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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종언: 마이클 헤이든

(마이클 헤이든은 CIA와 NSA의 전 국장입니다)

내가 유럽에서 미군의 정보 활동을 책임지고 있던 1994년 어느날, 나는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사라예보의 어느 폐허가 된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한때 아름다웠던 첨탑과 양파 모양의 지붕, 끝이 뾰족한 탑들이 밀랴츠카 강 너머 언덕위에서 날아오는 포탄 때문에 모두 흔적만 남았고, 나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이 물을 구하고자 이제 문을 닫은 양조장 앞에 줄서 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이웃이었던 사람을 저격하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내가 정작 놀란 것은 사라예보 주민들이 얼마나 우리와 다른지가 아니라, 사실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점이었다. 사라예보는 무슬림인 보스니아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인들을 공격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명백하게 문명화된, 관용과 생명력이 살아있던 도시였다.

나는 문명의 더께가 극히 얇다는, 직업 자체가 비관적이고 또 협박과 위험 속에 살아가는 정보부 직원이라면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나는 홉스가 말한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결하고, 잔인하고, 짧은” 인간의 삶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문명의 전통과 관습이 사실은 매우 부서지기 쉽고 조심스런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오늘날 미국의 바로 그런 보호막이 위협받고 있다.

2016년 옥스포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감정과 신념이 사실보다 자신의 의견에 더 중요하게된 현상을 말하는 “탈진실(post-truth)”을 뽑았고, 이는 우연이 아니다. 탈진실적 사고는 경험과 전문성, 사실을 중시하고, 복잡한 문제 앞에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것을 모두 의미하는, 17세기 이후 서구를 지배한 가장 중요한 가치관인 계몽주의에 대한 반역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탈진실적 사고를 남용하는 인물인 동시에, 이러한 사고의 결과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운동에서 거짓말의 정도는 누가 보아도 도를 한참 넘어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선거운동 중에 쌍둥이 빌딩이 무너질때 뉴저지에서 아랍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911 사태를 저지른 테러리스트의 가족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고, 자신의 남편이 쌍둥이 빌딩을 들이받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는 말을 뱉었다. 그는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의 아버지가 존 F. 케네디의 암살과 관련이 있으며 안토닌 스칼리아 연방대법관이 살해당했을지 모른다는 식의 뉘앙스를 비치기도 했다.

그는 특정한 문제에 대해 압박을 받을때마다 “가짜” 언론, “소위” 판사들, 워싱턴의 내부 인사, 혹은 “딥 스테이트” 음모론 등을 이야기하며 빠져나간다. 그는 오바마 시대의 정보부가 “정치적 해킹”을 일삼았다고 비난한다.

대통령에게 그날의 주요 뉴스를 보고하는 일을 했던 정보부 요원인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내게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진실과 거짓(untruth)을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그는 2017년 7월, 웨스트 버지니아의 보이스카웃 잼버리에서 대통령이 했던 과도하게 정치적이고 지루하기까지 했던 연설을 예로 들었다. 그 연설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트럼프는 보이스카웃 책임자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의 연설을 “우리가 지금까지 들었던 연설 중 최고의 연설”이라 칭찬했다고 말했다.

물론 그런 전화는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실제로 일어난 과거의 일과 자신이 그 순간에 필요로 하는 과거의 일을 구분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프라이스가 말하고자 했던건, 일반적인 거짓말장이는 우리가 진실을 가져가면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과 거짓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 정보부는 오랫동안 고집이 센 대통령이나 논쟁을 좋아하는 대통령을 상대해 왔다. 하지만 진실을 개의치 않는 대통령을 보좌한 적은 없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는 이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 해, 나는 피츠버그의 한 스포츠 바에서 내 동생이 주선한 여남은 명의 트럼프 지지자와의 모임이 끝난 후, 그 중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그 중 몇 명과는 함께 자란 사이로 서로를 잘 알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화가 나 있었다.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냈지만, 아이들을 기를 돈이 없었고, 정부가 그들을 개의치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도널드 트럼프가 있었다. “그는 미국인이야.” “그는 진짜지.” “그는 자신의 생각을 감추지 않아.”

그들 역시 무엇이 사실인지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혹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사실에만 관심이 없었을 수 있다. 미국 정치는 데이비드 브룩스가 “전체주의”라고 부른 형태로 당파성을 띄게 되었다. 그는 당파성이 “종교와 민족, 공동체, 가족이 사라지면서 만든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고 썼다. 이제 믿음이 자신들의 정체성이 되었고 따라서 데이터는 그 가치를 잃게 되었다.

적어도 서구 자유주의의 전통에서 정보부의 일은 지금 위협받고 있는 계몽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보를 모으며, 평가하고, 분석한 후, 그 결론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학습 자료 혹은 반박 자료로 만들어 배포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이러한 계몽적 가치의 쇠퇴가 어떻게 정보의 가치를 위협하고 있는지는 트럼프 정부의 무슬림 금지와 같은 행정명령이 얼마나 어이없고 허술하게 실행되었는지를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 명령은 실제로 특정 국가의 이민자들에 의한 위험이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대통령 자신이 선거 운동 기간 동안 과장했던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공포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한 정보부 고위 직원은 내게 그 명령이 내부적으로 전달되었을때 모든 이들은 단순히 그 명령을 실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몇 명의 CIA 전임 국장과 국장 대행들, 두 명의 전임 부국장, 전임 국가정보국 국장, 그리고 전임 국가테러대책센터 센터장 등의 인물들과 함께 그 명령에 반대하는 법정 의견서(amicus brief)를 제출했다. 지금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은 이 명령에 침묵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안보에 대한 결정은 어떤 패턴을 따른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트럼프의 트윗으로 어떤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곧이어 트럼프에게 그 문제와 관련된 과거의 논의, 그 결정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변수들, 그리고 이에 따른 2차, 3차 파급효과 등 그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알게 하려는 관련 부서들의 힘든 노력이 뒤따른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트럼프는 인내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의 절친 한 명은 그를 “반 페이지만 읽을 수 있는(patience for a half page)” “2분 인간(the two-minute man)”이라 불렀다. 그는 전임 대통령에게 올라가던 6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가 아니라, 다섯 페이지 이하의 보고서만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에는 단순하게 요약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마치 마술처럼 그도 옳은 말을 하기도 한다. 지난 해 8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연설은 정보부가 가능한 모든 정보에 바탕해 전체 그림을 그리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판단에 따른 국가안보국이 경중을 가감한 제대로된 연설이었다.

하지만 이는 예외일 뿐이다. 트럼프는 이란이 핵협정을 사실상 파기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 협정이 이란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만들기 어렵게 할 뿐 아니라 핵관련 프로그램을 투명하게 만든다는 정보에도 불구하고 이란과의 협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이를 탈퇴하려 하고 있다. (역주: 트럼프는 5월 8일, 이란 핵협정을 탈퇴했다.)

그리고 러시아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야 마지못해 미국 선거에 개입한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으며, 이에 대한 조사를 벌인 정보부가 “마녀 사냥”을 벌이고 있다고 계속 공격한바 있다.

그는 법무장관을 면전에서 모욕했으며, 안보보좌관을 해임했고, FBI 부국장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하기도 했다.

트럼프 취임 두어 달 뒤, 나는 트럼프가 고위직으로 뽑을 가능성이 높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한 동료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세 달 전이었다면, 그 자리를 맡으라고 충고했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아직 젊어요. 앞날을 망칠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를 생각하세요.”

이미 정부에 들어가 있는 정보부 요원들이 내게 자문을 구할 때, 특히 젊은 요원들일 경우 나는 대통령의 성공을 돕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덧붙인다. “자신을 지킬 방법을 마련해 놓으세요. 항상 기록하고 이를 보관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조직을 보호해야 합니다. 미국은 여전히 이를 필요로 합니다.”

이는 딜레마로 이어진다. 정보는 활용되지 않으면 이론에 불과하다. 정보는 대통령의 성격, 학습 방법, 정책, 우선순위에 맞게 변경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역사는, 그리고 다음 대통령은 미국의 정보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만약 특정한 대통령의 입맛에 너무 맞추어진다면, 이는 공동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아직 미국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우리는 과거 가치와 현실의 충돌에 대해 논쟁했고, 때로 무엇이 객관적 현실인지를 두고 논의했지, 객관적 현실 그 자체가 존재하는지를 설득해야 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탈진실의 세계에서, 정보부는 어울리지 않는 친구들 곧 언론, 학계, 사법부, 검찰, 과학 등과 함께 근거에 기반해 정보를 수집하는, 이 세계의 마지막 보루이다. 정보부는 객관적 진실에 기반한 최선의 선택을 통해 이 다른 진실의 수호자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중요한 결정을 만들어내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는 소책자 “포악한 정치(On Tyranny)”를 통해 진실과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사실을 포기하는 것은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근거도 찾을 수 없다.” 그는 이런 소름끼치는 결론을 내린다. “탈진실(Post-truth)은 파시즘의 전조이다.”

최근 CIA를 방문해 로비에 위치한 상징적인 방패 문양 근처에 서 있던 내게 한 젊은 요원이 다가와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라크에서 태어난 그는 안바 지구에 치열한 전투가 있을 때 미군 통역가로 일했다. 후에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아이비리그 진학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거절하고 군에 입대했다. 이후 국가안보국(NSA)에서 암호-언어학자로 일하며, 동료 군인들이 까다로운 아랍어를 배우는 것을 도왔다. 이후 자신의 재능을 옳은 일에 쓰기 위해 CIA에 합류했다.

내가 그날 CIA를 방문한 이유는 내가 해외 근무를 할 당시 나를 도와 주었던 한 중국계 미국인 요원의 은퇴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고, 그날 나는 그녀의 이민자 부모님을 만났다. CIA 본부를 떠나면서 내 마음은 한층 가벼워졌다. 그날 아침은 미국이 가진 힘과 희망을 평소보다 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날 행사에서 본 다른 요원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이 발견하는 진실의 힘을 통해 우리의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은 이 진실의 힘을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데 사용해야할 때이다.

(뉴욕타임스, Michael V. Hay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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