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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학자가 주장한 대북 강경론을 대하는 중국 정부의 미묘한 태도 변화

한국전쟁 연구로 중국에서 유명한 역사학자 선즈화(沈志華) 교수는 최근 북한이 잠재적으로 중국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를 강연에서 밝혀 청중을 놀라게 했습니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 부릅니다. 공산주의 동맹국인 북한을 도와 미국에 맞서 싸운 전쟁이라는 뜻입니다. 중국은 1950년 인민해방군을 파병해 참전하기 전부터 이미 북한의 공산주의 지도자들과 우애를 다졌습니다. 마오쩌둥 주석은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가리켜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선즈화 교수는 지난달 대련의 한 대학에서 진행한 공개 강연에서 이런 전통적인 관계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과의 오랜 우방 관계를 끝내고 대신 남한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그의 강연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상황을 토대로 판단해 보면, 북한은 중국의 잠재적 적국인 반면 남한은 중국의 우방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중국과 북한이 더 이상 어깨를 건 형제가 아니며, 이미 냉랭해진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단기간에 좋아지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북한은 핵 개발에 계속 매달리며 동북아시아와 그 밖의 지역에서 긴장감을 고조시켜 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이런 북한과의 관계를 끊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고, 이런 중국의 대북 정책 기조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건 어느 정도 금기시됐습니다. 선 교수의 강연 이후 중국이 이제는 오랫동안 후원해 온 북한과의 관계를 청산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중국 내에서 또 한 차례 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중국 외교정책 전문가 보니 글레이저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관점에 변화가 감지된다고 말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북한보다 미국을 훨씬 더 큰 위협으로 여겨 왔죠. 하지만 이제는 상황을 새로 평가해야 한다는 변화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이 갈수록 중국에 짐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요.”

수십 년 동안 중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에서 북한은 항상 최우선 동맹국이자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였습니다. 이는 북한 정권이 중국 지도부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도 변치 않는 하나의 원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중국은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맺으려 노력했고, 한국과는 정치적, 경제적 협력을 강화했으며, 북한 핵 개발을 제어하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에 매달리면서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춘 상황에 이르자, 중국이 사실상 맡아 온 중재자 역할도 갈수록 위태로워졌습니다.

북한이 지난 15일 태양절을 전후로 핵실험을 하리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예상은 빗나갔고, 16일 시험 발사한 미사일은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핵실험이든 미사일이든 북한은 몇 번이고 더 계속하겠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고,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시진핑 주석에게 북한을 더 강력하게 압박하고 통제해 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 17일 전략적 인내의 시기는 끝났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북한 문제를 잘 처리해주리라 확신합니다. 만약 중국이 제 역할을 못 하면 미국과 동맹국이 힘을 모아 이 문제를 처리할 겁니다.”

중국은 지난 2월 북한으로부터 석탄 수입을 중단했습니다. 석탄은 북한 정부의 주요 수입원입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여전히 북한과의 무역 자체를 끊지는 않았습니다. 더 적극적인 대북 경제 제재를 원하는 한미 양국 정부와 북한 사이에서 중국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은 격화됐습니다.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중국이 양자택일의 기로로 내몰리는 형국입니다.

중국 정부는 무엇보다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사드(THAAD)의 한국 배치를 강력히 반대해 왔습니다. 미군이 중국 전역을 항상 감시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사드 배치를 추진한 한국 정부를 향해 반한 감정을 부추기고 여러 분야에서 이른바 사드 보복에 나선 중국 정부의 결정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이자 중국 정부 정책과 대체로 보조를 맞추는 환구시보는 지난주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하면 유례없이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환구시보는 월요일자 사설에서 더 강경한 논조로 중국 정부가 북한이 또 핵실험을 하면 북한으로 가는 원유 공급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선즈화 교수는 한반도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른 학자들보다 오래전부터 폈습니다.

“중국과 북한은 추구하는 근본 이익에서부터 불협화음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국경 주변과 지역 정세의 안정은 중국에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그 자체로 중국은 핵 보유의 타당성 자체를 놓고 전 세계와 끊임없이 시비를 주고받는 나라와 이웃하게 됩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핵 보유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기 때문에 결국 두 나라의 이해관계는 절대 일치할 수 없는 겁니다.”

선즈화 교수는 사드에 대한 중국의 격렬한 반대는 자멸에 가까운 전략이라고 비판하며 특히 한국의 의견을 묵살할 필요가 없는데 과잉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중국의 이러한 대응이야말로 북한과 미국 모두가 정확히 바라는 바입니다.”

선 교수의 주장에 특히 중국 국수주의자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습니다. 이들은 선 교수가 북한과의 오랜 우호 관계를 한순간에 팔아넘기라고 부추긴다며 선 교수를 맹렬히 비난합니다. 중국 관영 매체는 아직 선 교수의 주장은 물론 이를 둘러싼 논쟁 자체를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 교수가 말한 내용은 여전히 그가 속한 화둥사범대학 냉전 역사연구소 홈페이지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상해와 시안 등 중국 각지에서 비슷한 내용의 강연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예전에는 북한에 비판적인 논조의 글은 순식간에 검열돼 삭제되곤 했습니다. 2004년에는 <전략과 관리>라는 유명 격월간지가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가 폐간됐습니다. 2013년에는 공산당 기관지의 편집위원이던 덩위원이 파이낸셜 타임스에 중국이 북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가 해고되기도 했습니다.

선즈화 교수는 지금까지 자신의 주장이 공개적으로 논의되도록 중국 정부가 용인한 것으로 미뤄볼 때 북한에 대한 비판이나 북한과의 관계를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루는 중국 정부의 태도 자체가 조금 바뀐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묻더군요. 그런 과격한 주장이 어떻게 아직도 그냥 통용되느냐고요. 적어도 저는 북한 문제에 관해 다른 관점도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요. 결국, 정책을 정하는 거야 중앙에서 하는 일이지만, 적어도 대중들은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죠. 예전에는 그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고요.”

여기서 중앙이란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뜻합니다.

보니 글레이저는 여전히 시진핑 주석이 북한에 완전히 등을 돌릴 확률은 무척 낮다고 말합니다.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을 압박할 의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북한에 도발을 자제하라고 경고하면서도 미국에도 북한과 협상에 나설 준비를 하고 대규모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며 균형을 맞췄습니다.

펜스 부통령은 지난 월요일 미국은 “평화적인 수단과 협상을 통해” 지역 정세의 안정을 추구해 왔다며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회담에는 한·중·일 세 나라와 지역의 다른 동맹국이 모두 참여하는 형태가 될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올해 66살인 선즈화 교수는 중국에서 유명한 역사학자로, 특히 꼼꼼히 사료를 모아 2차대전 직후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던 상황과 참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마오쩌둥 주석이 범한 계산 착오 등을 밝혀낸 논문은 선 교수의 대표적인 연구로 꼽힙니다.

그는 공산당 관료 집안 출신으로 사업을 통해 번 돈을 러시아 관련 사료를 모으는 데 쓰기도 했고, 국가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2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북·중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고찰한 연구를 포함해 그의 연구들이 올해 영어로 번역돼 출간될 예정입니다. 선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널리 알려져 그동안 중국에 자리 잡은 여러 가지 잘못된 관념들이 바로잡히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에서 다른 나라와 관계를 조정하는 일은 특히 무척 어렵습니다. 만약 모두가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잘못된 신화가 깨지고 나면, 그때는 일반 대중은 물론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들 사이에서도 관계를 재설정하는 데 필요한 공감대가 형성될 것입니다.”

하지만 선 교수는 북한과 관계를 새로 설정하는 일에 특히나 위험이 따른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중국과 미국이 정치적으로 힘을 합쳐 북한을 제어하는 데 실패하면 그때는 양국 정부가 군사적인 행동에 나서는 데도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손에 넣고, 이를 실어나를 미사일 기술까지 익히고 나면, 그때는 정말 온 세계가 북한에 놀아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같은 소모적인 대치가 계속되면 유리한 건 (무기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는) 북한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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