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쓰레기(white trash)”라는 말은 여전히 써도 되는 말로 여겨집니다. 점잖은 자리에서나, 케이블 TV 방송, 잡지 기사 제목에서도 무리 없이 쓰이고 있죠. “뉴 리퍼블릭”지가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쓰레기 아이콘”인가에 대한 기사를 싣기도 했으니까요. 어떤 이유에서든 다른 인종주의적 멸칭에 비해 덜 공격적인 것으로 인식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백인 쓰레기”는 모욕계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 같은 존재입니다. 한 마디로 다양한 집단, 그러니까 백인과 비백인,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 시골에 사는 사람과 종교인,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 모두를 한꺼번에 욕보일 수 있는 단어니까요.
그런데도 이 단어가 별 다른 저항 없이 쓰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시골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백인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2016년 기준, 미국 내 빈곤층에 해당하는 백인은 1700만 명 이상이지만, 정부나 미디어에서 이들의 대표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0214년 기준, 미 의회 의원 절반 이상이 백만장자였죠.)
미디어나 대중문화는 종종 가난한, 또는 가난했던 백인들을 매우 모욕적인 스테레오타입으로 축소시켜 버립니다. 그들은 늘 화가 나 있고, 게으르고, 지저분하며, 과체중에 그을린 피부, 멍청하고, 인종차별주의적이며, 알콜중독에, 입이 거칠고, 백수에, 취향은 촌스럽고, 건강하지 못하며, 폭력적이고, 구시대적이며, 걸핏하면 성경을 들이미는, 교육받지 못한 인간으로 그려지죠. 이런 스테레오타입은 TV와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다른 멸칭들의 경우처럼, 해당 집단이 “백인 쓰레기”라는 단어를 되찾으려는 시도도 계속되어 왔습니다. 백인 쓰레기 문화를 찬양하는 노래와 요리책, 티셔츠가 등장했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백인 쓰레기로 칭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사용하는가와 관계없이, 이 표현은 그 자체로 “백인다움(whiteness)”, 나아가 “흑인다움(blackness)”의 의미를 안 좋은 방향으로 강화시키는 효과를 낳습니다. 백인 쓰레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곧 다른 종류의 백인, 즉 “보통의 백인”들이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셈입니다. 백인 쓰레기의 대척점, 즉 근면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품위있고, 친절하고 선한 보통의 백인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이런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백인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백인이 아니고, 따라서 “백인 쓰레기”라는 이름을 붙여 따로 분류하는 거라고 말이죠.
“생각해보면 ‘백인 쓰레기’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 두 단어를 붙인 표현입니다. ‘백인’은 순수함, 깨끗함, 심지어는 성스러움을 담고 있고, ‘쓰레기’는 불순물, 더러움, 상스러움을 의미하는 단어니까요.” 템플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매트 레이(Matt Wray)의 설명입니다.
레이 교수는 저서 “충분히 백인스럽지 않은: 백인 쓰레기와 백인다움의 경계(Not Quite White: White Trash and the Boundaries of Whiteness)”에서 이와 같은 모순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백인 쓰레기는 그 조재만으로 상징과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경멸과 분노, 역겨움과 같이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백인 쓰레기: 미국 내 계급의 알려지지 않은 400년 역사(White Trash: The 400-Year Untold History of Class in America)”의 저자 낸시 아이젠버그(Nancy Isenberg)는 2016년 대통령 선거 기간에 “정상적 백인다움”과 “병적인 백인다움” 간에 존재해온 긴장감이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말합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언행으로 비난을 살 때, 미디어는 그의 지지자들을 보통의 선량한 백인들과 다른 “백인 쓰레기”로 그려냈다는 것입니다. “백인 쓰레기라는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의 문제는, 이것이 한 집단을 무시하고 일반화할 수 있는 너무 쉬운 방법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출구조사를 통해 백인들이 계층이나 교육 수준을 가리지 않고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점이 드러났지만, 붉은 모자를 쓰고 집회에 참여한,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백인들에게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입혀졌다는게 아이젠버그의 설명입니다. 가난하고,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주의적이니까 무시해도 되는 집단으로 그려졌다는 것이죠.
가난한 백인들이 부유층이나 중산층 백인에 비해 더 인종차별적이라는 인식은 뿌리가 단단합니다. 매트 레이 교수에 따르면 “백인 쓰레기”라는 표현이 처음 기록된 것은 1833년의 일입니다. 메릴랜드주에서 가장 많은 노예를 거느린 노예주의 딸이 흑인 노예와 백인 노예주 사이에는 갈등이 없고, 갈등은 오직 흑인과 “백인 쓰레기”들 사이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한 기록입니다.
이후에도 이 표현이 암시하는 바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표현을 쓰는 백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거예요. ‘이것 봐,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야, 저 아랫동네에 사는 이가 인종차별주의자지. N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쓰고, 남부기를 트럭에 꽂고 다니는 거, 저게 진짜 인종주의라고.'”
“백인 쓰레기”라는 표현에 타격을 입는 것은 가난한 백인들 만이 아닙니다. 당연히 비백인을 에둘러 비하하는 표현이죠. 멸칭이 되기 위해 추가적인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 인종 집단은 백인 뿐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표현이니까요. “흑인 쓰레기”, “히스패닉 쓰레기”, “원주민 쓰레기”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미국사 내내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그 자체로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범죄자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죠.
레이 교수의 말대로 “백인 쓰레기”는 모순적인 표현입니다.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사상에 따르면, “흑인 쓰레기”는 동어 반복이죠. 백인이 아니면 곧 쓰레기라는 백인우월주의가 그대로 녹아있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백인 쓰레기”와 “보통의 비백인” 간의 연결고리 역시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노예제가 존재하던 시절, “백인 쓰레기”는 종종 흑인 노예의 백인 버전으로 쓰였으니까요. 1853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여는 열쇠(A Key to Uncle Tom’s Cabin)”에서 저자 해리엇 비처 스토우는 “백인 쓰레기 사람들”을 “노예보다도 더 야만적이고, 비참하고, 타락한 백인 계층”이라고 묘사하고 있죠. 당시 흑인들에게 인생은 원래 비참하고 야만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따로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었지만, 똑같은 상태가 백인들에게는 비정상적인 예외였던 겁니다.
낸시 아이젠버그는 흑인 노예와 가난한 백인의 연결이 우연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영국이 처음 미국을 식민지화했을 때, 식민지를 굴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죠. 그 노동력은 수 많은 영국 빈곤층 아동들의 노역(indentured servitude) 형태로 제공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노예제의 기반이 되었죠. “미국은 영국이 식민지 기반을 넓히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노동력 착취가 필요했습니다. ‘백인 쓰레기’라는 표현은 그런 역사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말 그대로 ‘쓰레기’, ‘잉여’ 같은 인간들을 신세계에 갖다 버린 것이에요. 구대륙에서 생산성이 없고 게으른 존재취급을 받던 사람들을 신대륙으로 옮겨 온 거죠.”
이 “잉여 인간”들이 처음 유럽에서 미 대륙으로 넘어온 후 많은 세월이 흘렀고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난한 백인들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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