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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술관, 더 이상 공짜가 아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이 뉴욕 주민이 아닌 관람객은 앞으로 최고 25달러에 달하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새 정책을 발표하면서 많은 비난을 사고 있습니다. 하지만 MET이 겪고 있는 심각한 재정난을 생각한다면 – 수백만 달러의 적자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 지난 4일 발표한 새 정책은 안타까우면서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결정입니다.

MET은 지난 수십 년간 정해진 입장료 없이 성인 관람객 기준 25달러를 내도록 권장하는 ‘입장료 기부제’로 운영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의무가 아닌 권장 사항이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훨씬 적은 금액을 내고도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MET은 몇 년 전 권장 입장료를 12달러에서 25달러로 인상했는데, 그 이후 권장 입장료를 전부 다 내는 관람객의 비율이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권장 입장료를 100% 내는 성인 관람객의 비율이 2004년에는 63%였지만 2017년에는 겨우 17%에 그쳤습니다. 다니엘 와이스 MET 관장 겸 최고경영자는 더는 기존의 시스템으로 미술관을 운영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와이스 관장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전 세계 대형 박물관 중 유일하게 전적으로 기부에 의존하고 대부분 자금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변경된 정책에 따라 오는 3월 1일부터 뉴욕 주민이 아닌 성인은 25달러, 노인은 17달러, 학생은 12달러를 내야 합니다. 코넥티컷과 뉴저지에 사는 학생들은 예외적으로 기존의 기부제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뉴욕 주민도 물론 마찬가지이고요. 단, 거주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주소가 기재된 운전면허증·도서관 카드·은행 거래명세서 등의 서류를 지참해야 합니다.

MET의 새 입장료 정책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등 뉴욕의 미술관 입장료 시세를 반영한 것이나, 이를 통한 막대한 수익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와이스 관장은 연간 600~1100만 달러 정도의 추가 수익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MET에 연간 270만 달러의 운영 보조금을 지원하는 뉴욕시는 이번 정책을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참고로 뉴욕시는 35분마다 약 6백만 달러의 예산을 지출합니다.

이쯤 되면 관람객이 지갑을 열도록 강요하기 전에 다른 재원을 확보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고 싶어집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고요. 대표적으로 뉴욕타임스의 미술 평론가 홀랜드 코터와 로베르타 스미스가 이번 정책을 크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축적된 재정 적자가 아무리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MET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와이스 관장은 입장료 유료화로 거둬들일 추가 수익이 미술관 운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어찌 됐건 뉴욕에서 쓸 돈을 두둑이 챙겨오는 외국인과 타주 관광객들이 미술관 입장료 25달러가 ‘권장’이 아닌 ‘의무’라고 해서 발길을 돌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정책이 실행되면 사기꾼들의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겠죠. 관광객들에게 위조 신분증을 팔기 위해 MET 주변을 서성이는 사기꾼들의 모습, 상상이 가지 않나요?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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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ebir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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