처음부터 훌륭한 작품이었는데 과거에는 그저 우리가 이를 알아보는 눈이 없다가 뒤늦게 그 가치를 깨달았을 확률이 높다. 시간이 예술의 가치를 변화시키는 예들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예술품을 두고 좋다거나 나쁘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대신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자. 놀라움, 힘, 고정관념의 타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함, 아름다움과 추함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토대로 추구하는 독창성, 다급한 분초를 그려내다가도 반대로 시간을 끌어안는 넓은 품. 그 밖에도 예술에 가치를 더하는 것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실 과거의 예술 작품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는 어두운 표정이나 얼굴, 폭력적인 묘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눈에 형편없는 작품으로 비치는 것들은 ‘나쁜 예술작품’일까? 이 문제를 고민할 때마다 나는 1986년 처음 전시된 로버트 롱고(Roberto Longo)의 작품 “야 이 좀비들아: 신 앞에서 진실을(All You Zombies: Truth Before God)”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나는 첫눈에 그 조각품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다.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여러모로 민망해지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로테스크하게 생긴 거대한 악마가 짙은 붉은색 벨벳으로 감싼 상자 위에 비틀거리며 서 있다. 기타, 총알, 장난감 등 500여 가지 재료로 만든 악마는 사무라이가 쓸 법한 투구를 걸치고 어깨춤부터 허리까지 총탄띠를 찼다. 투구 위로는 뿔이 나 있으며, 외계인처럼 쩍 벌린 징그러운 입이 두 개 있고, 눈이 있어야 할 곳에는 총이 있다. 팔 아래는 여성처럼 가슴이 봉긋 솟아있지만, 반대로 허리 부근에는 기다란 막대통 같은 것을 비집고 나온 남성의 성기 같은 것이 축 늘어져 있다. 느닷없이 가슴팍에서 비져나온 손은 온갖 소름과 곰보 자국으로 얼룩져 있고, 누더기가 되다시피 한 깃발을 들고 있는데, 한쪽 면은 성조기, 다른 쪽은 공산당을 상징하는 노동자의 망치와 농민의 낫이 그려져 있다.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남성성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때만 해도 좀비라는 것은 상상 속에서조차 좀처럼 등장하지 않은 낯선 대상이었다. 롱고의 좀비 작품을 볼 수 있던 건 어느 시골에서 딱 한 번이었다. 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나 갑자기 그때 인정받지 못한 좀비 작품이 뉴욕 휘트니 미술관 8층 테라스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작품을 기증한 것은 예술라 알렉스 카츠(Alex Katz)였는데, 카츠가 소유한 재단이 예전에 작품을 사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벌써 30년도 더 전에 만든 조각 작품이라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의 반응에서 오늘날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롱고가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초의 일이다. 회화 쪽에서 줄리안 슈나벨, 안셀름 키퍼, 프란세스코 클레멘테를 비롯해 이른바 픽처스 세대가 떠오르던 시기였다. 롱고의 작품은 신디 셔먼, 루이즈 롤러, 로리 시몬스 등과 함께 전시됐다. 롱고는 픽처스 세대인 동시에 신표현주의 진영에도 속했는데, 먼저 픽처스 세대가 탄생한 그 유명한 1977년의 “픽처스” 전시회에 출품했고, 대규모 작품을 열정적으로 조각하고 만든 덕분에 회화 위주의 예술가들과도 잘 어울렸다. 물론 예술 안에서 사조를 나누고 경계를 긋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는 하다.

롱고는 1981년에 한껏 뒤틀린 자세를 잡은 배우들을 그린 거대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배우들의 사진을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인 다이앤 셰아에게 보낸 뒤 셰아가 사진을 확대해 커다란 종이에 밑그림으로 그리고, 그 위에 롱고가 새까만 흑연으로 마무리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롱고는 예술가이자 작가, 연출가이자 감독이 되었다. 1953년생인 롱고는 36살 때까지 꾸준히 여러 곳을 여행하며 전시를 하기도 했는데, 한 번은 이론 비평가 할 포스터가 카탈로그를 쓰기도 했다. 슈나벨, 살, 셔먼 등 시대를 풍미한 다른 화가와 마찬가지로 롱고도 장편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조니 네모닉”이라는 공상과학소설 기반 액션 스릴러로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았다. 그러나 영화를 제작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는 롱고와 몇몇 화가들은 이미 어딘가 의심을 받으며 영화 관련 업무에서 배제된 뒤였다. 이후 이론 비평가들도 이들에 관해 다시 펜을 들지 않았고, 대신 학계의 검증을 통과한 픽처스 예술 사조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옮겼다. 1980년대 초의 어딘가 낭만적이던 화풍은 점점 더 1980년대 후반부의 모순적이고 냉소적이며, 상품화되고, 또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화풍으로 대체됐다. 제프 쿤스나 피터 홀리 같은 예술가들이 부상했다. 롱고와 그의 부류들은 비주류가 되었다. 롱고는 그럼에도 계속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미국 국회의사당을 거대한 판타지 풍으로 그린 목탄화, 유명한 추상 표현주의 기법으로 그려낸 흑백 팩시밀리 기계 등이 이때 그린 주요 작품이다.

예술 시장이 그동안 1960, 70년대 작품에만 너무 집착했던 데 대한 반성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그저 그동안 간과했던 상품의 가치를 재발견할 때라고 생각했는지 어쨌든 최근 들어 1980년대 작품에 대한 고찰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슈나벨, 살 등은 젊은 예술가들의 추앙을 받고 있으며, 선거 후에는 성인 남성이 벌거벗은 채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에릭 피스츨의 그림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제대로 된 전시회를 연 것도 아닌데 온라인에서 나타난 관심만 해도 대단히 뜨거웠다. 휘트니 미술관에는 실제로 1980년대 작품을 모아둔 전시실이 있다. 당시 미술 사조나 작품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때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는지 생각하면 이 작품들만 모아 전시실을 꾸렸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용기있는 일이었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한다. 그 전시실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롱고의 좀비 작품이 더욱 더 인상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더 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롱고의 조각품에 나타난 지나치게 거칠고 잔인하리만치 강렬한 톤은 대단히 신랄했다. 나와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그는 실제로 미국 언론이 사용하는 언어와 메시지를 작품에 그대로 투영했다고 설명했다.

“남자다움, 남성성과 그 안에 숨은 폭력성을 그대로 상대방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데 썼죠. 실은 미국 언론이 조장하는 폭력성을 그대로 만화화해 사용한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당시에 패전으로 귀결된 베트남에 복수를 해야 한다느니 그런 이야기가 횡행했거든요. 이를 차용한 거죠.”

그는 그러면서 이 조각상의 별명은 “람보의 아이”라고 말했다. 양면에 다른 그림이 그려진 깃발에 관해서는 “그런 역겨운 이념적 편가르기가 1986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 정말 의외”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좀비 작품은 사실 에이즈의 에 자도 입 밖에 내지 않으려는 레이건, 즉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정부를 비판하는 작품이기도 했어요. 선을 그어놓은 뒤 저쪽은 악당이나 격리해야 할 대상이니, 살고 싶으면 이쪽에 남으라고 강요하는 세상이죠. 지금 우리에게도 그닥 낯설지 않죠? 레이건은 사실 할리우드나 TV 예능을 바탕으로 미국이란 나라를 정의해 버린 시초이기도 했어요.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원조가 레이건인 셈이죠. 사람들은 휘트니 미술관 꼭대기층에 있는 괴물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백악관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괴물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잃지 말아야 해요.”

정말 그런 것이 내가 트럼프 시대에 느끼는 위협은 롱고의 좀비 작품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괴기스러움과 끔찍함과 맥이 통한다. 롱고는 포스트모던주의자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쿨하게 지식을 포장거나 형이상학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그는 분노와 우려를 오히려 부풀려서 표현한다. 프랜시스 베이컨류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힘과 폭력을 뻔뻔하리만치 구체화한다.

현재라는 시간은 우리에게 지금 눈 앞의 작품을 과거의 눈으로 보지 말라고 주문한다. 쓸데없이 현학적인 용어, 아는 사람만 아는 말들, 후기 자본주의 같이 정의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말 따위로 포장해 작품을 분석하려 하지도 말라고 한다. 나는 여전히 롱고의 좀비 작품이 메시지를 지나치게 과장했으며, 우선 너무 보기 흉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하게 작품을 만들어냈으며, 우리 시대의 최고 정치 권력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작품이 닮아있기에 중세 시대 퇴마록에나 등장할 만한 대상을 형상화한 작품이 새롭게 조명받을 수 있었다. 롱고의 좀비는 결국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한 채 옴짝달싹 못하고 도태되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좀비는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우리 곁으로 왔다. 심오한 메시지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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