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는 도널드 트럼프의 사무실을 도청한 것일까요, 아니면 “도청”한 것일까요? 논란은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가 트럼프 타워의 내 ‘전화선을 도청’했다(had my ‘wires tapped’)는 사실을 방금 알게 되었다”는 트윗을 올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사용한 따옴표는 이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대한 핑계로 사용되었습니다. 션 스파이서 대변인은 손가락으로 허공에 따옴표까지 직접 그려가며 대통령이 쓴 표현은 광범위한 감시와 기타 행위들을 의미한 것이라고 말했죠. 도청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도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한 셈입니다. 아니, “증거”가 나타나지 않아도, 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오픈유니버시티에서 언어응용학을 강의하고 있는 필립 서전트는 이것이 일종의 거리 두기 전술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것뿐이고 진짜로 믿지는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가 한 말을 언제고 뒤집기 위한 포석입니다.
따옴표가 이런 식으로 사용될 때 이것을 “스케어 인용(scare quotes)”이라고 부릅니다. 사실은 대통령이 추후에 책임을 피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부호 안에 들어간 대상의 아이러니나 화자의 짜증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입니다. 확신할 수 없는 것, 또는 그러한 명명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하기 싫은 것을 부호 안에 넣어서 처리하는 것이죠. 이는 매우 현대적인 언어 현상입니다. 지난해 아틀란틱지(The Atlantic)지는 기사를 통해 스케어 인용이 1956년에 처음 등장해 오늘날에 이른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왜 인용하는가?(Why Do We Quote)”의 저자이자 인류학자인 루스 피너건은 “어떤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따옴표를 사용하지만, 비판하는 동시에 나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대상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기능도 한다”고 말합니다. 피너건에 따르면 인용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기 재미있는 것이 있다”, “여기를 봐라”라는 뜻으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오랫동안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성경이나 교회 지도자들의 말뿐이었습니다. 이후에는 정부나 왕, 유명인들의 말만 따옴표 안에 들어갔죠. 보통 사람들의 대화도 따옴표 안에 담기게 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비꼬기나 거리 두기를 위해 사용하기도 하죠.
스케어 인용이 글 속에서 사용되는 것이라면 말을 할 때는 허공에서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사용해 따옴표를 만드는 동작(air quote)이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1920년대 한 잡지에도 등장한 제스처지만, 80년대 코미디언 스티브 마틴이 대중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90년에 이르러서는 모든 일상 대화 속에서 따옴표 좀 그만 그리라는 핀잔을 받는 사람이 생겨날 만큼 널리 퍼지게 되었죠.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전에서부터 따옴표를 즐겨 썼습니다. 특히 오바마를 지칭할 때 “대통령”에 따옴표를 붙여 말하기를 즐겼죠. 따옴표 유행을 되살려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 모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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