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초기를 불안한 마음으로 관찰해 온 민주주의 연구자들에게도 코미 FBI 국장 해임은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사법부와 정보기관, 언론, 심지어는 의회 예산위원회까지도 가리지 않고 공격해왔고, 전문가들은 그때그때 점수표를 수정하느라 바빴죠. 하지만 대통령 선거 캠프와 외국 정부 간의 결탁 혐의를 조사하던 정보기관의 수장을 해임한 것은 선을 넘은 처사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한 연구자는 “지금까지가 위험도 10단계에서 4 정도였다면, 이번 일로 7까지 확 올라간 것”이라고 표현했죠.
미국이 당장 독재 국가가 될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직 드물지만, 이번 정부에 대한 민주주의 연구자들의 점수표는 등락을 거듭했습니다. 대통령이 판사에게 사적인 비난을 퍼부었을 때 우려가 치솟았다가 무슬림 입국 금지령에 법원이 중지 명령을 내리자 걱정이 사그라들었고, 언론과의 관계가 악화된 사태에 우려하다가, 미국의 오랜 집회 전통이 부활하자 반색했죠. 하버드에서 민주주의와 정부에 대한 강의를 맡고 있는 한 연구자는 사람들에게 부쩍 “지금 상황이 얼마나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번 일이 트럼프가 처음으로 말이 아니라 행동에 나선 일이며, 이는 전형적인 독재자의 첫걸음이기 때문에 우려스럽다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반면 이번 일로 트럼프 정부가 민주주의라는 체제에 위협을 가하기에는 너무 무능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노출했다고 말하는 정치학자도 있습니다.
미국 내 정치학자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아직 존재론적 위기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하지만 이 조사를 주관한 수잔 스톡스 예일대 교수는 코미 국장 해임 사태로 해당 조사에 “법 집행 기관이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라는 항목을 추가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코미 국장 해임을 의회 지도부 인사들이 즉시 지지하고 나선 것이 우려를 더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당에 대한 충성심이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균형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이죠. 스톡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질이 걱정스럽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정치학자들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재선이라고 전제합니다. 딱히 존경스러운 그림은 아니지만 이러한 목표 때문에 정치인들이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행동을 한다는 것이죠. 스톡스 교수는 아무런 원칙 없이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이로 인해 자기모순을 낳는 대통령의 모습이 우려스럽다고 말합니다.
트럼프 정부에 경고를 보내는 학자들 가운데서는 민주주의가 희한한 운명을 맞이한 나라 출신들도 있습니다. 터키 출신의 한 정치학자는 미국이 터키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글을 쓴 후 트위터에서 언쟁에 휘말리기도 했죠. 외국 출신 학자들도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훨씬 길고 전통이 탄탄하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러한 역사 덕분에 국민이 안일한 태도를 가진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합니다. 경험을 통해 정치 상황이 갑자기 달라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유럽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는 것이죠. 무슬림으로서 미국인과 결혼해 영주권을 기다리고 있는 터키 출신의 정치학자가 미국인들의 위기의식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녀는 호평을 받았던 트럼프 대통령의 2월 의회 연설을 예로 들면서, 1년 전만 해도 그런 연설은 이슬람 혐오에 인종 차별을 담은 연설이라고 비판받았을 텐데 트럼프의 각종 기행으로 인해 이미 기준이 매우 낮아져 버렸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특유의 체제에 대한 과신은 독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큰 그림을 놓치지 않는 것도 정치학자들의 과제입니다. 휴대폰에 인터넷 접속을 일정 시간 차단하는 앱을 깔아놓고 논문을 완성했다는 학자도 있었죠.
앞으로 주시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많은 정치학자가 의견을 같이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FBI 신임국장에 누구를 임명할 것인가, 그리고 공화당원들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입니다. 대통령이 전문가를 앉히느냐, 자기 사람을 앉히느냐를 통해 많은 것이 결정되며, 실제로 대통령이 민주주의 체제에 얼마나 해를 끼치느냐는 결국 공화당원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이죠. 공화당이 지금처럼 기계적으로 대통령을 지지하기만 한다면 위험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 시대, 민주주의가 처한 위험을 확인해야 하는 학자들은 매 순간 온도계를 물속에 담그며 관찰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뉴욕타임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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