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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또 한 번의 도덕적 실패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받아 마땅한 칭송을 누리고 있는지, 적들이 자신의 영광을 빼앗아가지는 않는지가 늘 가장 중요했죠. 이 점을 명심해야만, 리더십이 빛을 발해야 할 중요한 순간에 트럼프 대통령을 이끌고 있는 도덕률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주말 샬럿츠빌을 공포와 폭력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비난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미국인들이 거창한 설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치 깃발을 흔드는 시위대와 군중을 향해 돌진해 여러 사상자를 낳은 자동차를 보고도 애써 에두른 표현을 찾는 대통령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뜨렸죠. 끔찍한 날 공허하기 짝이 없었던 대통령의 말, 그 빈 공간에서 끔찍한 어둠과 공포를 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정말로 백인 인종주의자들에게 공감하는 것인가? 적어도 대통령이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표를 너무 중시해서 이 유권자 집단을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한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는 무거운 혐의이지만, 대통령을 비판해온 사람들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럿 가지고 있습니다. 한 기자가 대통령에게 백인 인종주의 시위대를 비난하는가를 묻자, 매사 확고한 소신을 밝히기에 망설임이 없었던 대통령이 묘하게 특정 집단을 폭력 사태의 주범으로 명명하기를 꺼려했던 장면도 그 중 하나입니다. 대신 대통령은 “여러 집단의 증오, 편견, 폭력(hatred, bigotry and violence on many sides)”을 비난했죠. 자신의 임기 중에 있었던 중요한 장면마다 자신의 공을 앞세우기 바빴던 트럼프는 이번 사태를 심지어 전임자인 오바마의 탓으로 돌리면서 ”상황이 이렇게 된지 오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대통령은 ”법과 질서의 빠른 회복“과 ”인종과 신념을 초월한 모든 미국인들의 단합“을 촉구했죠.

트럼프의 미지근한 대응은 분명 두드러졌습니다. 똑같은 사태를 지켜본 공화당 지도자들마저도 비난의 대상을 분명히 했으니까요. 지난 대선 때 트럼프의 경선 상대였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있는 그대로, 즉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테러 공격”이라고 정확하게 묘사하고, 이를 전 국민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공화당 내에서도 보수파에 속하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증오와 인종주의를 퍼뜨리는 것에 반대를 표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말했고, 자동차에 의한 살인은 국내 테러라고 못박았습니다. 온건파인 코리 가드너 상원의원 역시 트위터를 통해 대통령에게 “악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대통령은 유럽에서 이슬람교 테러 집단에 의한 공격이 발생할 때마다 즉시 이를 규탄하면서 미국 국경 강화의 근거로 삼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달 초 미네소타의 모스크가 공격받았을 때는 침묵을 지켰죠

본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 속을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인종주의자와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말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이런 일화는 어떻습니까? 한 기자가 “당신을 지지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대통령은 그 질문을 무시했죠. 실제로 샬럿츠빌의 시위대는 남부군의 깃발, 횃불과 함께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 슬로건을 들고 행진했습니다. KKK단의 전 리더는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을 실현하고 우리의 나라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죠.

샬럿츠빌의 시위를 지켜보던 트럼프 대통령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2016년 예상을 깬 당선이라는 자신의 승리를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을요.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흔들며 행진하는 인종주의자들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머리 속에 어떤 생각과 정치적 계산에 스쳐갔을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이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의 문제라는 사실이죠.

토요일 오후, 대통령은 샬럿츠빌 사태가 참전용사들과의 사진 촬영 행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갔다고 불평하는 내용의 트윗을 남겼습니다. 참전용사들은 미국을 더 나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애썼는데 “샬럿츠빌, 슬프다!”는 트윗이었습니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 관련 수사에서도 비슷한 구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과 측근들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외세와 힘을 합쳤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트럼프에게는 자기 승리의 정당성이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런 의심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를 분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것이죠.

다음에도 미국 대통령이 자리에 걸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일이 생긴다면,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외로 가장 단순하고 천박한 설명이 그를 이해하는 길이라는 사실을요. 물론 다른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통령의 자존심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많은 것들이 설명될 것입니다. 사안이 무엇이 되었든,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늘 자기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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