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쓴 아트 마크맨 교수는 오스틴 텍사스대학교 경영대학에서 심리학과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끝도 없이 긴 “해야 할 일 목록(to-do-list)”에 파묻혀 삽니다. 목록 가운데는 물론 중요한 일도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하지 못한 채 남아있는 “할 일”은 볼 때마다 보는 이를 찝찝하게 만들고, 끝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죄책감이나 수치심은 대개 우리가 어떤 일을 잘못 처리했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죄책감은 주로 내가 저지른 어떤 일에 대한 내면의 반응이자 감정이며, 수치심은 특히 내가 잘못한 어떤 행동이 주변에 알려졌을 때 내가 못난 사람처럼 느껴지는 감정의 다른 이름입니다.
우선 이런 감정이 좋은 건지 아닌지부터 따져 봅시다. 영화 <스파이 브릿지(Bridge of Spies)>에서 배우 마크 라이런스는 스파이 루돌프 아벨 역을 연기했습니다. 극 중 아벨에게 누군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아벨은 이렇게 답하죠.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아벨에게 제가 대신 답했다면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다소 뻔한 답을 해줬을 겁니다.
죄책감은 때로 어떤 일을 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죄책감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더 협력하려 하기도 하죠. 또한, 죄책감 덕분에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일에 돌파구가 마련되는 예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적어도 사람들이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참아가며 어떤 일을 끝마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을 끝낸 뒤에도,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거나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건 분명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죄책감에 시달리다 보면 내가 하는 일에 만족도가 낮아질뿐더러 친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해야 하는 시간을 죄책감 때문에 잡아먹게 되니 분명 손해입니다.
수치심은 조금 다릅니다.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끼기 싫어서 일부러 일을 질질 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발견됐죠. 일을 다 끝마치지 못한 데서 오는 수치심은 그 일을 끝마치는 데 도움이 되는 원동력을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계속 대책 없이 일을 미루고 또 미루게 만들곤 하죠.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비롯되는 부정적인 효과를 피하고 차단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먼저 너무 생각이 많은 건 안 좋습니다. 즉, 나 자신을 괴롭힐 만큼 자꾸 죄책감과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건 결국 내가 이제 안 해도 되는 그 생각을 자꾸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걱정을 떨쳐내지 못하다 보니 그 걱정이 계속해서 죄책감과 수치심을 더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는 거죠. 이런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끊고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몇 가지 정리해 봤습니다.
나를 아끼기: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면 수치심에서 오는 부정적인 효과를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아니라 나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누군가에게 응원과 함께 조언을 해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어 어쩌다 보니 몇 과목에서 꽤 많이 뒤처진 친구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급할수록 돌아가고 차근차근 하나씩 하면 된다고 말해주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렇게 따뜻한 조언을 나 자신에게도 건넬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룬 것을 칭찬해주기: 가브리엘 외팅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내가 이룬 것과 이루고 싶은 것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 집착하는 데서 불평과 불만의 씨앗이 자라납니다. 물론 쉬지 않고 무언가를 이루려는 건강한 욕심도 있을 수 있지만, 소망하는 것이 당장 이루기 어려운 목표라면 지금 시점에서 내가 이룬 것, 내가 손에 쥔 것에 감사하고 스스로 대견하다고 이야기해주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괜한 죄책감을 떨쳐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힘차게 일을 시작해야 하는 월요일 아침 출근 직후라면 목표를 이뤄내자는 욕심을 현명하게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하겠죠.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기: 마음을 다스리는 법 가운데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조언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곤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죄책감을 떨쳐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즉, 내가 해야 할 많은 일은 내가 지금 죄책감에 시달리든 그렇지 않든 그대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일을 책임지고 끝마쳐야 할 때는 죄책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과중한 업무든, 그에 따른 압박이나 걱정, 죄책감이든 그냥 내버려 둘 줄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수치심은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요. 어떤 일을 끝마치지 못했다고 내가 못난 사람이 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제때 일을 다 못 끝내는 건 지극히 일반적인 우리 모두의 특징이니까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Art Mark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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