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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트럼프의 행운? 평균 이상의 판사 임명 권한 가질 듯

“어리석다”, “수치스럽다”.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법원 판결을 조롱하고 깎아내렸습니다. “소위 판사라는 자가 내린 판결” 같은 발언은 사법부의 근본적인 정당성을 뒤흔드는 말이었고, 다음번 테러 공격이 일어나면 법원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임명하는 연방 판사의 비율을 놓고 봤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0년간 어떤 대통령보다도 임명권을 많이 행사하게 될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나이가 들어 퇴임을 앞둔 판사들이 많기도 하고, 공석 자체가 이전 대통령이 취임한 어느 시점보다도 많기 때문입니다.

연방 법원 소속 판사는 870명인데, 이 가운데 대부분은 연방 법원 지방법원 판사나 항소법원 판사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효력을 정지시킨 제임스 로바트 판사가 연방법원의 시애틀 지방법원 소속이고, 행정명령의 효력을 되살려달라는 정부의 항고를 기각한 곳이 항소법원입니다. 종신 임기의 판사들을 임명하는 권한은 대통령에 있습니다. (일부 판사들은 임기가 정해져 있기도 합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미국 하원은 연방 법원 소속 판사를 152명, 당시 기준 약 30%나 늘리는 법을 통과시키면서 임명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했습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권을 통해 사법부와 법원 전반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카터 대통령에 비견할 만합니다. 대통령이 임명 제청한 연방 판사는 상원의 인준을 거쳐야 하는데, 민주당은 오랫동안 공화당 상원 지도부가 민주당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들의 인준을 의회에서 논의하지도 않는 식으로 에둘러 거절하거나 회피한다며 비판해 왔습니다. 지난해 스칼리아 대법관의 사망 이후 공석이 된 대법관 자리에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메릭 갈랜드 판사에 대해서 인사청문회조차 열지 않고 임명제청안을 사실상 폐기해버린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전략은 비단 대법원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정의 연대(Alliance for Justice)의 난 애론 회장은 (민주당이 임명한 판사는) 무조건 거부하는 게 공화당의 전략이었다고 꼬집었습니다. 현재 연방 판사직 870석 가운데 112석이 공석이고, 이 가운데 33석은 공석이 된 지 2년이 더 됐습니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의 법제사법 연구회(Center for Legal and Judicial Studies)의 존 말콤 회장도 애론 회장의 분석에 동의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실 엄청난 기회가 주어진 셈이죠. 전체 판사 자리의 1/8가량이 공석이니까요.”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취임했던 시점과 비교해보면, 연방 판사직 가운데 공석이 두 배 가까이 많습니다. 공석뿐 아니라 현재 판사들 가운데 70세가 넘어 퇴임을 앞둔 이들이 많다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에겐 호재입니다. 연방 판사가 종신직을 보장받은 자리지만, 근속 연수나 나이를 기준으로 “선임직(senior status)”이 되어 일선에서 물러나는 제도가 있습니다.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사실상 퇴임에 준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죠. 선임직이 된 판사의 자리는 공석과 동일하게 여겨지고, 새로운 인물로 대체됩니다.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선임직으로 물러날 수 있는 요건에 해당하는 판사들이 전무 일선에서 물러날 경우, 산술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임명하게 되는 판사는 전체 연방 판사의 절반에 육박하게 됩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8년 동안 보수 세력은 어떻게든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의 인준을 가로막거나 지연하려는 전술을 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물러서지 않고 임명권을 꾸준히 행사해 두 번 임기 동안 전체 연방 판사의 40%를 임명했습니다. 여성과 소수 인종 판사 임명이 꾸준히 이어져 마침내 지난해 2월 연방 판사 가운데 백인 남성 비율이 50% 아래로 내려간 건 오바마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법부의 명백한 주류였던 백인 남성의 과거 지위를 생각하면 혁명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는 일이라고 매사추세츠 대학교 앰허스트의 셸든 골드만 교수는 말했습니다.

미국 연방 판사 중 백인 남성 비율. (출처: 뉴욕타임스)

인적 구성의 변화로 법원 판결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헤리티지 재단 법제사법연구회의 존 말콤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들 가운데 훌륭한 판사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연방 순회 법원(circuit courts)의 이념적 지향이 급속히 바뀐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진보 성향이나 소수자의 처지를 대변하는 판사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법원의 판결이 진보적으로 변했고, 소수 의견도 줄어들어 대법원까지 가는 사례 자체가 줄었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법조인을 연방법원 판사로 임명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판사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살펴보고 임명하기보다는 참모진이 참고해 검토하고 추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전직 대통령들의 스타일도 제각각이었는데, 어떤 대통령은 임명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분권형 리더십을 발휘해 다양한 인물을 추천받기도 했고, 어떤 대통령은 몇몇 핵심적인 사안을 잣대로 이념적 성향을 판단해 후보를 걸러내기도 했습니다.

말콤 회장은 판사 임명 혹은 추천에 관여하는 부처로 세 곳을 꼽았는데, 먼저 해당 법원이 위치한 주의 상원의원, 백악관 참모, 그리고 법무부의 법제 정책실입니다. 정권에 따라 세 곳의 권력 균형이 조금씩 달랐다고 말콤 회장은 말했습니다.

미국 상원은 지난 2013년 연방 하급법원 판사 인준 절차에서 필리버스터를 금지했습니다. 현재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에서 대통령이 임명 제청한 판사 후보는 다수결 투표만 거치면 인준받을 수 있습니다. 단, 상원 전체 표결 전에 법사위원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척 그래슬리 법사위원장은 상원의 전통이기도 한 블루 슬립(blue slip) 정책을 계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블루 슬립이란 어떤 주의 법원이나 고위직에 임명되는 사람에 관해 해당 주 소속 상원의원 두 명에게 받아보는 일종의 의견서로, 두 명 가운데 한 명이라도 블루 슬립을 제출하지 않으면 관례적으로 인준 절차가 중단됩니다. 사실상 상원의원 한 명이 인준 절차를 막을 수 있는 거부권을 가진 셈입니다.

일단은 최고위직인 대법관 임명이 먼저 되어야 다음 하급 법원의 판사를 임명하고 인준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입니다. 애론 회장은 고서치 대법관 후보에 대한 인준 절차가 마무리되면 트럼프 행정부는 나머지 판사들 임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애론 회장은 또한, 대법관에 비해 하급 법원 판사에 대한 검증은 철저히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에 큰 걸림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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