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 심리학과의 바스티안 루트옌스(Bastiaan T Rutjens)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과학이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정치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과학적 발견이 진짜 사실인지 의심스럽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예외는 아닙니다. 과학 기관이 발행하는 학술지에는 대중이 점점 과학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우려 섞인 분석과 함께 실립니다. 인류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풍족하게 해준 데 과학이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는 것이 자명한데 도대체 어떤 연유로 갈수록 많은 사람이 과학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걸까요? 사람들이 왜 과학을 신뢰하지 않게 됐는지 그 근원을 찾아가는 길은 결국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반대로 과학을 다시 진지하게 받아들일지 찾아가는 길과 통합니다.
학자들은 과학을 향한 회의를 낳는 주범으로 정치적 이념을 첫손에 꼽습니다. 사회학자 고든 고챗은 1970년대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에서 과학을 불신하는 성향이 태동해 계속 커졌음을 보였습니다. 사회학자, 정치학자들은 특히 기후변화를 믿지 않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엄연한 사실을 부인하고 의심하는 태도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이고 이를 분석하는 연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만 살펴서는 과학을 향한 불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일수록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를 의심하고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로 그 연구에서 참고한 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기후변화 외에 논쟁이 되는 다른 주제에 관해 과학적 근거를 믿느냐 마느냐는 정치적 이념과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인지과학자 스테판 레반도프스키의 연구, 심리학자 시드시 스캇의 연구를 보면 정치적 이념과 유전자 변형에 관한 과학적 신뢰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레반도프스키는 백신에 대한 잘못된 사실을 믿으며 백신 접종을 거부한 비과학적, 몰상식적인 행동 또한 정치적인 보수주의와는 관계가 없다는 점을 보였습니다.
분명 정치적인 이념, 보수주의 말고도 과학이 밝혀낸 명징한 사실을 믿지 않게 하는 무언가가 더 있습니다.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급격한 기후변화가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활동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유전자 변형 식품을 먹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하는지, 백신을 접종하면 자폐증에 걸릴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말에 속아 넘어가는지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정확히 어떤 요인이 과학을 향한 회의나 불신, 혹은 신뢰에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저는 동료들과 함께 과학에 대한 신뢰와 회의론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주의사항이 한 가지 있다면 과학을 향한 회의론이라고 해서 다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치적 이념을 과학을 부정하는 회의론의 주범으로 보고 다룬 선행 연구들을 살펴본 결과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종교의 역할이 상당히 간과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회의론의 근저에 종교의 영향력이 분명 작지 않음에도 워낙 정치적 이념이 주범으로 꼽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지금까지 연구는 다양한 회의론을 제대로 분류해 살피지 못했습니다. 또한, 과학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온도 차이, 미세한 차이를 잡아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뛰어넘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이 과학적 사실을 믿지 않거나 의심하는 이유도 가지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사실 가운데 한 가지만 유독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주제에서는 과학적 발견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후가 더워지고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야. 하지만 난 진화론은 과학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죠. 아니면 과학 자체를 일반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것도 다양한 의견이나 주장 가운데 하나일 뿐이야.’라고 치부해버리는 태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과학을 받아들이는 사람인지 거부하는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는 네 가지 변수를 대입해 알아봤습니다. 정치적 이념, 종교적인 성향, 도덕성, 그리고 과학에 관한 지식 이렇게 네 가지였습니다. 이 변수들은 물론 서로 연관돼 있습니다.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 경우도 더러 있으므로, 정확히 무엇 때문에 과학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단정 짓기가 쉽지 않죠.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띠는 사람일수록 과학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관계를 따져볼 때 의외로 다른 변수가 두 가지 현상에 동시에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즉, 정치적으로 보수적일수록 과학적 사실을 거부한다거나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일수록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라는 관계만 밝혀내면 이는 반쪽짜리 관찰이라는 말입니다. 실은 종교적인 성향이 독실할수록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이고 과학을 믿지도 않을 확률이 높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변수와 요인을 동시에 두루 살펴보지 않으면 정확히 어느 변수가 영향을 미쳤다고 집어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먼저 과학에 의구심을 품은 북미 사람들을 조사했습니다. 정확히 어떤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과학적 사실을 거부하더라도 그 안에서 정도나 분야가 어떻게 다른지를 최대한 분류했습니다. (유럽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한 비슷한 조사를 토대로 한 대규모 연구도 현재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과학적 사실에 관한 몇 가지 문장을 들려주었습니다. (기후변화: 인류의 활동으로 대기 중에 늘어난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를 일으켰다, 유전자 변형: 유전자 변형 식품은 안전하며 믿을 수 있는 기술이다, 백신: 나는 백신을 접종했을 때 아이들이 얻는 혜택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는 부작용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참가자들은 각각 이 문장에 얼마나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지를 각각 답했습니다. 우리는 또 참가자들의 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를 조사했는데, 예를 들어 정부 예산 가운데 과학 분야에 얼마를 쓰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답변을 토대로 이를 측정했습니다. 또 정치적 이념, 종교, 도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를 모았고, 과학 지식은 여러 가지 과학 관련 문제를 풀어보게 해 측정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방사능은 인간 활동의 산물이다’, ‘지구의 중심은 대단히 뜨겁다’ 같은 문항으로 OX 퀴즈를 치렀습니다.
그 결과 가장 먼저 후보에서 탈락한 변수가 정치적 이념이었습니다. 즉, 정치적 이념은 과학에 대한 태도를 가늠하는 데 별 쓸모가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일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거부하는 과학적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정치권에서 기후변화의 과학을 조롱하고 거부하며 비난하는 이들이 대체로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이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놀랍지 않은 결과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은 다른 회의론이나 과학 전반에 관한 견해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유전자 변형 식품이 안전하다는 과학적 사실을 믿는지는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성향과 별 관련이 없었습니다. 대신 과학 지식과 연관이 있었는데, 앞서 소개한 과학 문제를 풀었을 때 점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유전자 변형 식품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경향이 높았습니다. 백신이 위험하다고 믿는 것도 정치적 이념과는 상관이 없었고, 대신 특히 백신 접종이 자연스러운 행위인지에 대한 도덕적 우려에 관하여 종교적인 성향에 따라 연관성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특정 주제나 분야의 과학을 향한 의구심 대신 일반적으로 과학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도 알아봤습니다. 상당히 명백한 결과가 나왔는데, 우선 종교적인 신념이 독실할수록 과학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종교 가운데서도 정통파로 분류되는 종파를 믿는 이들일수록 과학이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이 강했고, 정부 예산을 과학 분야에 투자하는 데도 거부반응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정치적 이념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현재 신뢰를 잃은 과학의 위기에 관해 몇 가지 정리해둘 점이 있습니다. 우선 과학을 향한 회의적인 시각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회의론의 종류도, 정도도 실로 다양합니다. 또한, 과학에 대한 불신이 정치적 이념 때문이기는커녕 정치적 이념과 과학에 대한 태도 사이에는 거의 관련이 없었습니다. 물론 앞서 살펴봤듯이 기후변화에 대한 태도는 예외였습니다. 알다시피 기후변화 논란에 계속 불을 지피는 주체가 정치권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과학 지식을 더 많이 알리고 가르치는 것만으로 과학이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실제로 과학을 향한 믿음이나 불신, 과학 예산을 늘리거나 줄이는 데 대한 태도에 과학 지식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습니다.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태도는 예외)
사람에 따라 특정한 과학적 발견을 특히 못 받아들이곤 합니다. 그 이유도 실로 제각각입니다. 만약 전반적으로 과학을 향한 회의론을 잠재우려는 것이 목표라면 우선 과학을 향한 회의론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Aeon, Bastiaan T Rutj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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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TV에 방영되었던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미디어 불신 맞는 말입니다. 요즘은 돈을 위해서 물분 안가리고 있는 사람이 많죠. 정직한 사회 과학의 본질을 제대로 활용하는 옳바른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하는것도 바람으로 남네요. 축복된 주말 맞이 하세요.
일반 대중이 과학을 접하는 것은 주로 교과서와 미디어입니다. 과학은 현상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사람들은 과학이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과학의 모습이죠.
하지만,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과학의 모습은 그것과 많이 다릅니다. 미디어는 이슈가 될만한 것들을 보도합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은 정치권력이나 기업 이익의 수단 역할을 하는 과학을 많이 접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신념이나 학문적 양심을 저버리는 과학자를 보게 됩니다. 그런 과학자들이나 그들의 연구 결과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