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에게는 항상 취임 초 미처 준비되기도 전에 외교 정책에 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릴 일이 생기곤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젊은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 초 겪었던 긴박했던 상황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맞부닥친 지금의 위기를 가리켜 “천천히 전개되는 쿠바 미사일 위기” 같다고 묘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피델 카스트로 대신 북한의 기이한 독재자 김정은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입니다.
지금 이 위기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단지 당신이 이 문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디 한 번 볼까요? 일단 우리 미국 대통령부터 살펴보죠. 아직 검증되지 않은, 다분히 마초적인, 트위터 애호가시죠. 상대는 전제군주정이나 다름없는 북한 체제의 우두머리로, 로스앤젤레스를 사정권 안에 두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고, 이복형인 김정남의 암살을 지시한 배후로 의심받는 사람입니다. 김정남은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러 가다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극물을 얼굴에 뿌린 두 여성의 공격을 받고 숨졌습니다.
벌써 최악이란 느낌이 온다고요?
이미 북한 미사일 위기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진행된 13일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끌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기가 심각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이른바 불량 국가(rogue states)를 상대하는 정책을 주로 연구하는 윌슨 센터(Wilson Center)의 로버트 리트왁은 현재 대단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점점 궁지에 몰린 북한 지도부가 전략적으로 도발을 감행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단계까지 왔습니다. 미국을 향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날려 보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 문제는 더는 뒤로 미룰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없겠지만, 경제 규모로 따지면 오하이오 주 데이튼 정도에 불과한 이 은둔 왕국은 오는 2020년이면 영국이 가진 핵무기의 절반 정도 규모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미국 본토를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고 리트왁은 말했습니다.
절대로 그런 지경에 이르도록 수수방관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미국에서 모든 관심이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려 있는 사이, 북한은 핵무기 소형화에 심혈을 기울인 끝에 장거리 미사일에 실어 보낼 수 있을 만큼 핵탄두 크기를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장거리 미사일도 시험 발사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계속 기술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리트왁은 최근 펴낸 저서 “Preventing North Korea’s Nuclear Breakout(북한의 핵 도발,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서 북한의 핵무기가 월등히 강력해졌다고 분석합니다. 보유한 핵탄두 수는 십수 개에서 1백여 개로 늘어났고, 미사일의 사정권도 전에는 기껏해야 남한과 일본에 거리로 따지면 중국까지였는데, 이제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 본토를 사정권 안에 넣었습니다.
북한 문제의 기원을 살펴보려면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의 발단과 전혀 무관하지만, 미국 대통령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책임을 떠안게 된 겁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가지 정도입니다. 각각 한마디로 정리하면, 끔찍한, 나쁜, 더 나쁜 선택지 세 가지입니다. 리트왁의 표현을 빌리면, “폭격, 묵인, 협상” 세 가지입니다.
먼저 북한의 핵무기고와 미사일을 발사하는 기지를 폭격하는 방안은 2차 한국전쟁을 부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마도 핵무기가 쓰일 것이고 최소한 1백만 명 이상이 숨질 것입니다. 북한의 핵 시설을 폭격하면 심각한 방사능 오염 문제도 생깁니다. 두 번째, 북한의 핵무기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북한이라는 실패한 국가가 순식간에 사실상 전 세계를 사정권에 넣는 강력한 핵보유국으로 부상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핵의 균형이 깨지는 겁니다. 리트왁도 결국 현실적인 유일한 카드는 협상이라고 말합니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가 공짜로 보기 어려운 정말 진귀한 장면일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협상이 그나마 가장 괜찮은 방안임은 틀림없습니다. 리트왁은 북한과 협상에 나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란 핵 협상 전략을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 협상을 가리켜 수차례 “사상 최악의 협상”이라고 맹렬히 비난한 바 있죠.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보면 리트왁의 분석이 일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지도 폭격, 묵인, 협상 세 가지로 같았습니다. 우선 오바마 정권은 통제 불가능한 사건이 예기치 못하게 터질 수 있는 폭격안을 제외합니다. 이란의 핵 보유를 묵인하는 것도 오바마 정권의 목표에 맞지 않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래서 남은 하나의 선택지를 택하고 철저히 계산적인 태도로 협상에 임했습니다. 그 결과 이란은 앞으로 15년 동안 핵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는 핵분열 물질을 반입하지 않고 우라늄 농축 시설 가동을 중단하며, 미국은 그에 대한 대가로 이란에 부과한 제재를 상당 부분 풀어주기로 합의한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마도 15년 안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리트왁은 분석했습니다. 이 기간 내에 이란 정권의 성격이 변한다면 핵 문제를 더욱 안전하게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리트왁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확히 이런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15기 정도로 추정되는 북한 핵탄두와 핵시설 가동을 현재 상황에서 동결합니다. 핵물질 처리와 미국 본토를 사정권 안에 넣기 위한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도 중단합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가로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필요하면 경제적 지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제동을 거는 동시에 체제 변화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도 있습니다. 이란 핵 협상처럼 말이죠.”
일단은 자신의 권력과 북한 체제를 유지할 수 있고, 미국이 당장 쳐들어올 걱정을 안 해도 되니 김정은도 협상에 임해야 합니다. 북한이 핵 개발을 동결하면 중국으로서도 한국과 일본이 핵 무장해야 하는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마다할 리 없는 일입니다. 중국도 미국과 북한의 협상을 도울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한반도 문제를 푸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중국과 섣불리 무역 전쟁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머지않아 외교 정책도 참으로 오바마케어 같다는 사실을 깨달을 겁니다. 문제점을 비판하는 건 쉬워도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내줘야 하는 전략적 선택밖에 할 수 없는데,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같이 성에 차지 않는 것뿐이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뽐낼 만한 전리품도 없습니다. 원래 명쾌한 승리라는 게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라면 몰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잘 없는 법이죠.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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