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세계

동성애자를 ‘지워버리는’ 체첸 공화국 취재파일

이 기사를 쓴 앤드루 크라머 기자의 취재파일입니다. 뉴욕타임스 인사이더에 실린 취재파일의 제목은 “Reporting on People Who ‘Don’t Exist'”, 우리말로 옮기면 “존재하지도 않는, 어쩌면 존재해선 안 되는 사람들을 기사로 쓰는 것”입니다.

이달 초 어느 날 오후, 모스크바에 있는 집 부엌에서 저는 람잔 카디로프 체첸 공화국 대통령 대변인과 통화 중이었습니다. 체첸 공화국 경찰과 기관원들이 동성애자 남성을 체포해 고문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 관해 친푸틴 성향의 체첸 정부의 입장을 물었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보도한 건 러시아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가진 노바야 가제타라는 신문이었습니다. 노바야 가제타는 체첸 경찰과 기관원들이 데이트 상대를 찾는 동성애자를 온라인상에서 속여 특정 장소로 꾀어낸 뒤 불법으로 체포해 구타, 고문한다고 폭로했습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우려스러웠지만, 카디로프 정부가 보수적인 종교 단체의 환심을 사고자 과시용으로 더욱 ‘게이 사냥’에 열을 올린다는 인권 단체들의 주장과 그런 사실 자체가 없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을 보면서 사태가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디로프 정부의 알비 카리모프 대변인은 당국이 동성애자를 체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동성애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정반대로 체첸 공화국 안에는 동성애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죠. 지금 또 똑같이 말씀드립니다. 체첸 공화국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고요.”

카리모프 대변인이 제게 한 말입니다. 제가 카리모프 대변인에게 정말 체첸 공화국에 게이가 단 한 명도 없다고 확신하는지 묻자, 그런 이상한 질문을 도대체 왜 하느냐는 식의 핀잔과 함께 이는 확실하며 노바야 가제타의 기사는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는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체첸은 카프카스 산맥 근처의 경치가 아름다운 작은 지방으로 소련이 붕괴된 뒤 두 차례 독립을 꿈꾸며 봉기했지만, 두 번 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지금은 러시아 연방 하의 공화국으로 편입돼 별다른 분쟁 없이 평화로운 상태가 됐지만, 체첸 공화국 정부를 이끄는 카디로프 대통령은 권위주의 철권 통치를 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체첸에 사는 동성애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이미 감옥에 있거나 아니면 최대한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의 하나 그들을 찾아낸다고 해도 그들을 만나고 기사를 쓰는 것 자체가 또 한 번 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체첸은 ‘게이 청정지역’이라는 식의 주장을 펴는 체첸 정부의 주장과 동성애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를 보며 이를 취재해 보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직접 체첸 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Grozny)로 향했습니다. 그로즈니는 러시아어로 번역하면 “끔찍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먼저 찾은 곳은 체첸 정부의 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헤다 사라토바 씨의 사무실이었습니다. 사라토바 씨는 동성애자 남성을 취재하려 한다는 제 말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동성애자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고 그래서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제 50 평생 동성애자 남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파리도, 모기도 본 적이 있지만 게이 남자는 못 봤네요.”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된 한 체첸 남자는 정부가 게이를 색출해 탄압하는 데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실제로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는 게이가 한 명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게이와 관련한 뉴스에 자신의 이름이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두 성인 남성이 한 침대에 눕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체첸 사람들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아요. 누구든 여기서 게이의 인권을 주장하고 나섰다가는 바로 살해될 겁니다.”

그날 저녁 도시의 아름답고 평온한 일상의 모습에서는 물론 그런 추악한 혐오의 정서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체첸 반군을 진압한 뒤 러시아 정부는 많은 돈을 들여 수도 그로즈니부터 길을 다시 내고 건물을 지었습니다. 노을빛이 붉게 물든 구름이 부드럽게 온 도시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새로 올라간 고층 건물 꼭대기에서 네온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 위로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도시에 울려퍼졌습니다.

저는 그로즈니의 밤 풍경이 어떤지 들어보고자 커피숍에서 오랜 친구 한 명을 만났습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 게이는 당연히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긴 했지만, 그래도 대대적인 사냥이 시작되기 전에는 은밀히 모이던 게이 공동체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체첸을 떠났고, 일주일 쯤 지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동성애자 인권 단체 러시아 성소수자 네트워크의 도움으로 체첸 당국의 게이 탄압에 관한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 성소수자 네트워크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안전한 게이 은신처에서 체첸 출신으로 고문을 받고 도망쳐 온 동성애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일리아라는 가명을 쓴 사람은 자신이 온라인 채팅을 통해 어떻게 체첸에서 다른 게이를 만났는지 자세히 설명해줬습니다. ‘마을’ 혹은 ‘저 산이 품고 있는 비밀’ 같은 식의 방 이름이 게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암호로 쓰이는데, 일리아가 성소수자 네트워크를 알게 된 것도 온라인 채팅방을 통해서였습니다.

일리아는 인터뷰 중에 저더러 자신의 볼을 만져보게 했습니다. 붙잡혔을 때 구타당하며 부러진 턱뼈를 다시 붙이려고 의사가 심어둔 티타늄 나사가 만져졌습니다.

일리아는 제게 자신이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찾을 때 온라인 채팅방에 쓴 글을 저장해 둔 핸드폰 화면도 보여줬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글을 ‘마을’에 올립니다. 저는 카프카스에 살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제 형제가 그랬듯 제게도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뉴욕타임스)

원문보기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Recent Posts

[뉴페@스프] “레드라인 순식간에 넘었다”… 삐삐 폭탄이 다시 불러온 ‘공포의 계절’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1 시간 ago

[뉴페@스프] 사람들이 끌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름 결정론’ 따져보니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2 일 ago

‘예스맨의 절대 충성’ 원하는 트럼프…단 하나의 해답 “귀를 열어라”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사가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트럼프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보여준 이들로, 기존 공화당원들…

3 일 ago

[뉴페@스프]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 미국 대선판에 등장한 문건… 정작 묻히고 있는 건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5 일 ago

“뻔한 정답 놓고 고집 부린 결과”… 선거 진 민주당 앞의 갈림길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다 돼 가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트럼프는 2기 행정부 출범을…

6 일 ago

[뉴페@스프] 독서의 대가로 돈을 준다고? 중요했던 건 이것과 ‘거리 두기’였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1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