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자 수학시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채점한 시험지를 엎어서 책상 위에 내려놓을 때면 페이지 끝만 살짝 뒤집어 동그라미 안에 적힌 점수를 확인하곤 했죠. 79점에서 64점으로, 또 다시 56점으로, 점수는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점수를 물어오면 유치하게 “비밀이야!”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친구들의 반응은 비슷했죠. “완전 잘 봐놓고 엄살떠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으스대며 친구들 숙제를 도와줬던 기억 때문일까요? 아니면 제가 “당연히 수학을 잘 하는” 아시아계이기 때문에? 아시아인들은 다 수학을 잘 하니까?
누구나 “긍정적인 선입견”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흑인들은 농구를 잘 하고, 이탈리아인들은 요리를 잘 하고, 여성은 아이를 잘 돌본다는 그런 말들요.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납니다. 기를 쓰고 선입견에 들어맞지 않는 예를 찾아내곤 하죠.
하지만 춤을 못 추는 라틴계 친구나 친절하지 않은 미네소타인을 예로 든다고 해서 “긍정적인 선입견”이 나쁘다는 것이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왜 문제가 된다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내가 수학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게 무슨 문제죠?
문제는 이렇습니다. 일단 어떤 식으로라도 인종과 능력을 연결시키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는 나쁜 쪽으로도 끝이 없죠. 흑인들은 게으르고, 유대인은 인색하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선입견은 어떤 선입견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선입견은 “그 사람이 속한 집단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기반으로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죠. 듀크대 소속의 심리학자 애런 케이는 긍정적인 선입견이 부정적인 선입견과 함께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흑인들이 운동을 잘 한다는 선입견을 볼까요? 흑인들의 신체 능력에 대한 찬탄의 이면에는 “더 높은 차원의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선입견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만 영향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왜곡시킵니다. UC어바인의 사회학 교수 제니퍼 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긍정적인 선입견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긍정적인 선입견에 부합하는 사람도 승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들인 노력에 대해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니까요. 나의 성공 덕분에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선입견이 강화되고, 내가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도 있습니다.
진짜 무서운 이야기가 여기부터입니다. 긍정적이 선입견은 위험하고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선입견이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우리는 그 선입견이 애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배경을 잊게 됩니다.
흑인 여성은 강하다는 선입견은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뉴욕 시티대학의 사회학 교수 루이스-맥코이는 흑인 여성들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역사에서 이러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흑인 여성들은 강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 맥락을 잊게 됩니다. 이들이 힘든 여건 속에서 긴 노동 시간을 마다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죠. 그리고 흑인 여성들이 강하다고 믿어버리면, 세상을 더 평등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이유도 사라져버리죠.
앞으로 살면서 “긍정적인 선입견”에 부합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반가운 마음은 접어두고 다시 한 번 생각합시다. 그 칭찬이 그들에게 오히려 덫이 될 수 있으니까요.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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